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살얼음이 얼어 있는 길을 다녀야 하는 겨울입니다.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어쩌면 살얼음판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기도 하는 요즈음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 아버지가 내 아버지가 되시고 그분이 나의 길을 인도하여 주신다는 믿음이 오늘도 나를 바로 서게 하고 앞으로 나가게 합니다. 형제의 삶에도 이 믿음이 더욱 굳건해 져서 살얼음판 같은 이 세상에서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기도하며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합니다.
이번 주 형제와 나눌 말씀은 니고데모의 이야기입니다. 니고데모는 유대인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런 사람이 예수님을 밤에 찾아왔다는 것은 그 안에 확실한 답을 얻지 않으면 못 견딜만한 궁금함이 있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는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 예수님 앞에서 고백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고백에도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다시 태어남은 과연 무엇일까요? 니고데모는 분명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분이 나의 죄 문제를 해결하여 주실 메시아라는 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죄 사함, 구원은 율법을 다 지키고 선한 행실만이 가능하다고 여겼고, 다른 방법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니고데모는 그 시대의 고정관념에 갇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다만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까지 자신과 수많은 유대인이 수 대에 걸쳐 쌓아 온 고정관념의 벽을 쉽게 허물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 잡던 어부들, 세상에서 멸시받던 창기들과 세리들은 이 다시 태어남의 의미가 너무 확실하게 다가왔음에도 그 당시 종교 지도자요 정치적 지도자였던 니고데모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의미였습니다.
이 고정관념의 벽은 교회 안에 상상외로 아주 높게 쌓여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를 오래 다닌 몇 대째 크리스천인 사람들에게 이런 현상은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경험한 신앙생활이 신앙의 다인 것처럼 여기고, 자신의 조상들이 믿어 왔던 방식이 믿음의 정석이라 여기면서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신앙생활을 가벼이 여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감당하지 못하는 큰 짐을 새로 믿은 사람들에게 지우려 하고 그들이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막으려 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제까지 자신이 수고한 만큼 하지도 않으면서 믿는다고 고백하며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결코 기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형제와 저는 이런 고정관념의 벽을 예전에 부숴 버리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세상을 축복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사실은 오늘 변화를 멈추고 지금의 것에 안주하게 되면 또 다른 고정관념의 벽을 쌓아 올리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주님께 다시 기도합니다.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새 부대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