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공의”를 말할 때, 그것을 인간 사회에서의 정의나 윤리적 공정성과 같은 차원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더 나아가 어떤 이들은 “사랑과 공의는 동일한 것이니, 우리는 공의를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열망 자체는 선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공의 를충분히 구별하지 못할 때 신앙의 본질은 흐려질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성경적 관점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바르게 이해해 보자.
1. 공의의 성경적 정의: “하나님의 거룩한 기준에 따른 심판”
성경에서 “공의”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미쉬파트(מִשְׁפָּט)와 헬라어 디카이오쉬네(δικαιοσύνη)는 단순한 공정함이나 도덕적 선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에 근거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하시고, 그에 따라 반드시 행하시는 심판의 행위를 포함한다.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시리로다” (시편 9:8)
여기서 공의는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실제로 실행되는 판단과 심판이다. 하나님은 단지 선을 좋아하시는 분이 아니라, 악을 반드시 심판하시는 분이시다. “공의와 정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시편 89:14a)
하나님의 통치는 공의 위에 서 있다. 이는 곧 하나님의 공의는 필연적으로 심판을 수반한다는 뜻이다.
2. 사랑과 공의는 같은 차원이 아니다
많은 경우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한일서 4:8b)는 말씀을 근거로, 공의와 사랑을 동일한 개념처럼 혼합하려는 시도가 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랑과 공의를 동일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긴장 속에서 하나님의 완전성을 드러내는 속성으로 제시하고 있다.
사랑은 죄인을 향해 베푸시는 은혜이고, 공의는 죄를 향해 행하시는 심판이다.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출애굽기 34:6-7)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용서하시지만, 동시에 공의로 죄를 반드시 다루신다. 즉, 사랑은 죄인을 향하고, 공의는 죄를 향합니다. 이 둘을 동일한 차원에서 “공의를 실천하자”는 식으로 단순화하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에 서서 심판하려는 위험을 내포할 수 있다.
3. 공의를 인간 윤리로 축소할 때 생기는 문제
현대 교회 안에서 “공의”라는 단어는 종종 사회적 정의, 평등, 윤리적 책임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물론 이러한 가치들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것을 곧바로 “하나님의 공의”와 동일시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왜냐하면 성경이 말하는 공의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심판 주권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로마서 12:19). 공의의 집행자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인간이 공의를 실현하려 할 때, 그것은 쉽게 정죄, 분노, 자기 의로움으로 변질될 수 있다.
C.S. 루이스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정의를 말할 때 종종 복수를 원한다.” 이 말은 매우 통찰력 있다. 우리가 말하는 공의가 사실은 하나님의 공의가 아니라, 자신의 기준에 따른 심판 욕구일 수 있다는 것이다.
4. 십자가: 사랑과 공의가 만나는 자리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는 어떻게 조화를 이룰까? 그 답은 십자가에 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로마서 3:25)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가 가장 철저하게 집행된 사건이다. 죄는 반드시 심판 받아야 했고, 그 심판이 예수 그리스도 위에 쏟아졌다. 동시에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이다. 죄인이 받아야 할 심판을 대신 담당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공의는 십자가에서 포기된 것이 아니라 완성되었다. 사랑은 십자가에서 감정이 아니라 희생으로 증명되었다. 존 스토트는 이렇게 말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미워하시는지, 동시에 죄인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준다.”
5. 성도가 취해야 할 올바른 태도
그렇다면 성도는 공의를 어떻게 이해하고 살아야 할까?
첫째, 공의를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우리는 심판자가 아니라 증인이다. 우리의 역할은 판단이 아니라 복음 전파이다.
둘째, 자기 죄에 대해서는 공의의 빛 아래 서야 한다. 하나님의 공의를 타인에게 적용하기 전에, 먼저 자신이 심판 받아 마땅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시편 51:1a)
셋째, 타인에게는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 우리가 받은 것은 공의의 심판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이다.
넷째, 십자가 중심의 공의 이해를 가져야 한다. 공의는 인간이 이루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는 단순한 윤리적 정의가 아니다. 그것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를 반드시 심판하시는 절대적 기준과 행위이다. 이 공의를 인간의 사회적 정의 수준으로 낮추거나, 사랑과 동일시하는 것은 성경적 균형을 잃게 한다.
우리는 공의를 “실천”하려 하기보다, 먼저 공의 앞에 서야 할 죄인임을 깨닫고, 십자가의 은혜를 붙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은혜를 입은 자로서, 세상 속에서는 사랑과 겸손으로 살아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자. “여호와께서… 그의 공의를… 나타내셨도다” (시편 98:2). 그 공의는 심판으로 드러났고, 동시에 십자가에서 구원으로 완성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의를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공의를 대신 담당하신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