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공동체 리더가 감당해야 할 가장 중요한 3가지 역할 중 마지막 3번째인 '뒷담화'에 대해 나눈다.
"과연 뒷담화는 인류의 모든 공동체에 독버섯인가?"
'뒷담화(-談話)'는 부정적인 단어이다. 정직하지 못한 대화이고, 남을 공격하려는 의도에서 비난할 때 사용되는 방법이며, 대부분 이에 대한 상처들이 많아 단어만 언급해도 한숨을 쉰다.
때문에 리더들은 공동체 안에서 이 뒷담화를 제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물론 그 결과는 참담한 실패로 끝나고, 그 책임은 공동체 전원의 건강하지 못한 인성탓으로 돌려진다.
그러면 공동체는 이를 변명해야 하고 리더와의 긴 줄다리기 싸움이 시작된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와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어느 한쪽이 공동체를 나가게 되며, 상처는 양쪽에 모두 남는다. 이후에는 남아 있는 사람들과 나간 사람들 사이에 2차 대전이 일어나 또 서로 뒷담화를 한다.
시간이 지나 어느정도 해결이 된다 싶으면 이제는 남아 있는 사람들 안에서 다시 뒷담화가 시작되고, 처음 상황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공동체 안에서 뒷담화는 끊임없이 반복되며 공동체를 괴롭힌다. 그렇다면 이토록 해결하기 힘든 뒷담화를 어떻게 해야 할까?
1. 뒷담화는 공동체 안에서 서로 대화하는 일반적인 대화 방법
뒷담화는 일반적으로 남을 헐뜯거나 듣기 좋게 꾸며 말하는 등, 뒤에서 하는 대화를 이르는 말이다.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로빈 던바를 비롯한 일부 연구자들은 사회적 정보의 가치가 언어 진화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면서, 인류가 뒷담화를 하기 위해 대화를 시작했다고 말한다.
뒷담화를 한국의 문화적 특성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서양은 프라이버시를 중시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뒷담화를 즐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참고 트렌드 지식사전 3, 김환표, 인물과사상사). 비슷한 말로 '뒷다마'가 있는데, 이것은 뒷담화를 소리나는 발음대로 읽어서 표현한 우리말이다.
단어의 정의에서 보듯이, 뒷담화는 우리 공동체가 서로 대화하는 아주 일반적인 방법이다. 따라서 리더가 아무리 뒷담화를 하지 말라고 해도, 공동체는 이 대화의 방법을 버리지 못한다.
만약 뒷담화가 완전히 없어진다면 공동체는 오히려 소통이 더 안 되고 분위기가 사무적이며 일방적인 권위 아래 군인처럼 수동적으로 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때문에 무조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없애려 하기보다,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하고, 공동체 교육을 통해 건강한 대화의 방법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문제는 이런 뒷담화에 대한 리더들의 잘못된 대응 방법이다. 리더도 사람인지라, 뒷담화 자체에 대해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그래서 공동체를 향한 실망감과 배신감을 가지고 뒷담화의 최초 유포자를 찾아다닌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를 부인하고 변명한다. 이 과정에서 서로 간에 지금까지 쌓아왔던 신뢰들이 무너진다. 공동체는 자신을 의심한다는 생각으로 리더에 실망하고, 리더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공동체가 무너진다는 긴장감과 불안감으로 계속 유포자를 찾는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달리 한다면, 리더와 공동체가 이런 과정을 벗어날 수 있다.
2. 뒷담화는 공동체의 문제를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통로이다
옛말에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이 있다. 백성들의 시장 저잣거리에서 나오는 소문이 곧 나라의 문제를 가장 정확하게 말해주기에, 이는 곧 하늘에서 알려준 것이라고 했다.
성경에는 솔로몬 왕의 아들 르호보함이 나라의 원로들과 백성들이 하나같이 성전건축을 통한 노동력 착취와 세금의 부담으로부터 구제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이 민심을 저버리고, 자신을 위해 사치를 누리며 살다 결국 애굽의 공격을 받고 그 많던 보물들을 다 빼앗기게 된다. 이렇게 나라의 문제가 백성들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반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하면서 수많은 기적들을 경험했지만, 끊임없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에 모세는 리더로써 하나님께 이 백성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이 백성들의 죄악을 원망을 통해 드러내셨다.
따라서 현재의 우리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리더는 뒷담화를 통해 공동체가 무엇을 필요로 하고 무엇 때문에 힘들어 하는지를 가장 정확하게 파악할수 있다.
한편으로는 공동체의 건강함이 드러난다. 그들에게 어떤 약함이 있고 그들이 어떤 죄악에 물들어 있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
그렇다면 리더는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가? 정죄하고 심판하는 일인가? 아니면 공동체가 건강해지도록 대안을 찾는 일인가? 여기서 만약 대안을 찾는 리더가 된다면, 그 대안의 완전함을 떠나 공동체가 그를 신뢰할 것이다. 그의 노력 자체에도 감동을 받을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작은 변화의 시작이다.
3. 앉아서는 나를 욕하라. 그러나 일어날 때 웃으며 일어나라!
이 말은 필자가 공동체 리더로 살면서 늘 교육시켰던 내용이다. 공동체는 리더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한다. 좋은 얘기든 안 좋은 얘기든 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편하게 리더에 대해 말하기를 권했다.
라면을 먹으면서도 웃으며 리더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농담 하나 잘못 해서 귀에 들어갔을 때 난리가 나는 분위기가 되면, 절대로 공동체가 직언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리더는 자신에 대한 평가나 농담, 때로는 비판을 하도록 권면하되 그 이야기의 끝이 항상 웃으며 끝나기를 교육해야 한다.
그것은 곧 그런 이야기들이 한 마디 불평으로 끝나면 다행인 것이고, 문제가 될 것 같으면 우리는 항상 리더를 찾아가면 되고 찾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된다. 그 정도만 되어도, 공동체는 리더와의 소통에 신뢰를 가질 수 있다. 이런 뒷담화를 통해 오히려 리더가 소통의 고삐를 잡는다면 정말 지혜로운 리더가 될수 있다.
4.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뒷담화를 고치는 방법
지금까지 말한 뒷담화는 그저 일반적인 가십거리이다. 그러나 공동체 전체를 위험에 빠트리는 뒷담화들도 분명히 있다. 이런 뒷담화의 존재에 대해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구약 민수기에는 모세와 아론에게 반역하고 제사장의 자리와 땅을 요구하며 반역을 일으켰던 고라의 반역이 나온다. 이런 반역이 실제로 있다. 그러면 어떤 대안을 세워야 할까?
정답은 계속되는 양육, 교육, 소통을 건강하게 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공동체의 원망과 불평은 대부분 이 3가지 안에서 해결될 수 있다.
양육은 신앙의 훈련이다. 리더가 못하면, 목회자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신앙의 훈련과 성장이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필자가 경험하기로 공동체는 신앙적 공급이 없는 것을 가장 힘들어한다. 사역에 지칠 때가 오면, 결국 신앙의 공급이 없다는 것이 가장 실감이 되기 때문이다.
교육은 리더를 위한 교육이 아닌, 공동체를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 내규와 방침, 순종에 대한 교육만 하지 말고, 리더에게 찾아가는 방법과 직언의 필요성과 태도의 교육, 그리고 이성교제 등에 대한 공동체 입장에서 필요한 교육들이 선행되어야 한다.
소통은 자주 만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뒷담화가 들리기 전에, 자주 만나야 하고 뒷담화가 들린다면 더 자주 만나야 한다. 먼저는 만나서 칭찬하고 응원하며 힘든 것을 질문하고, 후에 문제가 계속되어 만날 때 지금까지 양육하고 교육하고 소통해온 내용을 근거로 권면한다면 당사자가 더 실제적이고 많은 것을 깨달을 있게 된다.
5. 리더의 품격은 공동체의 문제 속으로 뛰어드는 용기에 있다
결국 리더는 공동체를 위한 자리이다. 고라의 반역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판을 받아 염병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어갈 때, 리더인 모세는 아론에게 향로의 제단의 불을 담고 향을 피워 회중 속으로 들어가 속죄하라고 명령한다. 그렇게 전염병이 도는 회중 속으로 들어간 아론을 생각해보자. 리더는 회중의 문제 속에 들어가 가장 먼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자복하며 기도하는 사람이다. 그런 용기에서 공동체가 그를 존중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
이것이 리더의 진정한 품격이다.
백성훈 목사(<팀사역의 원리> 저자, 김포 이름없는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