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 Courtesy of Robin Schumacher) 로빈 슈마허(Robin Schumachre)
(Photo : Courtesy of Robin Schumacher) 로빈 슈마허(Robin Schumachre)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기독교 변증가이자 작가인 로빈 슈마허의 기고글인 '당신이 선한 사람이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You're saved by being a good person - not)를 최근 게재했다. 

기독교 변증가로 활동하고 있는 슈마허는 작가로도 활동하면서 많은 책을 냈고 미국 내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만약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는 것"(살후 1:5)은 결국 '선한' 사람이 되는 데 달려 있다고 말이다. 선이 악보다 많도록 사는 삶,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증명하고, 마음 깊은 곳에서는 세상이 악하다고 부르는 사람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 애쓰는 삶이다. 치과의사 같은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식으로 말이다. 

이러한 공로로 하나님의 인정을 얻고, 결국 야고보의 말을 몸소 입증하게 된다.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약 2:24). 이것이 하나님과 함께 영원을 사는 길이라는 것이다. 

적어도 최근 애리조나 크리스천 대학교(Arizona Christian University)의 보고서에 따르면,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밝힌 미국인 중 과반수인 53%가 그렇게 믿고 있다고 한다. 전체 조사 결과를 보면, "이 집단의 거의 절반(42%)은 선한 사람이면 천국에 이를 수 있다고 믿었고, 3분의 1 이상(38%)은 회개가 삶의 변화 없이 죄를 인정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답했으며, 4분의 1(27%)은 예수 외에도 구원에 이르는 길이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선함'으로 영원히 하나님의 임재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 응답자 가운데 가장 큰 비율(73%)은 가톨릭 신자들이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것도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이런 믿음을 갖게 되었을까? 

가톨릭의 경우라면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다. 가톨릭과 종교개혁자들 사이의 핵심 논쟁은 단 하나의 단어를 거부하는 데 있었다: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그리스도 ▲오직 성경. 

그러나 비가톨릭 신자들 가운데서도 이처럼 행위에 근거한 구원 교리를 받아들이는 비율이 높다는 사실은 혼란스럽고도 우려스럽다. 이는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게 되었는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그 이유는 잘못된 핵심 교리 교육 때문일 수도 있다. 사실상 거의 모든 기독교 이단들(예: 여호와의 증인)은 행위 구원을 믿고 있으며, 일부 자유주의 교단들도 죄와 구원을 실존적·사회적 개념으로 재해석한다. 

혹은 잘못 '추론된' 가르침 때문일 수도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특정한 죄를 하나라도 범하면 구원을 잃는다고 믿는다. 그것도 매우 주관적인 '이걸 하면 무조건 지옥 간다'는 목록을 기준으로 말이다(예컨대 "지옥으로 가는 5가지 성적 죄"라는 제목의 유튜브 영상 같은 것들이다). 그러다 보니 '선하게 살아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행위가 은근히 천국행 안전망이나 입장권이 되어 버린다. 

아니면,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이 정말로 사실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싫어하고,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가 구원의 주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고 싶어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팀 켈러는 복음이 사람들에게 성경적인 '양쪽 뺨을 때리는 충격'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은혜는 모욕적이다. 한쪽은 용서가 필요 없다고 말하고, 다른 쪽은 그게 너무 쉽다고 말한다." G. K. 체스터턴도 후자의 태도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교리를 비난하는 사람이 정말로 말하고 싶은 것은 교리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너무 좋아서 믿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함정에 빠지는 것은 평범한 교인들만이 아니다. 예를 들어, 종교개혁자 존 녹스는 임종을 앞두고 잠에서 깨어 깊은 한숨을 쉬며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자신이 "목회를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천국과 영원한 복을 공로로 얻었다고 믿도록 유혹받았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그는 곧 성경 말씀으로 그 불화살을 꺼뜨렸다고 말한다. "네가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 "내가 한 것이 아니요,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다." 

'믿음 + 행위 = 구원'이라는 잘못된 영적 공식은 녹스 같은 위대한 인물에게조차 쉽게 떨쳐지지 않는 유혹이다. 

그러나 성경은 교훈적 본문들과 수많은 사례를 통해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 2:8-9). 

성경에는 이 진리를 보여 주는 예가 많지만, 필자가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강력한 사례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모세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사건은 늘 필자를 괴롭혔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반석에게 말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지만, 모세는 분노에 차서 "반역자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민 20:10)라고 말한다. 그 결과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민 20:12). 

수십 년 동안 이스라엘과 씨름하고, 원수들과 맞서 싸우고, 자연의 혹독함을 견뎌 온 사람이 단 한 번의 실수로 약속의 땅 문 앞에서 거절당하다니, 너무 가혹해 보이지 않는가? 

그러나 여기에는 더 큰 그림이 있다. 구약 전체를 넓게 보면 두 인물이 두드러진다. 아브라함과 모세다. 이 두 사람은 두 유형, 곧 믿음과 행위(율법)를 대표하며, 두 언약을 상징한다. 모세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사건이 가르치는 영적 교훈은 이것이다. 

율법과 행위의 사람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오직 믿음의 사람만이 들어간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믿음 + 행위 = 구원'이라는 공식은 틀렸다. 그러나 이것이 놀랍게 들릴 수도 있지만 - '믿음 = 구원'이라는 공식 역시 정확하지 않다. 

올바른 방정식은 이것이다: 믿음 = 구원 + 행위 (혹은 조너선 에드워즈가 말한 '거룩한 정서'다) 행위는 구원의 원인이 아니라 열매다. 야고보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고 말할 때, 여기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것은 '입증된다', '드러난다'는 뜻이다. 곧 행위는 구원의 증거이지, 조건이 아니다. 

만약 행위로 구원받는 종교를 원한다면, 이슬람으로 가면 된다. 이슬람은 이렇게 말한다. "선행의 무게가 무거운 자들은 성공할 것이요, 가벼운 자들은 자신을 잃은 자들로서 지옥에 영원히 거하리라"(꾸란 23:102-103). 

그러나 기독교는 구원을 위해 필요한 '일'이 단 하나뿐이라고 말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일이란 너희가 그가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니라"(요 6:29). 이것을 행하라. 그러면 하나님과 함께 영원을 살게 될 것이다. 치과의사라 할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