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색내는 사회봉사가 아닌, 삶에서 묻어나는 사회복지를 펼치고 싶다."
한 젊은이가 힘들고 고달픈 세상을 살면서 야무진 꿈을 꿨다. 그러나 이제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까.
지난 6월 21일 토요일. 동부전선 최전방 GOP에서 임 병장이 소총을 휘둘렀다. 장병 5명이 숨지고, 7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때 임 병장이 휘두른 소총에 김 하사는 무참하게 죽어갔다. 그가 꾸었던 꿈도 함께.
최근 우리 아들이 군 복무를 하기 위해 국가의 부름을 받고 논산훈련소에 입소하여 훈련 중에 있다. 평소에 나는 아들에게 말하곤 했다. "넌 최전방에서 군 복무를 했으면 좋겠다."
내가 생각하기에 아들은 고생이란 걸 모르고 너무 편하게 산 세대이다. 힘든 게 뭔지도 잘 모른다. 자기 나름대로 아쉬운 게 많을지 몰라도, 내가 생각하기에 그래도 필요한 게 있으면 채움받으면서 산 세대이다. 그래서 앞으로 험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고생을 좀 해봤으면 하는 아빠의 마음.
그런데 어느 날 아들은 우리 부부에게 말했다. "나, 의무경찰에 지원할 거야."
사실 대학을 진학할 때 아들은 경찰이 되고 싶어했다. 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업하기 힘든 이 시대에 그래도 괜찮은 직업이라 생각했다. 입학할 때 두 학교에 합격을 했다. 한 곳은 경찰학과였고, 한 학교는 경영학과였다.
당시만 해도 아들은 자신이 걸어가고 싶은 꿈이 명확하지 않았다. 선교사가 되고 싶은 마음, 경찰이 되고 싶은 마음, 사회 진출을 하고 싶은 마음.... 결국 경영과를 선택했다. 2학년 1학기, 결국 의무경찰을 지원해 시험을 치른 후, 지금은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중이다.
남들은 눈물이 나온다고 하던데, 우리 부부는 그렇지는 않았다. 대한의 남아라면 마땅히 가야 할 길이기에. 다만, 함께 있다가 자리를 비우니 허전한 생각이 든다. 밥을 먹을 때면 아들 생각이 나기도 한다. 날이 무더우면 더운데 훈련받는 데 고생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늘은 훈련소에서 동료 훈련생들과 찍은 사진을 보았다. 딸이 페북에 있는 사진을 가족 카톡에 퍼왔다. 그럴 듯해 보였다. 큰 키에 군복을 걸쳤는데 늘씬해서 멋져 보였다. 대견해 보인다.
난 조용히 기도한다. '주님, 우리 아들이 군 복무 기간 충성스러운 의무 경찰로 소임을 잘 하게 하소서. 무엇보다 안전한 복무를 하게 해 주소서.'
왜 이런 생각을 할까? 며칠 전에 있었던 전방 GOP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 때문이다. 그 사건으로 이 세상을 떠난 김 하사의 이야기다. 그는 기초생활수급 가정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집안의 기둥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겨울방학부터 아버지로부터 이러저런 일을 배워야만 했다. 4년 전, 어머니는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 건강마저 악화되었다. 주말에도 밤낮 없이 일과 학업을 병행했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돌봐야 할 동생이 셋이나 있었다. 그래도 틈틈이 자원봉사나 농활 등의 체험활동을 통해 남을 돕는 데 앞장섰다.
자신이 가난하고 불행한 인생을 살았기에,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싶었다. 음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참된 복지사가 되기를 꿈꿨다. 그래서 사회복지를 공부했다. 입대 전에는 지역아동센터에서 일하기도 했다. 평소 동네에서는 맏형 노릇을 하는 착한 청년이었다. 동네 후배들에겐 든든한 멘토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두운 곳을 돌보겠다던 그의 꿈은 이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동료 병사의 총부리에 의해.
한 젊은이의 야무진 꿈을 무참히도 짓밟은 사람은 바로 임 병장이다. 함께 근무하던 부대원들에게 수류탄을 던지고 총격을 가했다. 도망가던 동료를 향해 조준 사격까지 가했다.
도대체 왜? 그는 왜소한 체격, 어눌한 말투, 탈모 증세를 보였다. 부대원들은 그러한 임 병장을 따돌렸다. 부대 내에서 '해골', '언어 장애인', '할배' 등으로 불렸다. '계급 열외'나 '기수 열외' 같은 따돌림 문화 속에서 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치심을 겪어야만 했다.
특히 지난달부터 자신을 조롱하는 낙서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사건 당일 낮 초소 근무일지에 누군가 해골 모양의 낙서를 그려 두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부대 내 인격 모독과 집단 따돌림이 결국 이런 무참한 범행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사건을 저지른 임 병장은 도망쳤다. 죄책감 때문에. 두려움 때문에. 그래도 살고 싶은 욕망 때문에. 그러나 오래 버틸 수는 없었다. 군 수색팀의 포위망이 서서히 좁혀지던 순간, 임 병장은 울면서 아버지와의 전화통화를 요구했다. 마지막 순간, 임 병장은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들의 전화를 받은 아버지는 즉각 현장으로 달려갔다. 아버지의 발걸음을 주저하게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눈물로 설득했다. "아버지 어머니 억장이 무너진다. 그만두고 자수해라."
그러나 임 병장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이미 자포자기한 상태다. 어떤 결과가 닥쳐올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나는 어차피 엄청난 일을 저질렀는데 돌아가면 사형 아니냐."
하지만 가족은 포기할 수 없었다. 계속된 가족의 설득에 임 병장은 마음이 흔들렸다. "생각할 시간을 달라."
2시간 정도가 흐른 뒤, 임 병장은 종이와 펜을 요구했다. 다시 20여분이 흘렀다. 임 병장은 자신의 소총으로 자해했다.
꿈을 피워보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난 김 하사도 마음이 아프지만, 동료들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비참하게 살해한 임 병장 역시 불쌍하기 그지없다. 군대 와서 '관심병사'로 낙인찍히도록 한 게 도대체 무엇일까? 태어날 때부터 그렇지는 않았을텐데. 가정환경이? 아니면 사회적 요인이? 어쨌든 공동체 안에서 어울리지 못하고 따돌림 당하는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
우리 인생에 '미움과 증오'가 싹트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은 일이다. 너무나 경미한 미움과 증오의 싹이었는데, 시간이 흐르고 나면 통제하기 힘든 분노의 단계로 치닫게 된다. 인간의 마음과 감정 시스템이 그렇다. 그렇기에 마음 밭에 미움과 증오의 씨를 뿌리지 말아야 한다. 자라난 싹을 제거하는 건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이 아프다. 만약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내 아들이 동료들에게서 따돌림을 당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면? 아... 생각만 해도 너무 아찔하다. 우리는 왜 이럴까? 약한 사람이 있으면 더 보듬어 주어야 하건만. 뭔가 부족한 사람이 있으면 그를 돌봐줄 생각을 해야 하건만. 왜, 그런 사람을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건가?
생각해 본다. 교회는 다른가? 그리스도인은 다른가? 우리 안에도 잠재되어 있는 바이러스가 아니던가? 교회라고 안전한 피난처는 될 수 없다. 총부리는 겨누지 않더라도, 마음의 총부리는 겨누고 있지 않은가? 날카로운 말의 비수를 휘두르고 있지는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