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영웅이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세상에서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마음을 가진 다윗이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떠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곳 저곳으로 피신하며 압살롬의 반역에 대응하고 있을 때
성전을 떠난 다윗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런 야유와 조롱을 받습니다.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네 하나님이 너를 버렸다”
그래서 다윗은 깊은 실의와 좌절감을 느끼고 침체에 빠져
하나님께 이렇게 원망합니다.

(시42:3)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시43:2)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어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니나이까

다윗은 이 일로 인하여
눈물이 식사를 대신하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여러분의 삶은 지금 어떻습니까?
이 세상에는 아무런 문제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건을 만날 때 그 사건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사건을 바라보고 나의 입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장에서 해석하는 능력입니다.
어떤 문제나 어려운 일들이 갑자기 일어난다고 해서
저와 여러분이 악한 사람이기 때문이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악한 사람에게도 좋은 일이 일어나고,
좋은 사람에게도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천국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편안함이나 안일보다도
우리의 성품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성품이 성숙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망권세를 이기신 예수님을 닮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골짜기를
사용하셔서 우리로 성숙한 인생이 되게 하십니다.

우리가 지금 고난 당한다고 하지만 다른 무수한 사람들도
지금 이순간 비슷한 고난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난이라는 그 사건 속에도 인생의 경쟁력이 포함되어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고난이 타인의 고난보다도 클 것이라는 생각에만
빠져들지 말고, 나의 고난은 많은 사람들이 이제까지 이루었던 것처럼
충분히 극복될 수 있음을 깨달아 지금 당장 고난극복의 길에 들어서서
용기 있게 그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베개에 눈물을 적셔본 사람만이 별빛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의 여러 가지 시련과 고난을 당할 때는
적극적으로 수용하십시오 세상의 조롱과 환경에 집착하기보다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보십시오!

열심히 하시던 사역이 계획대로 잘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계십니까?
교회를 섬기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려다 보니까 세상의 조롱을 받습니까?
기도의 응답이 늦어져 “네 하나님이 어디 게신가” “기도해도 무슨 소용이 있는가”
“자신들이나 구원하지” 라는 비웃음을 받지는 않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목적했던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순간부터 방황하고 낙담하기 시작합니다.
누구든지 절망적으로 생각하면 금새 침체와 실의에 빠집니다.

여러분! 문제 앞에 나를 조롱하고 힘들게 하는 주위 환경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그리고 지금보다도 더욱 화려했던 과거의 형편과 위치를 비교하지 마십시오!
조롱과 멸시로 다가오는 자들에게 과거에 베풀었던 사랑을 후회하지 마십시오!
누구든지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에게는 세상의 조롱하는 소리와 사단의 유혹 속에도
그 사명에 충실한자에게는 주의 순결한 신부가 될 것을 확신합니다.

세상의 비웃음과 조롱은 다윗뿐만 아니라 예수님에게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죽음을 기다릴 때입니다.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했을 때
거기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가로되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가만 두어라 엘리야가 와서 저를 구원하나 보자 하고 비웃어 가로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 여든 자기도 구원할지어다 하며 조롱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저들의 조롱과 사단의 술수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자들을 향하여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 이다”[눅23: 32]
라고 오히려 기도하시고 “나의 영혼을 받으소서” 하시며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시며 운명하셨습니다.
문제를 해결하실 분은 오직 여호와 한 분 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과 예수님을 시험하던 사단은 오늘도 우리의 삶을
낙담과 침체로 인하여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를 끊임없이 이간하고 방해하며 조롱합니다.
자기 연민과 자괴감에 빠지도록 계속해서 우리를 환경 속에서 속이고 있습니다.

결국 그들의 꿈을 버리고 비전을 자포자기하게 합니다.
삶의 의욕을 잃고, 열의가 식어지고, 모든 활동들을 중지하도록 합니다.
내가 이처럼 밤낮으로 아무리 뛰어도 실적이 안 오를 것이라고 자포 자기 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내 실력과 내 머리로는 안 된다고 낙담에 빠지게 합니다.
될 대로 되라고 인생을 체념하게 합니다. 결국 나는 여기까지 밖에 안 된다고
자기 연민과 자괴감에 빠질수록 더욱 침체되고 맙니다.

여러분 이러한 사단의 전략인
낙담과 침체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환경과 사람을 통해서는 결코 해결할 수 없습니다.
다윗처럼 극락의 하나님께로 달려 나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제단으로 나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나는 하나님의 제단으로 나아가,
나의 극락의 하나님께로 나아가려 합니다.』(시43:4)

주님의 제단은 은혜를 베푸는 곳이며 새 힘을 공급해주는 능력의 산실입니다.
주님의 제단이 있는 성전을 가까이할수록 새 힘을 얻습니다.
주님의 제단에서 『극락의 하나님』(my exuberant God)을 만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제단은 우리에게 큰 기쁨을 주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목마른 사람은 다 내게로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에 이른 것과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가 강처럼 흘러나올 것이다』(요한복음 7:37-38).

구약시대의 한 신앙인도 그가 주님의 성전에서 얼마나 넘치는 행복을
만끽할 수 있었던지 이렇게 노래합니다
『나는 주님의 궁전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곳에서 천 날을 지내는 것보다 낫습니다.』 (시편 84:10)

영국의 훌륭한 목회자였던 스펄젼 목사님도
그의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낙담이나 실의에 빠진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전천후 인생을 살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간단하게 대답합니다.
『나는 언제나 주님만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위에 있는 사진을 잘 보십시오! 해바라기 입니다.
해바라기(Sunflower)가 해를 바라보는 순간은
그의 고개가 결코 아래로 쳐지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모두는 어떤 환경이 다가올지라도
마음의 초점이 오직 주님께만 고정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이 외쳤던 것처럼 이 말씀을 힘있게 외쳐보십시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그럴 때 우리 인생은 절대로 요동치 않을 것입니다.

♫♫♬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 도다 (시62:1)
오직 저만 나의 반석 이시요 나의 구원 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크게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시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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