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Photo : )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언젠가 목사님들과 함께 사우나를 갔다. 한증막에 들어가 땀을 흘리고 있었다. 4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남성이 들어왔다. 뒤따라 5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들어왔다. 부자지간에 사우나를 즐기러 온 모양이다. 한증막에 들어서는 순간 어린 아이가 고함을 질렀다. "싫어! 싫단 말이야."

 

아이는 한증막을 나가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러자 아빠는 나가려고 하는 아이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러나 아이는 괴로운 듯 아빠의 손을 뿌리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한증막의 뜨거운 열기를 참아내기가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나는 거기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뜨거운 열기를 즐기고 있었다. '아~ 시원해~'라고 하면서.

사람들마다 견딜 수 있는 삶의 무게는 각기 다르다. 어떤 이는 무거운 것도 너끈히 견뎌낸다. 그러나 어떤 이는 아주 가벼운 무게도 견디지 못하고 호들갑을 떤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서.

누구나 고통스럽고 무거운 짐을 갖고 있다. '나만 그렇다'고 생각하면 더 힘들어진다. 짜증스럽고 불평이 나오게 된다. 그런데 그건 왜곡된 생각일 뿐이다. 왜곡되고 병든 생각이 문제다. 생각부터 교정하자. '나만 그런 게 아니다'라고. 다만 내 짐이 더 무겁고, 고통스럽게 느껴질 뿐이다. 그건 주관적인 느낌일 뿐이다.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인생의 짐이 짓누를 때 중요한 건 고난과 역경을 이길 수 있는 내적인 힘을 기르는 것이다. 이것을 '역경지수'라고 말한다. '나만 그렇다'는 왜곡된 사고를 버리고, '견디는 힘'을 기르면 된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주변 사람들을 한 번쯤 돌아보며 살아가자. 한 번쯤 바라보자,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있는 그들의 어깨를. 한 번쯤 들어보자, 웃음 뒤에 숨겨진 그들의 한숨과 탄식의 소리를. 조용히 손을 내밀어 보자. 서로의 아픔과 고통을 느껴주고 위로하고 격려하노라면,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하지 않겠는가?

때때로 아내가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한다. "피곤해서 어쩔고? 힘들어서 어쩔고?" 그 한 마디에 지쳐서 얼어붙은 내 마음은 한 순간에 녹아내린다. 힘들어서 지쳐 있는 어깻죽지에 알 수 없는 힘이 들어간다. 아둥바둥대는 처량한 내 모습에 알 수 없는 용기가 생긴다. 그렇게 서로 격려하며 살아가는 게 인생 아니던가.

얼마 전에 부산에서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났다. 33살인 평범한 주부가 8살 난 딸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도대체 왜? 어떻게 엄마가 딸을 죽일 수가 있어? 딸이 힘들어하는 아토피 때문이다. 아이는 3살 때부터 아토피를 앓았다. 아토피를 고치기 위해 전국의 이름 난 병원이라면 멀다 하지 않고 부지런히 찾아다녔다. 그런 지극정성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별 차도가 없었다.

5개월 전부터는 아이가 가려움 때문에 잠도 못 잘 지경이었다. 아이가 고통에 시달리는 걸 눈 뜨고 차마 볼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에 인터넷에서 '아토피 증상을 완화시키는 데 스테로이드제 연고가 좋다'고 하는 걸 봤다. 순간 주저하지 않고 사서 발라줬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이의 몸은 더 심했다. 아이가 자기 때문에 고통을 당한다고 생각하니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심하게 자책했다. 결국 딸의 목숨을 끊고, 자신도 따라 죽기로 결론을 내렸다.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얼마나 인생의 짐이 무거웠으면 그랬을까?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기억하길 바란다. 인생은 '내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어떤 상황이나 일이 닥쳐올지라도, '내가 알지 못하는 이유'가 숨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내가 알고 있는 범주에서 결론을 내리려고 하지 말자.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가 훨씬 더 많은지도 모른다. 그저 '주님께서 하셨다면, 거기에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라고 믿으면 된다. 다 알고, 이해하려고 애쓰지도 말자. 때때로 이해가 안 되더라도, 낙심하고 불평하지도 말자. 주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시니까. 나를 끔찍하게도 사랑하니까.

무거운 인생의 짐을 지고 아파하는 그대에게 필요한 건 회당장 야이로처럼 '주님께로 나아가는 것'이다. 죽을 병에 걸린 딸 때문에 신음하고 있는 야이로에게 주님은 초청장을 주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주님은 나에게도 이 초청장을 주셨다. 그래서 나는 힘들고 고달플 때마다 주님께 나아간다. 그 때마다 힘든 마음을 만져주시고, 지쳐 있는 어깨를 두들겨 주심을 느낀다. 세상에서 받을 수 없는 위로가 주님으로부터 나온다. 그래서 삶의 무게를 느낄 때마다 주님께 찾아가기를 즐긴다.

살다 보면, 낙담되는 순간이 다가온다. 절망적인 말을 들려주는 사람들도 있다. 야이로가 그랬듯이. '네 딸이 죽었다'고. 포기해야 할 상황이 다가올 수도 있다. 그러나 거기서 주저앉으면 안 된다.

죽음을 다스리시는 주님을 믿는가? 치유하시는 주님을 믿는가? 그렇다면 주님이 일하실 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믿음으로 기다려 보자. 주님이 포기하지 않는데, 내가 먼저 포기해서는 안 된다. 주님이 포기하실 때까지 절망해서는 안 된다.

때때로 혈루증 앓는 여인 때문에 다소 지체되기는 한다. 지체되는 게 불편해도. 불쾌해져도. 속상해도. 때로는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는 순간이 다가올지라도. 그래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언젠가 주님이 찾아오셔서 말씀하시지 않는가.

"달리다굼!"

"소녀야, 일어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