(Photo :  기독일보) 훼드럴웨이제일장로교회 이민규 목사
(Photo : 기독일보) 훼드럴웨이제일장로교회 이민규 목사

엊그제 두 분의 입원 환우를 심방했습니다. 한 분은 골절이고, 한 분은 심장 수술한 직후였습니다. 골절로 인해 부어오른 다리와, 심장을 수술한 후 부어오른 온몸에는 모두 심한 통증이 있었습니다. 움직일 때, 숨을 쉴 때 느끼는 통증은 옆에서 보는 이도 고통스러운데, 당사자는 얼마나 큰 고통을 느끼겠습니까?

통증은 의학적으로 신체가 이상 상태를 감지하고 이를 뇌에 전달하는 신호로 정의됩니다. 이는 신경계가 손상이나 질병, 염증 등 잠재적 위협을 인식하여 우리에게 경고하는 방식입니다.

통증의 의미는 단순히 불편함을 넘어 신체가 "도움이 필요하다"고 보내는 메시지로 볼 수 있습니다. 만약에 이 통증이 없다면 그것은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신호를 더 이상 보내지 않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통증이 있다는 것은 비록 그것이 큰 아픔이지만, 몸이 아직 이상 현상들과 싸워 이기려는 희망의 신호이기도 합니다. 

육신의 통증만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신앙생활에도 영적 통증이 있습니다.  영혼이 죄의 바이러스가 침투하여 이상 신호를 감지하고,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이대로 놔두면 영혼이 고장 나고, 마비되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으며, 말씀을 섭취할 수 없기 때문에 영혼의 통증이 신호를 보내는 것입니다.

때론 마음이 답답해지기도 하고, 기도가 잘 안되고, 감사가 적어지고 불평이 생기며, 예배 가는 걸음에 기쁨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작은 일에 시험에 빠지고, 성경을 읽으면 졸음이 오며, 찬양해도 감동이 없어지기도 합니다. 대인 관계에 마찰이 생기고, 신앙에 대한 회의가 생기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공통으로 영혼의 통증으로 경험해 온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쁜 현상만은 아닙니다. 마치 육신의 통증이 아직 이겨낼 희망을 품고 있기에 통증의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말입니다. 나의 영혼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신호를 보내는 것입니다.

통증이 있으면 그 통증의 근원을 치료해야 하듯이, 영혼의 통증이 생기면 그 근원을 우리의 치료자 되시는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수술대에 나의 몸을 의사에게 맡기듯이, 내 영혼을 하나님의 손에 맡겨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의 능하신 손으로 우리 영혼을 아름답게 소생시키십니다.

영혼의 통증이 있으신가요? 그의 능하신 손으로 회복되시는 역사가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