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 기독일보) 월드미션대학교 윤임상 교수
(Photo : 기독일보) 월드미션대학교 윤임상 교수

리처드 로어(Richard Rohr 1943- )가 지난 2011년에 쓴 책 Fallowing Upward(위쪽으로 떨어지다)에서 그가 이런 말을 합니다. "아래로 내려간 사람들만이 위로 올라가는 것이 무엇임을 이해한다. 아래로 떨어진, 그것도 잘 떨어진 사람들이 위로 올라갈 수 있고 그 위를 오용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다" 이 말을 떠올리며 작곡가 쥬세피 베르디(Giuseppe Fortunino Francesco Verdi, 1813 - 1901)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는 '근대 오페라의 거목'이라는 호칭을 받으며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 오페라 시장에서 그가 남긴 26개의 오페라 그리고 레퀴엠이 끊임없이 연주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작곡가로 입문한 초기 그의 삶에서 가장 깊고 험난한 시련의 계곡을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그가 1839, 1840년, 연속해서 그의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 오페라(오베르토 Oberto, 하루만의 임금님- Un Giorno di Regno)를 만들어 각각 무대에 올려 초연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청중들의 반응은 싸늘하였고 결국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무참히 실패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깊은 나락에 빠지면서 자신을 잃게 되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어지는 고통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836년 결혼하여 그 이듬해에 낳은 아들과 아내를 차례로 잃어버리게 되는 사건이었습니다. 이러한 비극의 연속은 베르디가 한때 작곡마저 단념하며 모든 것을 포기하게 했습니다. 

깊은 실의 속에 두 해를 보낸 베르디는 1842년 당시 라 스칼라극장의 지배인으로 있던 바르톨로메 메렐리 (Bartolomeo Merelli 1794-1879)의 집요한 설득으로 오페라 대본가 레라(Temistocle Solera, 1815-1878)가 구약 성경에 나오는 나부코 왕(성경 속 느부갓네살)의 행적을 내용을 토대로 쓴 대본을 건네받게 됩니다. 그렇게 마음에 내키지 않은 심정으로 오페라 대본을 접하게 된 베르디는 이것을 통해 의욕을 되찾아 작곡에 다시 손을 대기 시작하며 재기에 의욕의 불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베르디가 이 오페라에 깊은 관심을 두게 된 이유를 두 가지로 추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민족주의 작곡가로 유명한 그는 대본의 내용이 당시 이탈리아의 정치적 상황을 대변해 줄 수 있는 것이란 확신이었습니다. 당시의 북이탈리아가 오스트리아로부터의 정치적 독립을 하고 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전국민적인 애국 운동으로 온통 술렁거리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민족의식과 자유의지의 열망이 베르디의 오페라 정신을 지배하던 중 "나부코"의 대본을 읽고 완전히 매혹당해 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둘째, 오페라 작곡가로서 그는 두 개의 작품을 완전히 실패한 이후 재기를 다져야 하는 절대적인 위기 상황 속에서 "나부코"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작곡에 손을 대고 이 작품에 완전히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베르디는 그의 세 번째 오페라 작품이 된 나부코(Nabucco)를 써서 1842년 3월 9일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 감격스러운 초연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자처하던 이스라엘 민족이 이방 민족인 바벨론의 포로가 되는 수난, 그로 인한 고통과 환난, 이렇게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처절함 속에 있던 그들이었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며 민족의식과 신앙을 잃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려는 그들의 강인한 결속력은 베르디 스스로 감동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거대한 스케일과 장대한 무대 규모를 마음껏 표현하면서 유대왕국의 멸망에 따른 나부코의 행적을 쫓는 그의 음악 정신은 결국 뜨거운 불꽃을 피워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이것을 통해 이탈리아 국민들에게 거대한 불을 지피게 되었던 것입니다. 

급기야 이 작품은 대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이후 무려 67회나 연속 상연될 정도로 오페라 팬들을 열광시켰던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이후 베르디는 50여 년에 걸쳐 만들어진 23개의 모든 오페라 작품은 하나도 빠짐없이 대단한 인기를 독차지하며 오늘까지 전 세계의 오페라 시장에 주 레퍼토리로 연주되고 있습니다. 결국 이것이 베르디가 근대 오페라의 거장이라는 호칭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 오페라 중 3막에서 부르는 '노예들의 합창(Va Pensiero)은 대중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오페라 합창곡입니다. 내용은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와 억압과 노역에 시달리는 히브리노예들이 유프라테스강변에서 조국을 그리워하며 조국을 향해 부르는 노래를 소재로 하였습니다. 베르디는 이 합창곡으로 조국의 해방과 통일을 염원하는 최고의 절정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이 곡의 내용, 그리고 당시 이탈리아의 상황은 우리 민족의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와 너무 유사한 역사를 표현하고 기억되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이 일본의 압제로부터 해방을 주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중한 찬양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들에서 오늘날까지도 해마다 광복절을 전후해서 "자유와 평화"라는 제목으로 의역된 가사를 가지고 많이 불리고 있는 것입니다. 

C S 루이스(Clive Staples Lewis (1898 - 1963)가 쓴 '고통의 문제'라는 저서에서 '고통은 영웅의 자질을 드러낼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놀라울 만큼 많은 이들이 그 기회를 잡고 있습니다'라고 서술하며 책을 마무리합니다. 저는 감히 베르디는 루이스가 이야기한 "고통은 영웅의 자질을 드러낼 기회를 제공합니다."라는 말을 이룬, 그리고 리처드 로어가 이야기 한 아래로 내려간 사람들만이 위로 올라가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고 아래로 잘 떨어졌기에 높은 곳으로 올라가게 된 대표적인 음악가였습니다. 

오늘의 우리가 겪는 크고 작은 시련과 고통이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다면 그것은 아직도 우리에게 "영웅의 자질을 드러낼 기회"라고 자꾸 귓전에 메아리로 성령께서 이야기하는 음성으로 들어보시지 않으렵니까? 그리고 누군가 혹시 아래로 떨어졌습니까? 이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다시 올라갈 수 있는 놀라 기회를 주신 축복의 서주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