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생텍쥐페리가 한 말 중에서 아주 중요한 내용이 하나 있다.
“It is only with the heart that one can see rightly; What is essential is invisible to the eye.” 우리말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사람은 오직 마음으로만 올바로 볼 수 있다. 본질적인 것은 눈으로는 볼 수 없다.”
생텍쥐페리의 이 말은 성경에 나오는 한 구절의 의미와 똑같다는 점에서 충격을 준다.
[2] 삼상 16:7b에 나오는 우리말 개역개정역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우리가 너무나 많이 알고 있는 구절이다. 하지만 이 구절이 히브리어 원문의 내용과 다르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몇 있겠는가?
나 역시 2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말과 영어 성경 구절의 내용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알지 못했다.
[3]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너무도 옳은 말씀이고, 이해하기 쉬운 내용이기 때문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삼상 16장을 연구하다가 우연히 성경 원문을 살펴보는데, 우리말이나 영어 성경의 내용과 전혀 다름을 처음 알았다. 우리말 구절 속에는 ‘외모를’과 ‘중심을’이란 목적어가 두 개 나와 있는데, 원문에는 목적어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하고 무척 놀랐다.
[4] 그 구절 속에는 목적어 대신 전치사만 존재할 뿐이었다. 삼상 16:7b절을 원문대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사람은 ‘두 눈으로’(לַעֵינַ֔יִם, according to the eyes)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마음(심장)으로’(לַלֵּבָֽב, according to the heart) 보느니라”(신 교수 역)
이해하기 쉽게 풀어쓰면, “사람은 육안으로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심안으로 보느니라”란 뜻이다. 그렇다고 우리말 성경의 내용이 틀렸단 말은 아니다.
[5]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마음)을 보느니라.” 이 내용대로 나부터가 상대방의 마음보다는 외모를 보고 판단할 때가 많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가 아니라 중심(마음)을 보신다는 것이다. 뭐가 문제일까? 백 번 천 번 옳은 말씀이긴 하지만, 본 구절은 그 내용을 얘기하지 않고 다른 뜻을 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은 '육안으로'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심안으로' 보느니라.”
[6] 우리말 구절보다 더 깊고 근원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내용임을 알아야 한다. 그럼 두 문장을 결합해서 소개해보자. “사람은 육안으로 상대방의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마음(심장)으로 사람의 중심을 보느니라.” 보다 구체적이고 완벽한 내용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으로 사람을 판단하시는데, 다윗은 바로 그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according to Yahweh's heart) 사람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울왕을 버리고 다윗에게 기름 부어주신 것이다.
[7] 생텍쥐페리가 삼상 16:7b의 원문을 읽고 참조해서 한 말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그가 남긴 “사람은 오로지 가슴으로만 올바로 볼 수 있다. 본질적인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라는 말은 이 구절의 원문 내용과 딱 맞아떨어지는 내용임을 알 수 있다. 인간의 눈은 사람의 외모만 파악할 뿐이지만, 우리의 마음은 사람의 중심까지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더는 육안으로 남을 판단하지 말고, 우리 속 깊숙한 곳에 있는 마음의 기준으로 상대방을 보고 판단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