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평 선교사의 침실 머리맡에 적혀있던 글귀다. 하정우가 재능기부로 내레이션을 맡으며 큰 화제가 된 영화 <서서평, 천천히 평온하게>는 CGNTV의 첫 번째 영화 프로젝트. 기도로 촬영을 시작했다고 한다.
<서서평, 천천히 평온하게>는 독일계 미국인 엘리자베스 요한나 쉐핑(Elisabeth Johanna Shepping, 1880-1934) 선교사의 삶을 다룬 다큐 영화다. 그녀의 한국 이름 서서평(徐徐平)은 천천히, 느리게, 평온하게라는 의미로 급하고 모난 성격을 바꾼다고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서서평 선교사는 생전 고아 14명을 자녀로 삼고, 오갈 곳 없는 과부 38명과 한집에 머물렀을 뿐 아니라 조선 최초의 여자 신학교인 '이일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가 오늘날 한일장신대로 발전했다. 그녀가 세운 '부인조력회'는 여전도회의 근간이 됐고, 1926년 설립한 '조선간호부회'는 '대한간호협회'로, 어려운 여성을 돕기 위해 시작한 '성미제도'는 조선예수교장로회의 공식 사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준 서서평 선교사는 1934년 6월 말, 풍토병인 스프르(Sprue)와 영양실조 등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했다. 그녀가 죽을 때 남기고 간 전 재산은 담요 반장, 쌀 두 홉과 현금 27전이 전부였다고 한다. 그녀의 장례식에는 이일학교의 제자들, 13명의 양딸, 수백 명의 거지와 한센환자들이 참석했고, 동아일보는 '자선과 교육사업에 일생을 바친 빈민의 어머니 서서평 양 서거'라는 제목과 '재생한 예수'를 부제로 그녀의 죽음을 대서특필했다. 이때 장례가 10일 동안 지속됐는데, 그 이유는 생전 그녀가 장기마저 세브란스에 기증했던 탓이다.
모든 선교사들이 서서평과 같았던 것은 아니다. 당시 선교사들을 위한 특별구역이 있었고,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는 자녀들도 있었다. 그저 외국인처럼 살던 이들도 있었다. 그런 가운데 서서평 선교사는 스스로 낮아져 현지인과 같은 삶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업적에 비해 서서평 선교사의 남아있는 기록은 많지 않다. 이로인해 제작진들은 독일 비스바덴과 뉴욕, 전라도 일대와 제주도를 오가며 촬영했고, 영화는 1년이 넘는 기간이 걸려 제작됐다.
영화에서는 서서평 선교사가 그토록 고아와 버려진 자들에게 애착을 보였던 이유, 그녀와 생전에 가장 가까웠던 '스와인하트' 집사도 듣지 못했던, 서서평 선교사의 과거와 아픔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