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죄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침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막 10:37-38>

박진우 목사 (켈러 한인 제일 침례교회 담임)
(Photo : ) 박진우 목사 (켈러 한인 제일 침례교회 담임)

동상이몽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 의미는 "같은 침상에 누워 있어도 각각 다른 꿈을 꾼다"는 의미입니다. 함께 같은 장소에 있어도 각자가 다른 생각과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사자성어입니다.

저에게 미국에 온 이유를 묻는다면, 간단하게 하나님께서 인도하셔서 순종함으로 왔다고 대답을 합니다. 하지만 제 마음속을 정직하게 들여다본다면, 크게 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의 병 수발로 10년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 때문에 온 열등감과 집이 쫄딱 망하자 가차없이 돌아서 버렸던 많은 사람들에 대한 배신감을 미국 유학을 통해 보상받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보란듯이 한국에 되돌아 가서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러한 성공을 목회를 통해서 하려는 것이 참으로 부끄럽지만, 사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저를 미국으로 부르시고 인도하신 꿈은 달랐던 것 같습니다. 빨리 신학공부를 해서 한국에 돌아가야 하는데 여러가지 상황을 막으셔서 40이 넘어서야 신학공부를 시작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오랫동안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셨습니다. 오히려 저를 낮추시기 위해 미국에 불러주신 것입니다. 미국에 온 목적과 이유가 예수님과 저는 동상이몽이었습니다. 저만 이렇게 동상이몽의 삶을 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 유명한 예수님의 제자들도 오늘 말씀에서 저와 같이 예수님과는 동상이몽으로 지내왔던 것 같습니다.

곧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자신의 존재를 나타낼 것을 눈치 챈 야고보와 요한이 어머니까지 대동해서 예수님께 자신의 원하는 것을 들어 달라고 요구를 합니다 (마 20:20) 그 소원은 바로 예수님이 나중에 영광스럽게 될 때 자신들에게 좋은 자리를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원에 예수님은 그들은 무엇을 구해야 할지를 알지 못한다고 하시면서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할 수 있는지를 되묻습니다. 그 말의 의미를 모르는 제자들은 자리 욕심에 그 길을 갈수 있다고 대답을 합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진정한 섬김의 삶이 무엇인지를 교훈 해 주고 계십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3년동안 함께 있었지만, 서로 동상이몽이었습니다. 왜 일까요?

예수님께서 생각하는 영광과 제자들이 생각하는 영광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영광이 무엇인가요? 바로 십자가였습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생각했던 영광이 무엇인가요? 바로 이 세상에서의 성공이었습니다.

우리가 자주 이렇게 자주 기도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제 비즈니스가 잘 되게 해주시고, 제 자녀가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취직하게 해주십시요." 내용상으로 이 기도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쩌면 이 기도를 하는 분들이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오늘 말씀의 제자들처럼 세상이 가지고 있는 영광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다는 겁니다. 높은 보좌에서 전지전능한 능력을 이 세상에 드러내는 것을 영광이라고 생각을 한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잘 되고 높게 되는 것이 그 높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기쁨이 된다는 것으로 대단한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것이 아닙니다. 바로 "십자가"입니다. 더 자세하게 말씀드리자면,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바르게 알고 기도하셔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다는 것은 십자가의 죽음에 동참하겠다는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잘 되게 해달라는 것의 바른 의미는 내가 잘되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게 아니라 내가 잘 되는 것을 통해 더욱 더 십자가의 고난의 길에 동참하겠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어쩌면 너무나 부담스럽고 희생이 따라야만 하는 기도입니다. 차라리 잘 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십자가의 고난의 길에 동참하기 쉬울 수도 있는데 왜 굳이 잘 되게 해 달라고 할까요? 더욱 더 잘 된다면, 그것을 내려놓는 어려움과 결단이 더욱 더 어려울 텐데 왜 굳이 잘 되게 해 달라고 할까요? 혹시, 하나님의 영광 때문이 아니라, 세상의 영광 때문이 아닐까요? 진짜 십자가의 길 때문에 잘 되게 해 달라는 것인지 여러분들의 마음을 잘 살피셔야 합니다. 먼저 예수님의 십자가의 감격과 은혜가 여러분들의 마음 속에 충만한지를 잘 살펴야만 합니다. 그것이 먼저입니다. 그래야만 어떤 상황이든 어떤 모습이든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자로 살아 갈수가 있습니다.

앞에서 제가 미국에 올 때 하나님과 동상이몽이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금은 어떨까요?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16년간을 여러가지 고난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확실히 알게 하셨습니다. 그 삶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만 드러내는 삶입니다. 나의 모습이 어떠하든 간에 오직 예수님만 존귀케 하는 삶입니다. 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너무 행복합니다. 너무 기쁩니다. 진작 이 삶을 살 걸 그랬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함께 이 삶을 살아가지 않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