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배우게 된다. 그러나 기도를 한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근심과 걱정을 일삼으며 살아가기가 쉬운데 그만큼 세상에 묶여서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심지어 기도를 하는 순간까지도 하나님이 정말로 들어 주실까 혹시 들어주지 않으시면 어떻게 하나 하면서 염려를 하게 된다. 언젠가 감기에 걸린 한 성도를 위해서 기도해준 일이 있는데 기도를 마치기가 무섭게 무슨 약을 먹으면 좋겠느냐고 물어 오는 것이었다. 이러한 염려는 세상이 가져다주는 것으로서 사람들은 이와 같이 기도를 하면서도 여전히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마가복음 11:20-25 말씀은 이러한 기도생활에 대해 우리에게 분명한 교훈이 되고 있다. 이는 이적을 행하는 예수님의 권능이 당시 그분을 따라다니던 제자들에게도 나타날 수 있음을 말씀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역사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도 분명히 나타날 수 있음을 가르쳐주고 있다. 다만 우리가 주님의 행하심을 체험하려면 먼저 해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그분과의 바른 관계를 이루는 일이다. 기도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노력이나 자신의 신념을 고집하는 일이 아니다. 기도하는 것은 부패한 마음을 비우고 오직 내안에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기를 간구하는 일이다. 이에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산을 옮기는 기도를 통해서 기도하는 것마다 온전히 응답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쉬지 않고 끊임없이 구하라
기도의 요소 가운데 첫 번째인 Ask 즉 하나님께 요구하는 부분으로서 그분께 구하는데 있어서 어떻게 구하느냐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무엇인가를 구할 때 적당히 구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기도에의 분명한 목적도 없이 구하려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같이 기도하는 것은 그분에게 문제의 보따리들을 풀어놓고 잠시 구경을 시켜드렸다가 다시 싸들고 돌아오는 것과 같은 일이다. 심지어 주님을 믿을 수 없기에 그분에게 짐을 맡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기도할 때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데 그분이 들어주신다는 확신도 없이 구한다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확실히 맡기고 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한국의 초대 교회사에 나타나 있는 이성봉 목사님에 얽힌 일화이다. 목사님이 한번은 제주도에 있는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하게 되었는데 육지로 나가는 배가 3일에 한 번밖에 없던 그런 시절의 일이다. 부흥회 3일째 되는 어느 날 갑자기 배에 통증이 오면서 급성 맹장염을 앓게 되었다. 당시 제주도에는 수술할 병원이 없기 때문에 육지로 나가야 했지만 당장 나갈 방법이 없었다. 목사님은 이와 같이 맹장염이 터져서 죽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을 때까지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순교를 각오하고 부흥회를 인도했는데 놀랍게도 다음 날 맹장염이 사라지면서 부흥회를 마칠 수 있었다 한다. 하나님이 하실 일을 전심으로 구하며 매달렸더니 그분이 고쳐주셨던 것이다. 주님은 예레미야 29:13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이는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끝까지 하나님을 찾으라는 말로서 그분은 지금도 전심으로 찾는 사람마다 만나주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하는 것이다.
사무엘상 7장에 보면 사무엘의 기도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잘 나타나 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온 족속으로 하여금 미스바로 모이도록 한 다음에 기도했는데 그들이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금식 하며 회개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치기 위해 올라오자 이스라엘 자손이 듣고 그들을 두려워하여 지도자인 사무엘에게 말한다.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그러자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을 취하여 여호와께 온전한 번제를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해 부르짖었고 이에 하나님이 응답하셨다. 사무엘이 예배드릴 때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 하자 하나님이 큰 우뢰를 발하여 블레셋을 어지럽게 하심으로 이스라엘에게 패망하도록 하셨던 것이다.
우리가 기도를 하는데 있어서 쉬지 말고 끊임없이 구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도를 쉬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음으로 죄를 범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기도를 쉬는 것이 죄가 된다는 말로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쉬지 말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Attention을 받을 수 있도록 그분에게 부르짖어야 한다는 말이다. 주님께 도움을 청하는데 있어서 항상 이러한 자세로 임해야 하는데 그분은 다급한 목소리로 찾을 때 열일 제쳐놓고 만나주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능력의 주님을 이러한 간절함으로 찾고 찾아야 하고 간절히 부르면서 끈질기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 것이다. 인생의 위기를 맞이하여 이처럼 주님을 찾으면 그분이 문제의 심각함을 아시고 삶의 현장에 911구조대를 급히 파견하신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들어주신다고 믿어라
기도의 기본요소 가운데 믿음에 해당하는 Believe이다. 믿음은 기도생활에 있어서 더없이 중요한 것으로서 본문 24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하나님이 이런 것도 들어주실까 의심하는 것은 기도생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기도할 때 어떤 면으로든 응답을 받게 되는데 원하는 것이 이루어질 때만 응답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무슨 일이든지 기도하고 구했으면 이미 받은 줄로 믿어야 하며 당장 이루어지지 않았을지라도 일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많은 때 현실을 따라서 움직이고 있는데 믿음은 현실을 초월해서 살아가는 일이다. 지금 당장은 이루어지지 않을지라도 바라는 일이 실제로 이루어질 것을 믿어야 한다. 우리가 오직 이러한 믿음으로 구할 때 구하는 것마다 무엇이든 응답받을 수 있는 것이다.
출애굽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하는 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 당시 그들은 앞에는 홍해 바다가 가로놓여 있고 뒤에서는 애굽 군대가 추격해오는 참으로 어려운 현실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현실에 대해 하나님을 원망하고 그분이 세우신 지도자에게 불순종하기를 서슴치 않았다. 그들은 홍해바다와 애굽 군대라는 앞에 놓여있는 환경만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 모세는 전능자이신 하나님을 바라보았는데 어려운 현실이지만 항상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능력의 주님을 바라보았다는 말이다. 그 결과 모세는 홍해를 두 쪽으로 갈라주시는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는데 믿음이란 이처럼 어떠한 형편에 처하든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환경을 보지만 믿음 있는 사람은 환경까지도 다스리시는 주님의 손길을 바라보게 된다는 말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라는 것들이 현실로 나타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도 Dream come true의 믿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현실에 묶여 살지만 믿음이 있는 사람은 현실을 초월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힘들다, 어렵다, 되는 일이 없다'는 얘기를 하지만 믿음 있는 사람은 '가능하다, 할 수 있다, 잘 될 것이다'는 얘기를 즐겨 한다. 똑같은 형편에 있지만 믿음이 있고 없는 것에 따라서 이처럼 삶이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기도에 대한 응답에 있어서 기도하는 사람의 생각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본문 23절은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말씀하는데 그렇다면 이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먼저 산을 들어서 바다에 던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말이다. 스가랴서에서 보는 것처럼 유대사회에서 아주 힘든 일이나 불가능한 일을 가리킬 때 종종 사용하는 표현이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을 다해서 믿음으로 구한다면 주님은 어렵고 불가능하다 생각되는 일도 가능하게 해주신다. 누가 불가능하다는 말을 하는가? 믿는 사람들은 절대로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이 가능하다 하시는데 어찌 그리 믿음 없는 말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자신의 능력과 경험만을 의지하는 사람은 기도의 응답을 경험할 수 없지만 무한하신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응답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삶이 힘들고 어려울수록 살아서 역사 하시는 능력의 주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하루하루 순간순간 그분의 도움의 손길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무한한 능력을 소유하신 분이기에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하게 하실 수 있다. 산을 옮기는 기도란 무한한 하나님의 능력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께 기도로 매달리면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까지도 가능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구하는 기도이다. 이에 태산 같은 문제가 있을지라도 일을 이루시는 그분에게 구함으로서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는 말이다.
주님의 응답을 확실히 소유하라
기도의 요소 가운데 마지막으로 생각해 보는 Claim 즉 기도의 응답을 청구하는 일이다. Claim이란 내 것으로 확신하고 챙기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비행기로 여행할 때 Baggage Claim을 하는데 그것은 자신의 소유물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Baggage Tag를 잃어버렸다 할지라도 내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에 자신 있게 Claim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그분이 주시는 기도의 응답도 이와 같은 확신으로 찾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자신의 물건을 찾듯이 기도할 때마다 응답을 Claim할 수 있어야 하는데 하나님께 간절히 구한만큼 확신을 갖고 찾아야 하는 것이다.
1945년 4월 12일은 미국의 현직 대통령이었던 루즈벨트가 세상을 떠난 날이었다. 당시 부통령이었던 트루먼이 대신 대통령 자리에 오르게 되었는데 많은 기자들이 취임 소감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방송을 보고 계시는 모든 분들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태어나서 단 한 번이라도 하나님께 기도한 일이 있는 분은 모두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트루먼이 급박한 위기에서 가장 필요하다고 여겼던 것은 이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중보기도였다. 그분은 사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어떠한 문제도 능히 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주신다고 했으면 말씀을 액면 그대로 믿고 받을 준비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에서는 많은 때 속으며 살아가고 있지만 신실하신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속이는 법이 없으시다. 그분이 하신 말씀을 분명히 믿는다면 그렇게 알고 말씀을 따라 청구해야 하는데 주님은 성경 여러 곳에서 우리가 구하는 대로 주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라." 이 말씀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이런 것도 들어 주실까 하면서 그분의 능력을 저울질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이런 것도 하실까 하면서 그분을 평가해서는 않된다는 말이다. 그분이 말씀을 통해서 한번 주신다고 약속을 했으면 의심하지 말고 이를 Claim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시간 이민생활로 힘들어하는 우리 모두에게 찾아와서 말씀하신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그분이 도와주신다고 했으면 틀림없이 그렇게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말씀을 확실히 믿고 구했다면 그분이 이루어주실 것을 믿고 Claim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에 우리는 말씀을 따라서 이렇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굳세게 하시고 도와주시며 강하게 붙들어 주십니다."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이러한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산을 옮기는 기도를 통해서 약속하신 기도의 응답을 받아 누리는 가운데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이루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