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살아가는 게 정말 만만치 않다. 2016년에 들어섰지만, 성큼 발을 내디디기 무섭다. 이곳저곳에서 물가는 메뚜기처럼 천정부지로 뛰어오른다. 그런데 월급은 원하는 만큼 오르지 않는다.
자식을 좋은 학교 보내려는 부모 욕심은 한없다. 허리띠를 동여매면서도 고액의 과외와 학원비를 들이고 있다. 약속되지도 않는 대학 진학의 문을 열기 위해.
떠밀리는 회사에서 자리를 지키고 버티려니 자존심 상하는 일이 이만저만 아니다. 바닥을 치고 있는 세계 경제 틈바구니에서 꿀리지 않으려니 숨통이 막혀 온다. 대기업들이 치고 들어오는 시장을 내어 주지 않으려 발버둥치지만, 그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부아만 치밀 뿐 뾰족한 수가 없다.
이래저래 꿀꿀해지는 기분을 좀처럼 풀 길이 없다. 그러니 사무실에 있으면 지옥 같고, 집에 와도 편하지 않다. 앞날을 생각하면 막막하기만 하다. 마음이 편하지 않으니 밤잠을 이룰 수 없다. 그래서 한 잔 두 잔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그러면서 속은 문드러지고, 우울증에 불면증에 시달린다. 그게 우리네 풍속도이다.
며칠 전 있었던 사건이다. 어느 날 아침 40대 가장이 부인과 고등학생 아들, 초등학생 딸을 둔기로 살해했다. 그리고 자신은 18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그런 일을 저질러 놓고는 경찰에 전화를 걸어 신고했다. "불면증 때문에 아내와 두 자녀를 살해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5분 만에 그 집에 도착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미 아파트 18층에서 몸을 던져 숨진 뒤였다.
아버지는 평소 우울증과 불면증을 앓아 왔단다. 그가 쓴 노트에는 '잠을 이루지 못해 무섭다'는 글이 적혀 있었단다. 경찰이 확보한 진술에 따르면, '부인이 렌터카 사업을 하는데 그게 어려워 아파트까지 팔게 됐다'고 한다.
끔찍한 일을 저지른 그를 두둔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어떤 일이 있어도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러선 안 된다. 그의 마음을 동정하고 싶지도 않다. 세상에 그런 고민 안 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런 짐을 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 다만 정도의 차이만 좀 있을 뿐이지. 그런 일 때문에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질러야 한다면, 세상은 온통 요지경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그를 비난하고 손가락질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의 무게가 그의 어깨를 짓누를 때, 얼마나 고달팠을까? 좀처럼 풀리지 않는 복잡한 문제들이 얼키고설켜 잠을 이루지 못하던 날들이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때 누군가 그의 아픈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면, 무거운 짐들을 좀 덜어줄 수 있었다면, 함께 밤을 지새우며 아파해 주었다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주님 앞으로 가지고 나아갈 수만 있었다면, 안식을 얻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주님은 가슴을 벌리고 기다리고 계시는데. 그분의 품이 있음을 알려 주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그 말을 듣지 않으려 해도, 끝내 포기하지 않고 전하고 또 전해 주었더라면. 그렇기에 한 영혼을 포기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호세아는 하나님을 버리고 음란하게 바알과 연애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호통을 친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음란한 삶 때문에,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서 그들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신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모두 거두어 가셨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과 금을 이스라엘은 새로운 애인 바알에게 갖다 바쳤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를 다 거두어 가셨다.
그런데 그들을 거친 광야 아골 골짜기로 데려가서 타이르셨다. 그리고 그들을 고치셨다. 그리고 약속하신다.
"그 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 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호 2:18)."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은 한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던 존재들이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내 백성들을 괴롭히지 말라. 그들의 평안을 깨지 말라"고 명령하신다. 그리고 약속하신다. "이 땅에서 칼과 활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우리가 누리는 평안과 안전이 어디서 오는지 아는가? 돈에서 찾고 있지 않은가? 성공에서 얻으려 하지 않는가? 바알에게서 얻으려 음란한 눈짓을 하고 있지는 않는가? 그런데 시인은 고백한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라(시 4:8)."
우리를 평안히 눕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들은 많다. 잠들지 못하게 만드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괜찮다.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기며 살 수도 있으니까. 하늘 아버지께 기도할 수도 있으니까. 기도하지 못하는 내가 가련한 게다. 염려를 가불하며 사는 내가 불쌍할 뿐이다. 염렷거리를 해결할 능력도 없으면서 바보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착각하지는 말아야 한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아무리 믿음으로 살아도, 하나님 빽을 믿고 살아도 이 땅에서 걱정 없이 살 수는 없으니까. 죄가 짓누르고 있는 한. 사단이 판치는 한.
완전한 평안과 안전은 메시아의 통치가 완전히 서는 그날에야 가능하다. 죄가 영향을 줄 수 없는 미래적인 천국에서야 가능하다. 하나님의 빛만이 가득한 천국에서야 누릴 수 있다. 그때까지 우리에게는, 길이 참는 믿음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