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교 덕 윤리가 오늘날 한국 인성교육에서 중요한 이유? 이번 박욱주 박사님의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에서는 지난 주에 이어 LG 유플러스tv에서 제작한 드라마 <선의의 경쟁>을 분석합니다. 웹툰 기반의 이 드라마는 입시 경쟁이 벌어지는 상위 1% 채화여고에 전학온 '슬기'에게 각자의 욕망을 드러내는 친구들, 그리고 수능 출제 위원이었던 아버지의 의문사를 둘러싼 '미스터리 걸 스릴러'입니다. 혜리, 정수빈, 강혜원, 오우리, 김태훈, 갓세븐 영재 등의 배우가 출연합니다. -편집자 주
현 교육체계, 일제강점기 정립된
근대 국민교육 방식 그대로 답습
양적 공리주의 교육관 사상 기초
사회 행복 총량 많을수록 긍정적
공리주의 교육: 한국 교육체계 속 공리주의의 문제
<선의의 경쟁>에 등장하는 도덕적 규준이 결여된 학생과 학부모들의 모습은 세속화된 공교육 체계의 심각한 도덕적 빈약함을 보여준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마치 근 20-30년 내 발생한 일로 간주한다. 그리고 1960-70년대 한국 교육계 분위기와 지금 공교육 현장의 분위기를 비교하는 데 주력한다.
이런 행태는 특히 당시 학창시절을 보낸 장년 세대에서 두드러진다. 그런데 사실 우리 공교육 체계의 도덕성 결여는 현재 장년 세대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생각보다 오래 지속돼 온 고질적 문제다.
1960-70년대라 해서 학교에서 인성교육이 제대로 이뤄졌던 것은 아니다. 그 시절 학생들이 지금보다 더 예의범절을 갖추고 권위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은, 사실 공교육 현장에서의 인성교육보다 조선시대부터 전래된 가정 내 유교적 예절교육의 전통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인성교육의 빈약함은 비단 한국 공교육 체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속화된 근대 공교육 체계를 갖춘 거의 모든 나라에서 학생들의 덕과 윤리의식 함양 부족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공교육 현장에서 전달해야 할 지식의 양과 질이 교사와 학생들에게 갈수록 더 큰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한 사회의 산업, 경제구조가 고도화될수록 교육자들이 학생들에게 전해야 할 지식의 양과 복잡함은 증대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은 급격한 산업화와 고도성장기를 거쳐 나름 경제 선진국 말석에 자리잡은 나라로 인정받고 있다. 한민족 역사상 가장 높은 국가적 위상을 누리는 현 시점에서, 국민들 각자 짊어져야 할 삶의 부담과 책임은 더욱 커지고 있다.
여기서 삶의 부담과 책임이란 경제적 요인만을 말하는 것이 아닌 문화와 사회윤리, 시민의식, 품성 측면을 모두 포괄한다. 40-50년 전 대한민국 시민들에게 요구되는 삶의 건실함 수준보다, 오늘날 대한민국 시민들에게 요구되는 삶의 건실함의 수준이 훨씬 더 높아졌다.
한국 교육 체계는 교육 내용이 조금 바뀌긴 했어도, 기본적으로는 일제강점기 시절 정립된 근대 국민교육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이 교육 체계는 기본적으로 공리주의 교육관, 보다 구체적으로 분류하자면 협소하게 규정된 양적 공리주의 교육관에 사상적 기초를 두고 있다.
양적 공리주의(quantitative utilitarianism)란 영국 철학자이자 법학자인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이 주창한 사상으로, 사회적 효용의 양적 총량 증가를 도덕적 선의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쉽게 말해 한 사회 구성원들이 느끼는 행복 총량이 증가한다면, 그 사회는 선한 사회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한국 교육 체계는 교육 내용이 조금 바뀌긴 했어도, 기본적으로는 일제시대 정립된 근대 국민교육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이 교육방식은 협소하게 규정된 양적 공리주의 사상에 기초를 두고 있다.
선교사들 설립한 최초 교육기관
온전한 기독 신앙인 양육이 목표
성경으로 선의지와 덕 함양 추구
지성·인성 모두 훌륭하게 교육해
오늘날 교육, 일제시대와 비슷해
인성교육, 처참할 정도로 빈약해
온전한 인성교육 교회 역할 필수
공교육 어두운 그림자 벗어나야
성경중심 교육: 일제시대 황민화 교육의 잔재 탈피
그렇다고 벤담이 사회 구성원의 말초적 쾌락과 만족감 양을 늘리는 데 주된 가치를 둔 것은 아니다. 그가 도덕적 선을 양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개념으로 치환한 것은 그의 시대에 아직 사회적 효용을 양적으로 측량할 이론적 기준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저 유명한 표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내세웠을 때, 그는 분명 '행복'의 필수조건으로 정의와 덕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벤담의 공리주의에 암시된 도덕적 동기는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에 이르러 사상적으로 체계화·구체화된다. 밀은 행복이 양적으로만 아니라 질적으로, 즉 도덕적으로도 온전해야 한다는 질적 공리주의(qualitative utilitarianism)를 이론화해 벤담 공리주의를 계승, 보완한다.
우리 한국에 처음 이식된 근대 교육체계는 원래 밀이 주장한 질적 공리주의가 추구하는 바와 유사하게, 도덕적 선의지와 그 실천을 강조하고 힘써 가르쳤다. 이는 한국에 처음 근대적 교육 체계를 이식한 이들이 주로 북미에서 건너온 개신교 선교사들이었기 때문이다.
언더우드, 아펜젤러, 스크랜튼, 마펫 등이 설립한 한국 최초 근대 교육기관은 모두 온전한 기독교 신앙인을 길러내는 데 궁극적 목표를 두고 있었다. 그래서 정규교육 과정에 반드시 성경 과목을 넣어 기독교적으로 온전하면서도 유교적 덕목과 조화를 이루는 선의지와 덕의 함양을 추구했다.
▲미국 북감리회 선교사 아펜젤러에 의해 설립된 배재학당, 1890년경.
이런 교육방침은 김규식·안창호·이승만·윤동주·유관순을 비롯한 수많은 기독교인 독립운동가 탄생의 원동력이었다. 이들은 일본 제국이 야마토 정권을 신격화하고 그 후세인 일왕을 우상화하는 데 대해, 그리고 이런 우상화를 기반으로 정복 전쟁을 일삼는 강포하고 불의한 국가정체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국권뿐 아니라 문화와 정신, 그리고 도덕의식까지 일제로부터 완전하게 독립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미국 선교사들과 초기 한국 개신교계의 교육 체계는 비록 그 힘은 미약했지만, 지성과 인성 양측을 모두 훌륭하게 함양하는 교육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모범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범적 교육 체계는 일제 황민화 교육의 압박 때문에 후대에 온전하게 이어지지 못했다.
일제 황민화 교육의 요체는 군국주의 일본의 핵심 권력층인 군부를 지탱하는 군인과 이들을 지원하는 기술자 양성에 있었다. 당연히 황민화 교육은 항상 '국체'(國體)를 위협하는 외부의 적을 만드는 호전성, 그리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투에서 승리하는 폭력적 패권주의를 기본 정서로 삼고 있었다.
이는 군국주의적으로 기형화된 양적 공리주의 교육관을 반영한 것이었다. 일왕과 군부의 행복 총량 증가가 곧 황국신민의 행복 증가라는 거짓된 논리가 교육의 기본정서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태평양 전쟁 시기에는 황민화 교육의 호전성과 폭력성이 극단으로 치달았다. 당시 공교육은 오로지 '귀축영미(鬼畜英米, 악귀와 짐승같은 영국과 미국)'를 적대시하는 데 목표를 둔 세뇌교육 그 자체였다. 이 시기 기독교의 선과 덕 개념은 서구의 위선적 도덕관념이라 하여 전면 거부되었다. 이런 교육 체계 안에서 선이란 오직 정권 수뇌부에 대한 충성뿐이었다.
한반도는 다행스럽게도 미국을 비롯한 제2차 세계대전 연합국 덕분에 일제로부터 해방을 맞이했지만, 사회 다른 여러 분야와 마찬가지로 교육 분야 역시 일제시대 체계를 대부분 그대로 이어받았다. 새로 어떤 체계를 구축하기에는 자원도 인력도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리고 황민화 교육 체계는 가르치는 내용만 바꾸면 정권에 맹목적으로 순복하는 기술자들을 길러내기에 적합했으므로, 해방 후 우리 사회 지도층은 굳이 기존 교육 체계에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결과 해방 후 8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우리 한국 공교육 체계는 근본적으로 일제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자라나는 세대를 양육하고 있다. 다소 강압적 지식 주입과 경쟁 조장을 특징으로 삼는 현 한국 교육 체계는 단기간에 뛰어난 학력을 갖춘 학생들을 발굴하고 길러내는 데는 유용하다.
▲다소 강압적인 지식 주입과 경쟁 조장을 특징으로 삼는 현 한국 교육체계는 단기간에 뛰어난 학력을 갖춘 학생들을 발굴하고 길러내는 데는 유용하다. 하지만 인성교육 측면에서는 처참할 정도로 빈약하다.
하지만 인성교육 측면에서는 처참할 정도로 빈약하다. 기독교적 선의지와 덕, 그리고 그 실천 방안을 가르치는 훌륭한 전통이 거의 실종되다시피 한 상황이라 학교가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도덕교육 기회를 거의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금의 교육 현장에서 도덕과 윤리는 '생활과 윤리', 그리고 '도덕과 사상' 같은 수능 사회탐구 선택과목의 오지선다 문제거리로 인식될 뿐, 삶의 핵심가치로 인식되지는 않는다.
<선의의 경쟁>에 묘사된 채화여고 학생들의 비열한 경쟁의식과 비틀린 권력욕은 과거 황민화 교육이 주입했던 호전적이고 폭력적인 패권주의의 현대적 변용에 불과하다.
이 패권주의는 개발독재 시대 교육 체계에서는 반공의식으로, 문민 민주화 시대 교육 체계에서는 혁명적 민중주의와 민족주의로 그 양태를 달리했고, 현재는 순수한 배금주의로 돌변해 학생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만들고 있다.
이 암담한 상황에서 우리 실정에 맞는 온전한 인성교육을 회복하려면, 교회와 기독교인 교육자들이 역할이 필수적이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시대적 요청에 부합하는 지성과 인성을 조화롭게 함양하는 데 성공했던 유일한 교육 체계는 기독교 선교사들과 교육자들이 마련한 성경 중심 교육체계였다.
이에 대한 자각과 고찰을 통해, 학생들의 인성을 파탄으로 몰아넣는 현재 우리 공교육 체계의 어두운 그림자를 몰아내야 한다.
▲<선의의 경쟁>에 묘사된 채화여고 학생들의 비열한 경쟁의식과 비틀린 권력욕은 과거 황민화 교육이 주입했던 호전적이고 폭력적인 패권주의의 현대적 변용에 불과하다. 이 패권주의는 현재 순수한 배금주의로 돌변해 학생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만들고 있다.
박욱주 박사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 좁은문은혜교회에서 목회자로 섬기면서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박욱주 교수.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 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