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뉴얼(manual)이란 어떤 제품이나 기계의 사용 설명서를 말한다. 설명서를 보면 그 제품에 대해, 그 제품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다. 세월호는 매뉴얼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대형 참사를 낳았다. 인생에도 매뉴얼이 있다. 아무렇게나 살아서는 안 된다. 매뉴얼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
그리스도인에게도 '영적 매뉴얼'이 있다. 그리스도인이 갖고 있는 매뉴얼을 몇 가지로 들 수 있지만, 그 중의 하나는 바로 성령이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4)." 그리스도인은 성령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살아서는 안 된다.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자기 마음대로, 세상 표준대로 살아가는 세속적인 그리스도인도 많다. 무늬만 그리스도인이다. 매사를 자기 기분대로, 자기 생각대로, 자기 고집대로, 자기 감정대로 처리하려고 한다. 그러니 표면적으로는 그리스도인이지만, 실제로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어느 날 부흥사가 설교를 했다. 그때 한 여성이 아주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태도로 설교를 듣고 있었다. 설교가 끝난 후, 그는 부흥사에게 도전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목사님은 이 시대의 정신을 따르지 않는군요. 너무 시대에 뒤처져 있다고 생각지 않으세요?" 그러자 부흥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성도님의 말이 옳습니다. 나는 이 시대의 정신을 따르지 않습니다. 나는 이 시대 속에서 활동하시고, 또 내 안에도 계신 성령을 따를 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시대의 흐름과 정신을 따르는 자가 아니다. 이 시대의 트렌드가 어떨지라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을 '진리의 영'이라고 말씀하신다. 진리의 영은 성도들 안에 계시면서 영적인 세계를 알게 하신다(요 14:17). 우리 안에 계신 진리의 성령은 성도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요 16:13). 뿐만 아니라 진리의 성령은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신다(요 14:26). 성령이 아니면 진리를 깨달을 수도, 믿을 수도 없다. 성령만이 예수님을 깨닫게 하시고, 믿게 하시고, 따를 수 있게 하신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신다. 성경을 보아도 성령께서 눈을 뜨게 해 주셔야 한다. 진리의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신다(요 15:26).
진리의 성령께서는 기적을 일으키고, 예언을 하는 것보다, 더 우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신다. 뿐만 아니라 진리의 성령은 '세상을 책망'하신다(요 16:8). 진리의 성령은 세상만 책망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들 안에 계시면서 끊임없이 간섭하시고 책망하신다. 성령께서 나의 죄를 지적하신다. 의에 대해 가르쳐 주신다. 심판에 대해서 깨닫게 하신다.
그런데 주의할 것도 있다. 주관적인 적용을. 어느 날 예배가 끝나자 어떤 사람이 브라우튼 박사에게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박사님께서 설교하시는 중에 성령께서 제게 '너에게 꼭 필요한 50달러를 박사님께 달라고 하면 주실 거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러자 브라우튼 박사가 이렇게 응수했다. "거참, 이상한 일이군요. 내게 50달러가 없다는 것을 성령께서는 잘 아실 텐데 그렇게 말씀하셨단 말이지요? 그분이 분명히 성령이셨나요?" 때때로 이 사람이 받은 성령의 인도하심과 저 사람이 받은 성령의 인도하심 사이에 다름이 발견되어 당혹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한 독선적인 주장은 위험할 수 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는 일상의 삶 속에서 내 삶을 지배하시기를 원하신다. 이태리 프란체스코회 수녀인 '안젤라'는 이렇게 말한다. "성령이 어떤 사람의 영혼에 임하면, 성령은 그 사람의 외양도 완전히 정숙하게 한다. 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일 뿐이다."
성령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뿐 아니라, 날마다 변화시키고 바꾸어 가신다. 그래서 우리는 '몸의 행실을 죽이는 성령의 사역'을 경험해야 한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롬 8:13)."
성령의 사람은 타락한 인간 본성, 타락한 육체를 따라 살면 반드시 죽는다. 그렇기에 '타락한 성품에 지배된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한다. 그래야 산다. 갈라디아서 5장 19절에서는 우리가 죽여야 할 '몸의 행실'을 '육체의 일'이라고 말한다. 음행과 분쟁, 시기, 분냄과 같은 것들은 죽여야 한다. 이런 것들은 죽여야 한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골 3:5)."
그리스도인은 죄의 욕망을 죽이고, 타락한 본성에서 나오는 모든 행동과 일들을 죽여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죄를 계속해서 죽이지 않으면 죄가 우리를 죽인다.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날마다 내 몸을 쳐서 복종시켜야 한다(고전 9:27). 죄에게 불의의 무기로 드리지 않기 위해서는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한다. 성령께서 나를 완전히 지배하도록 순종해야 한다.
성령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다. 우리를 거룩하게 성화시킨다. 그리고 완성시키신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풍성한 은혜를 따라 행할 때 몸의 행실을 죽일 수 있다. 우리가 비록 성령의 사람이지만, 우리 안에는 여전히 아담의 DNA가 흐르고 있다. '육체의 소욕'이 일어나고 있다. 타락한 인간 본성에서 완전히 자유케 된 건 아니다. 우리 안에 있는 '육체의 소욕'은 '성령의 소욕'을 거스르고 더불어 싸운다. 그래서 '지금도 전쟁 중'이다(갈 5:16-17).
그렇기 때문에 날마다 생활 속에서 성령의 소원을 따라 행해야 한다. 성령을 따라 행함으로 '육체의 열매'가 아닌 '성령의 열매'를 맺어 인격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그래야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인격을 닮은 '작은 예수'로 빚어져갈 수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 하나가 있다. 천로역정의 저자인 존 버니언의 이야기다. 그가 국왕의 명을 어긴 죄로 감옥에 갇혔던 일이 있다. 어느 날 옥사장이 존 버니언에게 찾아왔다. 윗사람 모르게 옥문을 열어주면서 "집에 가서 사모님과 식구들을 잠깐 뵙고 오라"고 했다.
존 버니언은 감옥을 빠져나왔다. 얼마쯤 가다 다시 돌아왔다. 너무 이상해 옥사장이 존 버니언에게 물었다. '왜 다시 돌아왔느냐?'고. 그때 존 버니언이 대답했다. "당신의 호의는 고마우나 성령이 인도하시는 길이 아니라서 돌아왔다." 그로부터 시간이 조금 흐른 후, 국왕이 직접 감옥을 시찰하면서 존 버니언을 확인하고 돌아갔다. 이때 옥사장이 존 버니언에게 말했다. "당신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행동했기에 당신도 살고 나도 살았습니다. 이제 제가 가시라 오시라 하지 않을 테니 선생님 마음에 비쳐오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시고 싶을 때 가셨다가 오시고 싶을 때 오시기 바랍니다."
잊지 말아야 할 말씀! 육체를 따라 살면 죽는다! 그러나 성령으로 육체의 행실을 죽이면 산다! 성령이 내 인생의 매뉴얼이 되어 날마다 성령의 풍성을 열매가 맺히는 삶이 되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