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는 땅 끝을 섬기는 친구 목사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라오스를 섬기는 정창용 선교사입니다. 나이가 저 보다 3 살이 적어 늘 저를 형처럼 대우해 주지만, 함께 대화를 하고 있으면 저보다 훨씬 속이 깊은 참 좋은 친구입니다. 장애가 있는 몸으로 어둠의 땅, 라오스로 간지 벌써 4년... 이제 과학센터 공사를 마치고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고 있는 그 친구와 라오스를 생각하면 마음이 왠지 짠해옵니다.
2015년 10월에 방문했던 라오스의 첫 인상은 한 마디로 어둠이었습니다. 늦은 밤 시간에 도착을 했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착륙 준비를 하고 있던 비행기 위에서 본 라오스나, 마중나온 밴을 타고 정 선교사의 집으로 가며 차창으로 본 라오스는 정말 깜깜했습니다. 창 밖을 내다보다가 울컥, 눈물이 났습니다. "몸도 불편한 사람이 어떻게 이런 곳에 올 생각을 했을까? 올 순 있었다고 치고,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살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그래도 한 나라의 두 번째 도시라고 해서 설마 했었는데, 베트남에서 한 시간을 날아온 라오스의 첫 인상은 눈물이 날 정도로 어둠이었습니다. 흔들거리는 밴을 타고 15분을 달려왔는데도, 아무 것도 보이질 않았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선교라는 이름으로 딱히 뭘 하질 않아도, 단지 주를 위해 이런 곳에서 살아가는 것 만으로도 위대한 헌신이 아니겠는가..."
사실 정 선교사는 라오스에 가질 않아도 되는 목사였습니다. 라오스에 가기 직전 저의 모 교회에서 담임 목사직 제의를 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서울 한 복판에 자체 예배당을 가지고 있는 교회에서 담임 목사하는 일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제의를 받았을 때 정 선교사는 그 제의를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하나님께 부름을 받고 신학 수업을 시작했었지만, 자신의 신체적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채 얼마 간이라도 하나님을 떠났던 자신을, 그 일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남들은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고도 회개했답시고 멀쩡히 목회를 하려고 하는데, 본인은 어릴 때부터 자신에게 있었던 상처로 인해 하나님을 등졌던 일조차 용납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떠난 곳이 라오스였습니다. 정 선교사가 했던 말이 지금도 귓가를 맴돕니다. "그 곳에서 만난 영혼들을 보면서 '복음으로 자기 배를 채우려했던 저 자신의 지난 날을 회개 했습니다...'"
2016년 봄 선교 보고를 마치고 시애틀을 떠나던 그 친구의 뒷 모습이 지금도 어른거립니다. 수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절뚝이며 걸어가던 친구의 모습... 자신의 인생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울텐데, 자신보다 더 절뚝발이 같은 라오스 사람들을 섬기겠다고 다시 그 길을 떠나던 고마운 친구... 땅 끝으로 떠나는 친구의 뒷모습을 보며 다짐했습니다. 기도로 늘 함께 동행하겠다고, 너무 힘들어서 한 쪽 다리를 지탱하지 못 하게 되면, 그 짧은 다리 밑으로 내 성한 다리 하나 넣어주겠다고...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 마음으로 함께 땅 끝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우리 모두 되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