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무슨 어린이 날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절대로 오지 않았을 거야!" 가족들과 함께 외출을 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저는 그렇게 군시렁거리고 있었습니다. 분명 어린이 날이라고 해서 모처럼 놀이공원이란 곳엘 왔는데, 내가 하고 싶은 것은 하나도 하지 못한 채 그냥 여기저기로 끌려만 다니다가, 혼만 나고 끝이 났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그 날을 비교적 생생히 기억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어린 마음에 적지 않게 상처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제 기억에 그날은, 어린이대공원이란 곳을 처음으로 오픈하는 날이었습니다. 당시 공원 근처에 살았던 덕에, 아버지는 모처럼 저희를 데리고 그 곳엘 가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 날이 어린이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더 어렸을 때, 창경원을 가보고 너무 좋았던 기억이 있었는데, 그보다 몇 배나 큰 놀이 공원을 아버지가 데리고 가신다고 하시니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도착해보니, 공원 후문 매표소는 이미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창경원 외엔 딱히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 시설이 없었던 때라, 1973년 당시 어린이대공원의 개장은 지금 막 성장 가도를 달리기 시작한 대한민국의 입장에서는 기념비적인 일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너도 나도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으로 몰려왔던 것입니다. 매표소의 줄이 얼마나 길었던지 거의 점심 때가 되서야 입장을 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공원에 입장하자 마자 저희를 데리시고 '놀이동산'이라 불리는 곳으로 가셨습니다. 그 곳에는 따로 돈을 내야 탈 수 있는 놀이기구들이 많았었는데, 그 중에서도 유독 줄이 길었던 놀이기구 앞으로 저희들을 끌고 가셨습니다. '청룡열차'라 불리던 대한민국 최초의 롤러코스터였습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습니다. 모험심이 많으셨던 아버지는 신이 나신 듯, 꼭대기에 올라가 물처럼 쏟아지는 열차를 보며 탄성을 지르셨지만,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제게는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아버지, 저는 타지 않을래요..." 이제 곧 열차를 타러 올라가야 하는데 제가 갑자기 안탄다고 하니, 아버지의 표정엔 당황하신 빛이 역력했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어르기 시작하셨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용기가 나질 않았습니다. 아무리 어르고 타일러도 제가 말을 듣지 않자 아버지는 결국 화를 내셨습니다. "남자 녀석이 이런 것도 못 타!" 형의 손을 잡고 청룡열차에 올라타는 아버지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던 거 같습니다. "이씨, 어린이 날인데..."
생각해보면 감사하고 소중한 기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직도 한국이 가난했을 때, 아버지는 당신의 아들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르기도 하고 타이르기도 하고, 또 화도 내셨을 겁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날은 제게 가장 힘들었던 어린이 날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제가 원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6:4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어린이주일을 맞이 하면서, 우리 모두 이 말씀을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원하는 가치들을 요구하면서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교훈과 훈계로 우리의 자녀들을 양육할 수 있는 진정한 크리스천 부모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