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언론회(대표 이억주 목사)가 육군사관학교에 세워진 홍범도 흉상 이전과 관련, '홍범도는 육사의 롤모델이 결코 될 수 없다'는 제목의 논평을 8월 29일 발표했다.
교회언론회는 "홍범도는 일본군과 싸운 봉오동 전투나 김좌진 장군과 함께 싸운 청산리 대첩까지는 모두가 인정하는 독립군"이라며 "홍범도는 독립군 활동으로 혁혁한 공을 세우기도 했지만, 1921년 이후 행적으로 인해 흔쾌하게 자유대한민국에서 받아들이기에 문제가 있는 인물"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1921년 일제에 쫓긴 독립군들이 대부분 소련 스보보드니시(자유시)에서 모여 있을 때, 적군(赤軍·소련군)에 가입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대대적인 살해사건과 무관하지 않다"며 "그는 우리 독립군을 무참히 학살한 적군 편에 섰고, 그가 끝까지 목숨 바쳐 싸운 다른 독립군들과 다르게 혹은 우리 민족과 함께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교회언론회는 "홍범도는 1922년 모스크바에 가서 당시 소련 최고 지도자였던 레닌으로부터 상금과 자기 이름이 새겨진 권총과 소련 군복을 하사받았고, 소련군 제5군단 합동민족여단의 대위로 편입됐다. 그리고 1937년 스탈린에 의하여 카자흐스탄으로 옮겨져 살다 1943년 당시로서는 드물게 75세로 장수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오랫동안 역사에 묻어둔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도 조심스럽지만, 이 문제를 소환한 것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라며 "문 전 대통령은 2018년 홍범도의 흉상(다른 네 분도 포함되나 논란이 되지 않음)을 육사 교정에 세우게 하고, 생도들에게 경례하게 했다. 이제 윤석열 정부로 바뀌고, 잘못된 역사관을 고친다는 입장에서 홍범도 흉상을 독립기념관으로 옮긴다 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어려운 문제일수록, 근본과 역사적 사실관계를 살펴보고 객관적으로 처리하면 된다. 육사는 해방 이후 생긴 군사전문학교로, 6.25 전쟁을 치르면서 크게 살신성인을 실천하게 된다"며 "홍범도는 자유대한민국 건국을 방해하려 했고, 적화통일하려 한 공산주의와 맞닿아 있다. 그가 좋든 싫든 선택한 것도 공산주의이다. 그러므로 항일운동만 하면 공산주의자라도 괜찮다는 논리가 적용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더군다나 "그는 육사의 태동이나 육사의 발전에 기여한 바가 없기에, 육사 생도들의 롤모델이 결코 될 수 없다. 이에 육사 교정에서 그의 흉상을 철거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를 자꾸 부정하고 막는다면 오히려 지하에 있는 분을 더욱 욕되게 만드는 것"이라며 "이는 정쟁(政爭)이나 우격다짐으로 될 문제가 아니다. 역사의 격랑 속에서 치열하게 살았던 분들에 대해 더욱 객관적이고 합당하고 공정하게 평가하는 것이야말로 후대들에게 바른 역사를 학습케 하는 것 아닌가. 우리 세대는 이런 것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논평 전문.
홍범도 흉상 육사 교정 철거 논란에 대하여
홍범도는 육사의 롤모델이 결코 될 수 없다
최근 광주시의 정율성 기리기와 함께, 육군사관학교에 세워진 독립군 출신의 홍범도 흉상 철거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사실 홍범도는 독립군 활동으로 혁혁한 공을 세우기도 했지만, 1921년 이후의 행적으로 인하여 흔쾌하게 자유대한민국에서 받아들이기에는 문제가 있는 인물이다.
홍범도는 일본군과 싸운 봉오동 전투나 김좌진 장군과 함께 싸운 청산리 대첩까지는 모두가 인정하는 독립군이다. 그러나 1921년 일제에 의하여 쫓긴 독립군들이 대부분 소련의 스보보드니시(자유시)에서 모여 있을 때, 적군(赤軍·소련군)에 가입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대대적인 살해사건과 무관하지 않다.
홍범도는 이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거나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들이 있으나, 백번 양보해도, 홍범도의 이후 행적을 살펴보면 그의 의도를 알 수 있다. 그는 우리 독립군을 무참히 학살한 적군편에 섰고, 그가 끝까지 목숨 바쳐 싸운 다른 독립군들과 다르게, 혹은 우리 민족과 함께 하지 못한 것을 발견한다.
홍범도는 이후 1922년 모스크바에 가서 당시 소련의 최고 지도자였던 블라디미르 레닌으로부터 상금과 자기 이름이 새겨진 권총과 소련 군복을 하사받았고, 소련군 제5군단 합동민족여단의 대위로 편입되었다. 그리고 1937년 스탈린에 의하여 카자흐스탄으로 옮겨져 살다 1943년 당시로서는 드물게 75세로 장수하였다.
나라 잃고, 국권 잃고, 오갈데 없는 삶을 살았던 분들의 시대적 비극은 지금도 우리의 가슴을 저미게 한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가 누리는 자유대한민국과는 동떨어진 분들이기에 오랫동안 역사에 묻어둔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도 조심스럽다. 그런데 이 문제를 소환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8년 홍범도의 흉상(다른 네 분도 포함되나 논란이 되지 않음)을 육군사관학교 교정에 세우게 하고, 육사생들에게 경례를 하게 했다. 그리고 2021년 1월에는 홍범도의 유해(遺骸)를 가져와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시킨다.
이제 윤석열 정부로 바뀌고 나서, 잘못된 역사관을 고친다는 입장에서, 육사 교정의 홍범도 흉상을 독립기념관으로 옮긴다 하여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광복회까지 가세하여 옮기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참 어려운 문제이다.
그러나 어려운 문제일수록, 근본과 역사적 사실관계를 살펴보고 객관적으로 처리하면 된다. 육사는 77년의 전통을 가진 호국 간성의 요람이다. 육사는 해방 이후 생긴 군사전문학교이다. 또 이들은 6.25 전쟁을 치르면서, 크게 살신성인(殺身成仁)을 실천하게 된다.
지금까지 육사 출신들이 공산주의자들과 싸우다 1,475명이 산화했다고 한다.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그들이 죽으면서까지, 그리고 우리나라를 침략한 공산주의 세력으로부터 국가를 지키기 위한 숭고한 희생이 아닌가? 그런데 그런 육사 교정에 공산주의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홍범도의 흉상을 세워놓고 육사생들이 거수경례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이것은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홍범도를 부각시키려다 오히려 국민들이 홍범도의 과거 이력을 더 자세히 알아버리는 사건이 되고 말았다. 현재 우리의 주적(主敵)인 공산주의자들과 싸워야 하는 육사 생도들에게 혼란을 부추기는 일이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일성에 의한 6.25남침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김원봉도 '국군의 뿌리'라고 한 적이 있다. 대통령은 국군통수권자이다. 그런 위치에서 공산주의자이며, 우리에게 총부리를 들이댄 인물을 국군의 뿌리라고 한 것은 몰지각, 몰역사적 발언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제 시대 엄청난 애국 운동을 한 지식인들도 있었는데, 이들이 잠시 달라졌다하여 '반민족행위자'로 낙인을 찍어버렸다. 기미독립선언문을 쓴 최남선, 애국가의 작사자 윤치호, 그 외에 이광수, 장덕수, 송진우 등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되었다.
그러나 유독 공산주의와 관련된 인물들에 대해서는 관대한 편이다. 잠시 일제에 동조한 것을 보고 반민족행위자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독립운동을 했으나 공산주의에 들어간 인물들도 똑같은 잣대로 '반민족행위자'로 규정하는 것이 맞는 것이 아닌가?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철 지난 '색깔론'이라고 덮여 씌우려는 사람들도 있다. 이는 색깔론이 아니라 역사를 비틀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이를 되돌려놓으려는 정상적 행위라고 본다.
홍범도가 독립군으로 잠시 나라를 위해 싸운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침략하여 공산화하려고 했던, 소련, 중공, 북한 편에 있었던 사람들까지 과거 독립군의 공적으로써 두루뭉술하게 위인으로 덮어가려는 것은 안 된다.
홍범도는 자유대한민국의 건국을 방해하려 했고, 적화통일하려 한 공산주의와 맞닿아 있다. 그가 좋든 싫든 선택한 것도 공산주의이다. 그러므로 항일운동만 하면 공산주의자라도 괜찮다는 논리가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그는 육사의 태동이나, 육사의 발전에 기여한 바가 없기에, 육사생들의 롤모델이 결코 될 수 없는 분이다. 따라서 육사 교정에서 그의 흉상을 철거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이를 자꾸 부정하고 막는다면 오히려 지하에 있는 분을 더욱 욕되게 만드는 것이 됨을 알아야 한다.
이는 정쟁(政爭)이나 우격다짐으로 될 문제가 아니다. 역사의 격랑 속에서 치열하게 살았던 분들에 대하여, 더욱 객관적이고, 합당하게, 그리고 공정하게 평가하는 것이야말로, 후대들에게 바른 역사를 학습게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 세대는 이런 것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