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마크 크리치 목사의 기고글인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 관한 놀라운 사실 7가지'(7 amazing facts about Mary, the mother of Jesus)를 17일 게재했다.
마크 H. 크리치 목사(Rev. Mark H. Creech)는 노스캐롤라이나 기독교행동연맹(Christian Action League of North Carolina, Inc.)의 사무총장이다. 그는 이 직책을 맡기 전에 20년 동안 목회자로 사역했으며,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다섯 곳의 남침례교회와 뉴욕주 북부에서 한 곳의 독립침례교회를 섬겼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 마리아는 오늘날 복잡한 위치에 놓여 있다. 일부 기독교 전통, 특히 로마 가톨릭에서는 성경이 지지하는 범위를 넘어 마리아를 지나치게 높이는 경향이 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개신교는 종종 반대편으로 너무 멀리 나아간다. 마리아의 역할을 인정하면서도, 그녀가 보여준 놀라운 믿음과 용기에 대해 깊이 묵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더해 세속 문화와 대중문화는 마리아를 계절 장식물이나 감상적인 상징, 혹은 신학적 무게가 제거된 도상(icon)으로 축소해 버린다.
그러나 성경은 훨씬 더 풍성한 초상을 제시한다. 마리아는 구유 장면 속에 놓인 연약한 인형이 아니었다. 그녀는 하나님의 계시가 지닌 압도적인 빛과 책임 앞에 깨어난 실제의 젊은 여인이었다.
마리아는 과장된 숭배도, 무심한 방치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녀의 삶은 신중한 성찰의 대상이 된다. 그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신비와 중단, 그리고 겸손한 믿음을 통해 어떻게 자신의 종들을 빚어 가시는지를 보게 된다.
마리아의 삶에서 오늘의 교회에도 여전히 또렷하게 말하는 일곱 가지 영원한 진리가 드러난다.
1. 하나님의 목적은 삶을 뒤흔들 수 있으나, 올바른 반응은 순종이다
마리아는 평범한 유대인 처녀가 기대할 법한 삶을 생각하며 살았을 것이다. 약혼, 결혼, 나사렛의 가정, 그리고 조용한 마을의 일상 말이다. 그러나 그녀의 부르심에는 평범함이 허락되지 않았다.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난 순간부터 그녀의 미래는 모든 기대를 뒤엎는 하나님의 방향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그녀는 결혼 전에, 성령으로, 처녀의 몸으로 잉태하게 되었고,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스캔들의 그늘 아래서 살아가야 했다. 그녀가 상상하던 삶은 완전히 사라졌지만,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 유일하게 옳은 응답이었다.
그 혼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가족의 보호 속에서 아이를 낳는 대신, 베들레헴으로 이동해 냄새나고 더러운 마구간에서 아들을 출산해야 했다. 평온한 가정생활 대신 난민처럼 애굽으로 피신해야 했다. 일상의 안정 대신, 예언적 신비의 무거운 짐을 품고 살아야 했다. 마리아는 어머니로서의 기대를 하나님의 더 높은 뜻에 맡겨야 했다. 골고다에서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모성의 고통을 마주했다. 그러나 그녀가 알지 못한 사이, 그 고통은 인류 구원의 중심에 놓여 있었다.
때때로 그녀가 평범한 삶의 단순함을 그리워했을 모습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종종 희생이라는 큰 대가를 요구하며, 마리아는 조용하고 흔들림 없는 신뢰로 이를 감당했다.
2. 하나님은 종종 젊은 이들을 통해, 경험 많은 이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일을 이루신다
마리아는 아마도 십대였을 것이다. 젊고, 경험이 부족하며, 세상을 이해해 가는 과정에 있던 나이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창조 때부터 이어진 약속, 인류의 타락 이후 주어진 가장 오래된 소망을 그녀의 어깨에 맡기셨다. 그녀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 메시아를 낳게 될 사람이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그녀는 필요한 자격을 거의 갖추지 못했다. 나이도, 영향력도, 교육도, 지위도 없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훨씬 더 귀한 것이 있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믿을 준비가 된 마음이었다.
이 이야기는 영적 성숙이 반드시 연륜으로 측정되지 않음을 상기시킨다. 성경에는 이런 패턴이 가득하다. 사무엘은 아직 어린아이였을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었지만, 연륜이 많은 엘리는 그 음성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윗은 형들 사이에서 무시받던 젊은 목동이었으나, 하나님은 그를 왕으로 기름 부으셨다. 요시야는 여덟 살에 왕이 되었지만, 수십 년의 경험을 가진 많은 왕들보다 더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돌아섰다.
세월이 저절로 영적 지혜를 만들어 주지는 않으며, 젊음이 반드시 결격 사유가 되는 것도 아니다. 마리아는 삶에 찌든 회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가능성을 아직 의심하지 않는 신뢰로 천사의 말을 받아들였다.
3.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은 평생의 오해와 의심을 불러올 수 있다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난 순간부터 마리아는 순종의 대가를 알고 있었다. 결혼 전의 처녀가 임신했다는 소식은 수군거림과 의심, 뒤에서 오가는 말들을 불러올 것이 분명했다.
천사는 쉬운 길을 약속하지 않았다. 단지 하나님의 뜻을 선포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마리아는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 1:38)라고 응답했다. 그녀는 이웃들의 눈에서 자신의 명성이 회복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하늘은 진실을 알고 있었다. 천사의 선언, 요셉의 꿈, 엘리사벳의 성령 충만한 축복, 시므온의 예언, 그리고 구속사의 전개 속에서 하나님은 마리아를 확증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끈질기게 자신이 아는 진리를 붙들어야 했다. 자신의 가치는 추측과 험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택하시고 부르시고 강하게 하시며 존귀하게 하신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믿었다.
마리아의 삶은 중요한 진리를 가르친다. 순종은 명성을 앗아갈 수 있지만, 우리의 가치를 빼앗지는 않는다.
4. 하나님은 신비와 함께 살아갈 준비가 된 이들에게 가장 큰 비밀을 맡기신다
마리아는 세상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신비를 품고 살았다. 태중에서 자라고 있던 성육신의 신비, 아들에 대해 선포된 예언의 말씀들, 어린 시절부터 목격한 역설들 말이다. 누가는 그녀가 이 일들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였다"(눅 2:19)고 두 번이나 기록한다.
하나님은 마리아에게 모든 것을 이해하라고 요구하지 않으셨다. 믿음으로 품고 기다리라고 하셨다. 윌리엄 카우퍼의 시처럼 말이다: "하나님은 신비로운 방식으로 그의 기이한 일을 이루시며 바다 위에 그의 발자취를 두시고 폭풍 위를 달리신다." 성경 전체가 이 패턴으로 가득하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아들을 수십 년 기다렸고, 요셉은 노예와 감옥의 어둠 속에서 꿈을 품었다. 다니엘은 봉인하라는 계시를 받았고, 사도들조차 부활 이후에야 예수의 가르침을 온전히 이해했다.
홀로코스트 수용소에 갇혔던 코리 텐 붐의 이야기는 이를 잘 보여준다. 그녀의 아버지는 "기차표는 기차를 탈 때 주지 않느냐, 하나님도 마찬가지다. 필요한 때에 필요한 것을 주신다"고 말했다.
마리아도 그렇게 살았다. 답을 요구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길이 अस्प明하다고 항의하지 않았다. 빛이 비칠 때까지 신비를 품었다. 하나님의 가장 깊은 일들은 종종 지나고 나서야, 때로는 영원에 들어가서야 이해된다.
5. 하나님은 모든 답을 알기 전에 예배하는 자를 기뻐하신다
마리아의 마그니피캇은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찬양 가운데 하나다. 더 놀라운 것은 그녀가 찬양한 시점이다. 그리스도가 태어나기 전, 예언이 성취되기 전, 명성이 회복되기 전, 그리고 고난의 길을 알기 전이었다.
그녀의 예배는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확신에서 나왔다. 말씀하신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실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성경을 알고 있었다. 두루마리를 소유하지는 못했지만,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었다. 참된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에 잠긴 마음에서 나온다. 오늘날에 살았다면, 마리아는 분명 성경을 펼쳐 들고 주일마다 주님의 집에 있었을 것이다.
6. 하나님은 신실한 종들에게 구속 역사의 전개를 직접 보게 하신다
마리아의 삶은 역사의 두 위대한 순간을 잇는다. 베들레헴에서 구주를 품었고, 예루살렘에서 성령 강림과 교회의 탄생을 목격했다(행 1:14). 구유에서 시작된 구원은 열방으로 확장되었다. 개인적 차원과 세계적 차원에서 구속이 펼쳐지는 것을 본 것이다.
마리아는 순간의 순종뿐 아니라, 끝까지 신실하게 걷는 삶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하는지를 보여준다.
7. 하나님의 구원은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자에게만 드러난다
마리아는 독특한 진리를 알고 살았다. 자신이 젖 먹이고 가르친 아들이 곧 자신의 구주라는 사실이다. 그녀는 별을 지으신 손을 만졌고, 세상의 죄를 지실 분을 품에 안았다.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아는 삶은 경외와 기쁨, 평안을 가져온다. 마리아의 본은 우리를 그리스도 앞에 무릎 꿇게 한다.
세월이 흘러도 이 진리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무너진 계획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어린아이 같은 믿음으로 순종하며, 오해 속에서도 은혜로 견디고, 신비를 품고, 답이 오기 전에 예배하며, 끝까지 그리스도와 동행하라는 부르심이다. 마리아는 자신을 가리키지 않고, 겸손한 마음을 통해 큰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가리킨다.
그녀의 고백이 오늘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란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누가복음 1: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