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표 선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축구선수로서,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해주는 희망 전도사로서, 잠자는 신앙인의 영성을 깨우는 간증자로서 멋진 삶을 살고 있다. 선한 그의 미소를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짧은 그의 말에도 진한 감동과 신비한 힘을 얻게 된다.
최근 이영표 선수가 2014년부터 4년간 모 출판사 회보에 연재한 글을 모아 <말하지 않아야 할 때: 이영표의 말>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책 중에 '무통주사'라는 글에서 셋째 출산 당시 무통주사를 권유받았지만 성경을 읽고 끝내 거부했던 일화를 소개했다.
분만실로 이동한 이 선수 부부는 "요즘 거의 모든 산모가 이 주사를 맞는다."며 간호사에게 무통주사 의향서에 서명할 것을 권유받았다. 이영표 선수는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을 주신 것과 남자에게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 수 있다고 하신 창세기 3장 16절을 찾아 읽었고, 아내에게 주님께서 주신 해산의 고통이라면 피하지 말자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첫째와 둘째 모두 무통주사 없이 출산하여 그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아내는 잠시 고민하더니 내 의견에 따라 무통주사를 맞지 않고 출산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작 진통이 시작되고 부들부들 고통에 떠는 아내를 보면서 오히려 마음이 약해지는 걸 느꼈다"고 고백했다.
이영표 선수는 이 과정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후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아내와 나는 앞으로도 쉽게 사는 방법과 말씀대로 사는 방법 사이에서 고민할 것이다. 그때마다 주님의 은혜로 선한 선택을 함으로 날마다 기뻐하며 살기를 바랄 뿐"이라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한 인도하심을 신뢰하는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살아가고자 하는 이영표 선수 부부의 겸손함과 신실함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이영표 선수 내외의 겸손하고 깊은 신앙심과 신앙인의 자세를 이해하지 못하는 반응들이다. 의료윤리를 실천하는 의사로서 또한 신앙인으로서 이영표 선수의 무통주사라는 부분을 정리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이 선수 부부의 결정이 윤리적인가 하는 부분이다. 윤리학적 관점에서 인간의 행위는 해야만 하는 것, 해서는 안 되는 것, 그리고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허용되는 것)으로 나누고 있다. 성경 말씀도 이 세 가지 경우를 대입해 볼 수 있다. 꼭 지켜야 할 것과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정해 놓고 있으며, 그 외의 것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허용의 영역에 속한 것들이다. 꼭 지키거나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십계명과 성경의 여러 곳에서 명료하게 쓰여 있다. 대표적인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우상숭배를 하지 마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등이다. 그 외에 절대 금기나 명령은 아니지만 신앙에 유익이 되기에 지켜도 되고, 안 지킨다고 비난받을 일도 아닌 것들이 있다.
사도 바울이 "다른 사람들이 시험에 들지 않도록 고기를 먹지 않겠다."라고 한 것이나, 본인이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이나, 디모데에게 "포도주를 위장병을 위해 조금 쓰라."고 한 것들이다. 고기를 먹을 수도 있고 안 먹을 수도 있다. 창조질서에 따라 결혼해서 생육하고 번성할 수도 있고 독신으로 살 수도 있다. 치료를 위해서 포도주를 쓸 수도 있고 포도주를 먹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선수 내외의 결정은 하나님의 절대명령이 아닌 부류에 속한 것으로 해도 되고 안 해도 무방한 사안이다. 이들의 결정은 윤리적으로 비난받을 하등의 이유가 되지 않는다.
다음으로 무통주사나 마약성 진통제의 사용이 기독교 윤리적으로 합당한지 정리해 보았다. 마약을 의약품으로 사용하는 역사를 종교적 관점 변화에서 살펴보면 흥미롭다. 환자의 통증 조절을 위해 사용된 마취제, 특히 분만 시 클로로포름 마취제의 사용을 "여자는 고통 중에 자녀를 낳을 것"이라는 것에 거역되는 행위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고통에 대한 이해와 성경해석을 통해 고통을 감소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라고 믿었던 생각이 바뀌었다. 마취약과 진통제 사용을 하나님의 사랑의 수단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 결과 의학적으로 훈련받은 선교사들이 현대의학의 세계적 확산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게 되였다.
진통완화를 위해 진통제를 사용하는 것은 신앙적으로나 의료 윤리적으로 어긋나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모든 의약품과 의료 행위에는 유익도 있지만 부작용도 있기에 진통제 사용은 전적으로 개인의 결정 영역이다. 또한 각자의 생각과 가치 판단의 영역이다. 무통주사 사용을 할 수도 있었지만,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더 순종하는 삶을 살기 위해 내린 이 선수 내외의 결정을 존중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의료윤리적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의료윤리에는 네 가지 원칙이 있다. 자율성 원칙과 해악 금지 원칙, 선행의 원칙, 정의의 원칙이다. 자율성의 원칙은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라는 원칙이다. 해악 금지의 원칙은 환자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는 것이고, 선행의 원칙은 해악을 끼치지 않는 범위를 넘어 환자에게 유익되는 선을 행하라는 것이다.
정의의 원칙은 제한된 자원을 공평하고 공정하게 배분하여 사용하라는 원칙이다. 이 선수 부부에게 무통주사를 권유한 간호사의 행위는 환자의 통증을 경감해 주려는 선행의 원칙을 따른 것이고, 무통주사 사용승낙을 제안한 행위는 환자의 동의를 구하는 행위로 환자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행위이다. 여기에서 환자의 통증 조절을 위해 무통주사의 사용이 우선이냐 개인의 자율성이 우선이냐는 문제가 충돌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환자가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진통제 사용을 거부하는 경우에는 위급하고 꼭 필요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의료윤리 네 원칙 중 환자의 자율성 원칙이 우선된다. 이 선수 부부의 자율적인 결정은 존중받아야 하고 이 결정에 대해 다른 이들이 비난해서는 안 된다. 만약 이들의 결정을 비난한다면 의료윤리에 합당한 결정을 부정하는 행위이다.
이 선수의 글을 읽을 때 그의 결정이 성경해석이나 적용 면에서 적절하냐 아니냐의 수준에서 해석하면 그 속에 담겨 있는 본질을 놓치고 만다. 책 전체를 통해 흐르는 그의 진솔하고 성실한 삶을 읽어내는 통찰력과 지성이 있어야 된다. 신앙인의 맛을 잃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신앙의 자세에 공감과 감동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신앙인으로 살아가면서 때로 가기 쉬운 길이 보이고 넓은 길이 보이지만, 존 번연의 <천로역정>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좁은 길을 택하는 신앙적 결단이 필요할 때가 있다. 작은 일에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정하려는 신앙인 이영표 선수에게 성도(聖徒)의 향기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