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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가장 안타까운 일은 죄를 회개했고 용서도 받았으나 정작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용서받았습니다. 사람들로부터도 용서받았습니다. 하지만 용서받은 것과 수치와 자책에서 진정 자유하게 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죄와 수치가 드러난 경우, 은혜는 한없이 막연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정죄감은 무서운 것입니다. '너는 완전히 구제불능이야. 영원히 쓸모없는 인간이지. 너는 가망 없이 더럽혀졌어. 다 시는 하나님이 너를 쓰실 수 없어.' 그러나 이런 감정은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정직하게 죄를 고백하였고, 책임있는 행동을 하였으며, 사람들로부터 용서를 받았다면,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 8:1)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9) 

죄로 인하여 슬프고 상실감도 크고 마음이 아프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입힌 결과로 후회할 수는 있지만 정죄받지는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정죄감에 빠지는 것은 원수의 수작입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죄값을 다 치르셨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정죄감에 빠져지는 것은 예수님이 지신 죄를 자신이 도로 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정말 깨끗해지지 않았다는 고백입니다. 십자가는 실패작이며,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희생이 부족하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정죄감 속에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이 우리의 죄의 형벌을 모두 당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든지 은혜 안에서 담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다윗은 신하의 아내를 범하고 충성스런 신하를 죽인 적이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저주하면서 부인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스데반 집사를 죽이는 일에 앞장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죄감에 사로 잡혀 어둠 속에 숨어 살지도 않았습니다. 진심으로 회개하고 주님을 붙잡고 위대한 역전의 삶을 살았습니다. 다윗의 간음 사건은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와 바울은 위대한 시도로 쓰임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있다면 유익한 줄로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즐거울 수 없지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징계를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믿음을 가지면 되는 것입니다. 24 시간 주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면 되는 것입니다. 
죄와 실패를 정직하게 고백하고 거기서부터 이긴 삶을 간증하였을 때, 오히려 동일하게 무서운 죄책감과 정죄감으로 무너진 수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새 삶의 용기를 주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 : 그리스도의노예, 「주님 안에서 나를 용서하라 - 베스트 - 갓톡」 http://www.godntalk.com/?mid=best&document_srl=23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