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서 만일 예수님께서 히브리어를 사용하셨다면 “에데르”(rd,[e) 아니면 “촌”(@aOx)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이 두 단어 중에서 구약성경에서 흔히 사용되는 말은 “촌”(@aOx)이다. “양을 치다”라고 할 경우 “에데르”(rd,[e)가 사용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예레미야서에서 “촌”과 함께 동일한 뜻으로 “에데르”가 몇 번 사용되고 있으나(13:17,20; 31:10; 51:23), 이것은 드문 경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호 4:16에 “양을 치다”라는 말에 “케베스”(cb,K,)가 사용되었으나 이것은 예외에 속한다. 창세기에 “양을 치다”라는 말이 몇 번 나오는데(창 4:2; 30:31,36; 37:2, 12; 46:32, 34; 47:3), 이 모든 경우에 “촌”(@aOx)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 또 에스겔 34장에는 하나님께서 여러 번에 걸쳐 이스라엘 백성을 “내 양”이라고 부르시는데, 이 경우 “내 양”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초니”(ynIaxo)이다. 그리고 슥 11:4에 “양을 치라”라는 명령형이 나타나는데, 히브리어로는 “르에 엩 촌”(@axoAta, h[er_)이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 간 금식하신 후에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 구약성경에 나오는 말씀을 인용하여 대답하셨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시고자하는 말씀이 구약에 나오면 대체로 그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셨다.
따라서 만일 예수님께서 “내 양을 치라”라는 것을 히브리어로 말씀하셨다면 세 번 다 “르에 엩-초니”(ynIaxAta, h[er_)라고 말하셨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같은 뜻을 가진 두 개의 단어 즉 동의어(synonym)가 사용된 예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21:17 하반 절에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에 “아시오매”와 “아시나이다”에 각각 서로 다른 동사가 사용되고 있다. “아시오매”에는 “oi\da”라는 동사가 그리고 “아시오매”에는 “ginwvskw”라는 동사가 사용되었다.
이 경우에도 두 단어는 “알다”라는 뜻의 동의어로서 뜻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이 사용되었다. 목사님들 중에는 “ginwvskw”가 히브리어의 “야다”처럼 남녀 간의 관계처럼 직접적인 체험을 통한 지식을 의미한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으나 이런 주장은 아무런 성경적 또는 다른 문헌적 근거가 없다. 본문에는 나타나지 않으나 신약성경에는 이 두 개의 동사 즉 oi\da와 ginwvskw외에도 드물기는 하지만 ejpivstamai라는 동사가 사용되고 있는데, 이 세 동사가 모두 같은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행 19:15에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에서 “예수도 알고”에는 ginwvskw가 사용되었고, “바울도 알거니와”에는 ejpivstamai가 사용되었다.
예수님께서 히브리어나 아람어를 사용하셨다고 가정할 경우 요한이 그것을 희랍어로 번역할 때에 특히 동사나 명사의 경우 “왜 하나의 동사와 명사를 사용하지 않고 이처럼 두 개의 동의어들을 사용했는가?”라고 묻는 것은 아마도 부질없는 일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적어도 우리로서는 그에 대한 만족할 만한 대답을 찾아낼 수 없다. 어떤 면에서 이것은 요한복음 특히 21장의 저자가 희랍어의 동의어를 잘 구사하는 것으로 보아 희랍어에 능통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한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본문에서 같은 단어를 계속 사용하는 대신 왜 서로 다른 동의어들을 사용하였는가에 대해 의문을 갖는 것보다는 왜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같은 질문을 하셨으며, 왜 그 질문에 이어 “내 양을 먹이라”고 세 번이나 같은 말씀을 하셨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이 보다 유익할 것이다. 왜냐하면 요 21:15-17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