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목회하기에 부족한 면이 많습니다. 그 첫째가 방향감각이 없어서 길을 헤매기가 다반사입니다. 저 혼자 심방에 나서면 영락없이 길을 헤매다가 약속 시각에도 늦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둘째는 사람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외워도 돌아서면 기억이 나지 않아 당황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심방 가서 자녀들을 위해 기도해 주겠다 하고 이름을 물어본 후, 기도를 시작하면서 아이들의 이름을 까먹었던 경우, 혹은 다른 이름을 열심히 부르며 기도했던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도 제가 가장 신기해하는 두 종류의 사람은 길눈이 좋은 분과 사람 이름 잘 외는 분들입니다. 다행히 하나님의 은혜로 내비게이션이 나와 요즘 얼마나 감사히 길을 다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름을 암기하는 것은 아직도 큰 도전이 됩니다. 어느 성도님이 침을 튀며 자랑을 하시는데, 모 목사님은 몇 년 만에 만났는데도 자기 자녀들의 이름까지 불러가면서 기도해 주셨다는 말은 저를 주눅이 들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늘 짬이 날 때마다 새로 오신 분들의 사진을 보며 성함을 기억하려고 애쓰는데, 막상 얼굴을 뵈면 이름이 가물가물해집니다.
어느 날, 우리 교회 권사님과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권사님은 늘 밝고 환한 미소를 가지신 권사님이십니다. 지금은 권사님의 성함을 잘 기억하고 있지만, 그 전에 제가 강단에서 제자훈련 받은 분들의 이름을 부르며 격려하는데, 갑자기 권사님의 성함을 새까맣게 까먹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많은 분이 지켜보는 공개 석상에서 성함을 여쭈어 볼 수밖에 없었던 부끄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아마, 많은 분이 ‘목사님이 어떻게 이름도 모르시느냐?’고 섭섭해 하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권사님이 식사하시면서, 그때 이야기를 꺼내시는 것이었습니다. ‘아이코, 한 말씀 듣겠구나!’ 속으로 생각하며 귀를 기울였습니다. “저는 그때 목사님이 저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시는 것을 보고, 이 분은 하나님만 생각하는 분이구나!”
“이 분은 사람에 연연할 분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만 묵상하며 하나님만 전하실 목사님이다.”라고 생각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한편 너무 감사 황송했고, 또 한편 죄송했었습니다.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저의 목회핸디캡이 오히려 ‘하나님만 생각하는 목사’로 바뀐 것입니다. 권사님과의 식사는 많은 것이 여운으로 남아 지금도 맛있는 디저트를 향기나는 커피와 먹는 느낌입니다.
목회는 사람 이름 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신 권사님께 이 지면을 통해서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다시 새마음으로 목회에 임하며, 성경책을 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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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컴퓨터에 켜놓은 새가족 사진들이 자꾸 어른거려서 다시 이름을 외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