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전 세계 거의 모든 도시를 위협했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고, 살아 남기 위해 싸워야 했습니다. 또한 수 많은 사람들이 실업 상태를 끝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중에도 토네이도와 홍수, 기타 자연 재해로 인해 우리는 소유를 잃어버렸고, 코로나 바이러스와 관련이 없지만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으로 진단을 받고 어려움에 직면한 이들도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고통과 아픔,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이 어디에 계십니까?"라고 묻게 됩니다.
저를 포함해 우리 모두의 삶에는 성경이 말하는 대로 문제와 시련, 고난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때 마다 우리는 밑바닥이 떨어지는 그 순간에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궁금해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와 보살핌을 의심합니다. 우리는 시련을 극복하는 능력을 의심합니다. 저는 의심으로 가득 찼던 저의 삶을 변화시킨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1970 년 여름, 저는 텍사스 서부의 작은 마을에서 청년들에 설교를 전하던 중에 충격적인 전화를 받았습니다. 누구도 원하지 않는 소식이었습니다.
철물점 관리를 하셨던 아버지께서 도둑을 붙잡았지만 도둑이 휘두른 망치에 크게 다치셨다는 비보였습니다. 아버지는 병원으로 옮겨졌고 삶과 죽음의 사이를 오가셔야 했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영원히 제 곁에 계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누구도 제 아버지를 해할 수 없을 만큼 아버지는 강하신 분이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모든 아들이 아버지에 대해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아버지는 그 끔찍한 사건 이후 10 일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저녁 제 영웅은 돌아가셨습니다.
그날 저녁 저는 병원의 작은 예배당으로 내려갔습니다. 그 어둠 속에서 저는 상실감에 눌려 손에 머리를 묻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순간이었지만 저는 그 어둠을 홀로 마주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예배당에서 하나님께서는 저와 함께 계셨습니다. 제 삶의 전 영역에서 그분께서는 늘 가까이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전의 제 삶에서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셨지만 그 작은 방에서 저는 하나님께 온전히 저의 삶을 드렸습니다. 너무 일찍 아버지를 잃은 것 같은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우리 삶에 비가 내리는 중에도 하나님께서는 무지개를 드러내십니다.
최근 한 여론 조사는 '하나의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면, 하나님께 무엇을 물을 것인지'를 조사했습니다. 가장 공통적인 대답은 "왜 좋은 사람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는가?"였습니다.
그 질문의 이면에 있는 논쟁에는 △만약 하나님이 계시고 그가 정말로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모든 능력을 가지고 사랑하고 우리를 보살피신다면 어떻게 고통을 받도록 허락하실까? △그는 우리가 직면한 어려움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힘있는 분이 아닐까? △하나님께서는 모두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라는 의문이 있습니다.
가장 헌신적인 그리스도인들조차 때론 삶의 가장자리에서 "하나님 왜 입니까?"라고 묻게 되고 기독교의 진부한 표현이나 인위적인 방법으로는 해답을 줄 수 없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폭풍우 속에서 무지개를 찾는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결국 야고보서를 읽으며 제가 필요했던 평안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야고보서 1장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야고보서 1:5-8)
야고보 사도는 "너희가 다양한 종류의 시련을 만났을 때"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살아있다면 역경에 직면하게 됩니다. 우리가 겪게 되는 어려움의 배후에 있는 이유를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고통과 의심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앎으로 우리는 셀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 1 : "나는 너의 지혜를 더할 것이다."
다시 무지개로 돌아가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오랜 시간이 흘러 하나님께서는 야고보서를 바탕으로 세가지 약속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중 첫 번째 약속은"내가 너의 지혜를 더할 것이다."라는 약속이었습니다.
몇 년 전, 저는 성경 여백에 다음과 같은 말을 썼습니다."우리 위에 있는 것이 우리 안에 있지 않는 한, 우리는 곧 우리 주위에 있는 것에 굴복 할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는 위에 있지만 그 안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만 받아들이는 수평적인 사고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신 우리는 하나님의 완전한 관점을 고려하는 수직적 관점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어떻게 이 놀라운 지혜의 선물을 얻을 수 있을까요? 야고보서 1장 5절은 우리에게 간단하게 요구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나아갈 때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인정하고 그분의 개입을 요청해야 합니다. 우리가 의심을 내려놓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선하고 자비로우시며 사랑이 많으십니다. 솔직하게 "하나님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답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할지라도 그는 우리를 거부하는 대신 포용하십니다. 그는 우리를 반기십니다.
"아빠, 여기 좀 와 주실 래요?"라는 말보다 아빠의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은 없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도 그 말을 듣고 싶어하십니다.
약속 # 2: "나는 너의 의심을 믿음으로 바꿀 것이다."
야고보서 1장은 우리가 삶 가운데 어려움에 처할 때 지혜를 구할 수 있을 뿐 만 아니라 하는 방법도 알려줍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의심하는 사람은 바람에 휩쓸리고 던져지는 바다의 파도 같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할 때는 믿음에 굳게 서야 합니다.
물 위를 걷었던 시몬 베드로가 생각납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본 것은 잘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바람과 파도, 그를 둘러싼 물결에 관심을 돌리자 그는 가라 앉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그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도움이 필요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의심을 도전을 막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근원이신 예수님에게서 눈을 뗄 때 베드로처럼 가라앉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우리는 다른 방법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극심한 도전 가운데 서도 우리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지혜에 의지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저는 폭풍 속에서 평안이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폭력적인 범죄로 가족을 잃는 것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은 살인자와 형사, 정의 시스템, 때로는 신을 향한 분노와 비난입니다. 그러나 저는 증오와 괴로움이 내 영혼에 뿌리를 내리게 하면 영원히 고통 받는 사람이 될 것임을 빨리 깨달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영이 저에게 용서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아버지의 목숨을 짧게 한 사람을 용서하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하나님이 궁극적인 재판관 이시며 제가 할 일은 용서임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분노에서 저를 해방시켰고 치유를 통해 내 삶의 경주를 달려갈 수 있게 했습니다.
당신의 상황은 사랑하는 사람의 비극적인 상실이나 재정적 고통, 결혼 생활의 고통, 직업적 고통,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 또는 다른 모든 어려움을 포함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예수님에게서 눈을 떼고 가라 앉기 시작할 것입니까? 아니면 폭풍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이 당신을 이끌도록 맡기실 것입니까? 말처럼 쉽지 않지만 우리는 의심하지 않고 믿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고통에 직면한다면 그것은 성장의 기회입니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은 우리가 행복하거나 또는 건강하거나 부유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목적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더 닮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좋은 날과 나쁜 날, 햇빛이 비추는 날과 비가 내리는 날이 있지만 그것 모두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목표입니다.
야고보서의 말처럼 역경은 우리의 연약함과 순수한 믿음에 대한 시험이며, 용광로에서 금을 정제하는 것처럼 우리의 고통과 어려움은 결국 귀중한 가치로 빛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8절은 "그러므로 내 사랑 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라고 말합니다. 당신의 삶에서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관계없이 하나님의 신실함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약속 # 3: "나는 너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줄 것이다."
우리가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모두 회복시켜주실지 알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하늘에 도착할 때까지 아버지를 다시 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아는 것은 언젠가 하나님과 우리가 대면하는 날 우리는 왕관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야고보서 1:12). 우리가 천국에 가면 기쁨의 면류관이 있을 것이지만 이 땅에서 받게 되는 또 다른 면류관이 있습니다.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시 103:4)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일상에서 자비와 사랑으로 우리에게 왕관을 씌우신다고 말씀 하십니다. 우리가 압도적인 어둠과 의심에 직면했을 때 기억해야 할 현재의 약속이 바로 이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현재의 고난은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로마서 8:18)고 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느끼는 고통은 언젠가는 해결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이 구속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이 복원됩니다. 마침내 상황이 올바르게 설정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현실이며 우리가 기다리는 미래입니다.
우리는 불확실성에 대한 걱정과 의심을 십자가 밑으로 직접 가져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문제보다 더 크신 분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버림(마태 복음 27:46)을 경험하셨습니다. 그러나 고통을 견디시고 사흘 후 무덤에서 일어나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항상 이긴다는 것을 증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선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 16:33)라고 말씀하십니다.
저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20 년이 지난 후, 저는 아버지의 목숨을 앗아간 남자가 종신형을 선고 받고 수감 돼 있는 교도소로 사역을 갔습니다.
그날 방문한 목적은 가능한 많은 수감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는데, 그와 마주 치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그리고는 만나게 되면 그리스도의 구속과 회복에 관한 복음을 전하겠다고 하나님께 맹세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 하신다는 것과 그가 그의 생명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바치기로 결정했다면 그 사랑에서 그를 분리시킬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날 그와의 만남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아마도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주께서 가족과 저에게 많은 고통을 가져다 준 그 남자를 진정으로 용서하도록 제 마음을 바꾸신 것입니다. 이후 수년 동안 큰 기쁨을 누렸고 저를 다시 발견했으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당신이 겪는 고통이나 의심의 정도를 다 알지 못하지만, 기쁨이 당신을 찾고 있는 것만은 확신합니다. 당신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당신과 함께 걷고, 당신과 이야기하고, 당신 곁에서 모든 삶을 경험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근심을 내려 놓고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의 돌보심을 경험하십시다.
*본지는 최근 미국 크리스천포스트가 출간한 신간서적 어라이즈 투게더(Arise together)를 18회에 걸쳐 번역 게재해 드립니다. 미국 복음주의 목회자들의 외침을 통해 교회가 본질을 회복하고 다시한번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소망을 붙들게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