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공포'인 암(癌)의 습격에도 그는 자기 연민이나 불평 없이 의연했다. 대부분 '불청객(不請客)'이라 여기는 그것을,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길벗'으로 받아들였다. 육신의 질병은 그에게 "언젠가 떠날 인생의 건강한 매듭짓기를 위한 도구"이자, "하나님 은혜를 절감하는 수단"이었다.
수술과 방사선 치료로 성치 못한 상태였지만, 그는 여전했다. 손수 차를 끓여 따라 주었고, 돌아가는 길을 안내했으며, 기자 일행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서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다른 것이 아니라, 자신은 '그리스도인'이고 그리스도인은 응당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행 11:26).
이재철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새신자반>과, 믿음의 깊이와 높이를 더하는 <성숙자반>에 이어, 복음을 삶으로 입증하는 <사명자반>을 최근 출간했다. 이 세 권에 대해 그는 "주님의교회, 제네바한인교회, 100주년기념교회를 섬긴 나의 25년 목회가 모두 농축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스스로가 "암과 맞바꾼 책"이라 표현하는 이 책을, 그는 앉을 수도 없는 상태에서 30여회 방사선 치료를 받아가며 써야 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하나님의 섭리는 언제나 나의 상상을 초월하신다"는 고백이다. 이 <사명자반>에서는 <성숙자반>에 이어 '믿음이 아닌 것과 믿음인 것'에 대해, 사명과 사명자의 조건과 정의, 요한복음 21장으로 보는 복음과 사명자행전의 17개 연결고리, 노아와 모세, 예수님으로 보는 사명자와 사명자행전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다음은 이재철 목사와의 인터뷰 전문.
'모범적 교인'으로 살면서 답 얻지 못했던 '실존적 문제',
목회자 된 뒤 고민과 답 나누기 위해 <~반> 시리즈 시작
-몸은 좀 어떠신지요. 방사선 치료로 많이 힘드셨을 텐데 책까지 쓰셨습니다.
"방사선 치료라는 것이 환부에 방사선을 넣는 것이기에 치료받는 동안은 굉장히 피곤했고, 몸 뿐 아니라 사고하는 것과 표현하는 것, 그런 것들 자체가 평소보다 많이 힘들었습니다. 이제 2월 한 달 동안 더 쉬고 나면 완전히 괜찮아지리라 생각합니다.
방사선 치료를 받기 전, 수술 후 퇴원해서 한 달은 앉아 있지 말라고 해서 서 있거나 누워 있는 동안 삼국지를 오랜만에 다시 읽고, <사명자반>은 7월 24일부터 9월 29일까지 썼습니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제 손가락 10개가 움직이는 것이 기적이고, 아침에 일어나서 이를 닦을 수 있는 자체가 하나님 은혜임을 절감할 수 있으니 감사한 일이지요."
-<새신자반>부터 <사명자반>까지, 강의나 출간은 처음부터 구상하셨던 것인가요.
"아닙니다. 저는 모태신앙이었는데, 대학교에 입학할 때까지는 그야말로 '모범적인 교인'이었습니다. 하지만 대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이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럴 때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실존적 질문이 생겼지만 교회는 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교역자들에게 물어도 답이 없었어요. 그런 질문을 가져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많이 들었던 답이 '믿다 보면 알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게는 실존적 문제였는데, 그분들의 답은 답이 되지 못했던 것이지요.
실제로 교회 울타리 속에서 만났던 많은 분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교회 속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방황하고 많은 시간을 헤매던 광야의 기간을 거쳤습니다. 결국 신학교를 들어가서 제 눈으로 성경이라는 걸 처음 통독을 하고, 제가 갖고 있던 모든 질문에 대한 해답들을 찾게 됐습니다. 모태신앙인이면서도 그 때까지 한 번도 성경을 통독한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스스로 답을 얻은 셈이지요. 제가 뜻하지 않게 목회자가 되었지만, (이전의) 저와 같이 신앙생활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저와 같은 질문을 갖고 있고, 또 답이 없어 고민하며 신앙적으로 방황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제가 제기했던 고민과 답을 나누기 시작한 것이 바로 '새신자반'이었습니다."
주기도문, 사도신경, 십계명만 잘 지켜도 세상이 바뀔 것
-그렇다면, <새신자반>과 <성숙자반>, 그리고 <사명자반>의 주 대상은 누구입니까.
"제가 말한 새신자는 '초신자'가 아니라, 그야말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길 원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모태신앙인이었지 초신자가 아니었음에도, 신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새로운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시무하던 주님의교회에서 이렇게 새로운 삶을 살기 원하는 분들을 위해 10주간 함께 말씀을 나눴는데, 이 테이프가 외부로 퍼지면서 여러 군데서 책을 요청하셨습니다. 그래서 안식년이던 1994년에 <새신자반>을 썼습니다.
이후 '새신자반' 강의를 하면서 한 코스가 더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신자반>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출발점이라면, 그들을 더 성숙하고 농익게 해 주는 과정이 있어야겠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주님의기도(주기도문)'는 기도 중의 기도이잖아요? 그런데 대부분 그리스도인들이 이 주님의기도를 행사 폐회를 알리는 시그널로 받아들이고 생각 없이 외웁니다. 사도신경 또한 우리가 무엇을 믿을 것인가 하는 '믿음의 핵심'을 담고 있으니 굉장히 중요하지요. 그런데 대부분 교회에 등록하면 초신자 과정에서 이를 가볍게 다루고 넘어가 버리지 않습니까? 십계명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야 할 윤리장전'으로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렇듯 사도신경에 대한 신앙고백만 정확하고, 주님의기도와 같은 기도생활을 하며, 십계명을 삶으로 실천하기만 해도 세상은 바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들을 더 정확하게 알게 해서 '믿음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를 더해주는 코스'를 10주간 하다 보니 <성숙자반> 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숙자반'을 계속 하다 보니 결국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각자의 사명자행전을 써 가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삶으로 행동으로 실천하는 마지막 코스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믿음'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피스티스'인데, 이 단어에는 '신실(信實)'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결국 믿음은 '신실'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신약성경을 읽으면서 믿음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 '신실'로 바꿔 읽으면 훨씬 더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건 '피스티스'의 또다른 뜻이 '입증(立證)'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믿으면, 입증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받기 위해 입증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구원받은 백성임을 내가 믿는다면 그 믿음이 내 삶으로 입증될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하기만 해도 쳐다보는 눈빛과 얼굴 표정이 달라서 입증되지 않습니까? 하물며 공동묘지에서 한 줌의 흙으로 끝날 인생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의 보혈로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로 구원하셨음을 내가 믿는다면, 그 믿음이 삶으로 입증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절대 추상적인 관념이나 우리 머리 속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입증될 때 완성된다는 것을 모두에게 확실히 나누기 위해 '사명자반' 10주 코스를 마련했고, 투병하면서 마침 시간이 생겨서 책으로 쓰게 된 것입니다.
제가 서문에서 썼듯이 <새신자반>, <성숙자반>, <사명자반> 이 세 책에 주님의교회 10년, 제네바한인교회 3년, 현재 100주년기념교회 9년째 모든 목회와, 목회를 하지 않을 때도 책을 쓰고 해외 교회를 다니면서, 목회를 시작한 이래 25년간의 모든 것이 농축돼 있다고 표현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이것이 하루아침에 된 게 아니라, 해 오면서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지요."
'새신자'는 길을 바꾸고, '성숙자'는 끊임없이 자라가야
'사명자'는 삶으로 믿음이 드러나는가를 확인하는 과정
-새신자와 성숙자, 사명자란 각각 어떠해야 한다고 요약해 주신다면.
"새신자란 '공동묘지에서 한 줌의 흙으로 끝나버릴 인생의 길'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영원한 생명의 길로' 바꾸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새신자의 삶은 시작됩니다.
성숙자반은, 에베소서 4장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울을 통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은 자라가는 것입니다. 육체적·외적 자람이 '성장(成長)'이라면, 내적 자람은 '성숙(成熟)'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는 그날까지 끊임없이 자라야 합니다. <성숙자반>은 그런 의미에서 각자 믿음을 생각해 보며 자기 믿음을 스스로 키울 수 있도록 썼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렸듯, 믿음은 반드시 삶으로 입증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삶으로 믿음이 드러나는가, 그렇지 않은가' 확인하는 마지막 과정을 갖는 것이 바로 <사명자반>입니다.
오늘날 만약 한국교회가 성경에서 멀어지고 있다면, 복음을 이해하고 이에 대해 배우는 부분은 예전에 비해 굉장히 진전돼 왔지만 그 복음이 삶으로 입증되는 부분으로까지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누구든지 이 물꼬만 터 주면, 한국교회는 정말 보다 더 새로워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한국 그리스도인들처럼 믿음에 더 열정적인 이들은 전 세계에 없지 않습니까?"
요한복음 21장은 '사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연결고리
-<사명자반>을 보면, <성숙자반>에서도 언급됐던 요한복음 21장이 또 등장합니다. 이 장에 대한 특별한 애착이 있으신가요.
"성경은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에 의해 기록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의 손을 도구로 써서 기록하게 하셨고, 그 글들을 하나님께서 도구로 사용하신 분들에 의해 정경으로 확정되게 하시고, 그 순서를 자리매김하시지 않았습니까? 저는 그래서 성경으로 확증된 책들도 중요하지만, 성경의 순서 자체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복음서가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시라는 '굿 뉴스(Good News)'를 전해준다면, 이어지는 사도행전은 그 복음을 삶으로 입증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사명자행전'을 엮어가야 한다는 것이 순서에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연결시키는 고리가 바로 요한복음 21장입니다. 이 장은 그 위치가 사복음서의 마지막 장이니, 요한복음의 결론인 동시에 사복음서의 결론입니다. 그리고 그 21장에 맞물려 사도행전 1장의 막이 오른다는 것은 요한복음 21장이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연결시키는 고리라는 말입니다. 저는 그래서 이 21장을 굉장히 중요하게 봅니다. 이것을 바르게 이해하면, 내 삶 자체가 복음과 사명자행전으로 연결되는 고리가 될 수 있다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목사님께서는 요한복음 21장 이외에도 사도행전과 요한복음을 오랫동안 주일에 설교하고 계신데요, 이유가 있으신지요.
"아까 요한복음 21장에 대해서도, 처음부터 그 중요성을 알았던 게 아니었습니다. 목회를 하고 성경을 읽는 가운데 깨닫게 된 것입니다. 주님의교회 목회 10년간 마태복음을 3년 반 동안 매 주일 설교했고, 요한복음을 6년 반 동안 했습니다. 저는 사도행전 설교집(<사도행전 속으로>)에서 밝혔듯 '순서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강해설교는 한두 장씩 하고 넘어가지만, 저는 각 절 순서대로 설교하기 때문에, 어떤 절도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듯 저는 신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36세까지 교회를 다녔지만 성경 1독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성경을 읽지 않으니, 결국 주일 설교 말씀을 통해서만 성경을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목사님께서 설교를 순서대로 하시지 않았기 때문에, 36년간 교회를 다녔지만 성경을 통전적으로 알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목회를 시작하며 어떻게 설교할지를 고민하다, '순서설교'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야 교인들도 성경을 순서대로 알 수 있고, 목사도 자신의 목회적 야망을 위해 성경을 수단화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순서대로 가면 예배당 짓자고 어느 구절 인용하고, 헌금 많이 내라고 어느 구절 꺼내쓸 수 없지 않겠습니까?
순서대로 하되, 나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교인들이 그 설교만을 듣고 그 부분에 대해서만 성경을 알게 되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매번 그 구절을 성경 전체를 들여다보는 창문으로 사용합니다. 매일 설교할 때마다 성경 전체의 의미와 지향하는 바가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일에는 순서설교를 하고, 이외에 새벽기도회나 수요 성경공부나 구역 공부를 통해서는 다른 곳들을 설교하면서, 모든 교회 프로그램에 다 참여하시는 분들은 3년이면 성경을 다 알게 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요한복음을 다른 분들에 비해 더 깊이 보게 됐고, 보다 보니 요한복음 21장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님의교회에서 10년 목회하고 그만뒀는데, 제네바한인교회와 이곳에서 다시 목회를 하게 돼 어느 곳을 설교할까 생각하다 요한복음을 했으니 사도행전을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사도행전을 설교하다 보니 그 순서의 중요성과 함께, 요한복음 21장이 차지하는 비중을 자연스럽게 또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기준 자체가 성경이 되지 않으면, 우리의 죄성은 늘 타협
정답대로 살려고 하면 고되다, '그러나 비로소 평안하다'
-책에서 말씀하시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참 옳다고 생각되면서도 너무 높은 기준이 아닌가 하는 부담도 들었습니다. 냉정히 말해, 죄인 된 우리는 <새신자반>에 나온 이야기만 다 지키기도 힘겹지 않을까요.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배당을 지어서 제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복음을 삶으로 입증했기 때문에 제자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예배당을 잘 짓거나 무슨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 등 외적 형식을 놓고 믿음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농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준 자체가 성경이 되지 않으면, 우리 속의 죄성 때문에 언제든 타협하기 쉽습니다. 지금 당장 그렇게 살지 못하더라도,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기준만은 분명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매일 그 기준과 현재의 나 사이의 간극을, 나를 쳐서 복종시켜 가면서 메워갈 수 있습니다. 만약 그 기준이 불분명하다면, 오히려 우리는 성경을 그저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매일 전락시키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이 있는데, 저는 그 인물들 중에서 저런 기준을 안 가진 사람이 있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지요."
-목회를 하면서 책도 쓰셨는데, 책과 말씀을 통해서는 이상을 전하시지만 성도들의 현실과 괴리감을 느끼실 때는 없으신지요.
"목회라는 것은 교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살아간다는 의미는 교인들의 최전선에서 선봉장이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러분, 이렇게 살아보지 않겠습니까?' 라고요.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처럼 너희를 나를 본받으라'고 한 것도 그가 선봉장이 된 것입니다. 제가 그렇게 선포한다는 것은, 적어도 그렇게 살고자 하는 의지와 결단 없이는 안 되는 것이지요. 그 의지와 결단 속에서 그렇게 선포하고, 제 스스로가 부족하지만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그것을 보고 교인들이 그러한 삶에 함께 동참하려 애를 쓰고.... 그런 가운데 개인의 삶 뿐 아니라 그가 속한 공동체와 주의 세상이 밝아질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목사님의 가르침을 받은 교인들이 지금 사명자의 단계에까지 왔다고 보십니까.
"아니지요. 저것은 아까도 말씀드렸듯 목표 지점입니다. 적어도 저와 같이 신앙생활하는 교인들이 모두 사명자반 코스를 이수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1년에 수백 명이 저 코스를 이수한다는 이야기는,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적어도 저런 목표로 살겠다는 표현이자 결단입니다. 그러지 않고서 10주 동안 하루 2시간씩 와서 강의를 듣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목회자는 분명한 목표를 정해 주고, 그 목표의 대오 앞에서 선봉장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숙자·사명자의 길이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교인은 없나요.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은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처음 신앙생활하시는 초신자들 말고, 다른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시던 분들 중에는 더러 '예전 교회에서 신앙생활할 때는 참 편했는데, 100주년기념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려니 고되다. 그러나 마음은 편하다'구요. 저는 이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답을 알았을 때, 그대로 하려고 하면 피곤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했을 때 내 마음과 영혼이 비로소 평안합니다. 우리는 편안한 삶, '이지 라이프(easy life)'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평안한 삶은 울면서도 씨를 뿌리지 않고는 절대 하나님의 '샬롬'이 절대 임할 수 없지 않습니까? 씨를 뿌리지 않는 평안은, 아편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 천국 가는 것 '정말 믿는다면' 달라질 것
-성도들은 예수 믿고 천국 가는 것이 중요한데, 이런 많은 교육 때문에 자칫 지적 유희나 율법적 종교로 흐르지 않을까 하는 염려는 없으신가요.
"그래서 왜 훈련을 시키는가 하는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훈련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군인들 중 가장 강하다는 공수부대원을 예로 들어 봅시다. 그들은 밥을 먹고 나면 매일 똑같은 훈련을 반복하는데, 그들의 지능이 떨어져서 그런 게 아닙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본능적으로 누구든지 덤비면 반응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기 위해 그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성경공부를 하는 데도, 그 자체가 목적이면 지적 유희이거나 깨달음의 즐거움 속에 머무는 일일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 모든 성경공부는 공부한 대로 살게 하도록 반사신경을 심어주는 것이라 생각하면, 방금 말씀하신 그런 위험에선 벗어날 수 있습니다.
방금 '예수 믿고 천국 가는 게 목적'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천국 가는 것을 정말 믿는다면 삶이 달라질 거라 봅니다. 천국 간다는 것을 믿으면, 이는 눈에 안 보이기 때문에 안 보이는 진리를 위해 자신을 던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서 사탄에게 받았던 유혹들, 전부 눈에 보이는 것들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다음 책에 대한 계획이 있으신가요.
"목회를 하면서 책을 쓴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성숙자반>도 100주년기념교회가 세워진 다음 출간됐기 때문에 녹취록을 출판사에서 풀어 문장을 다 교열한 다음 제가 읽고 냈는데, 말로 하는 것과 글로 하는 것은 분명 다릅니다. 그래서 제가 볼 때는 문장의 완성도가 떨어집니다.
<사명자반>도 여러분들이 원하셨지만 쓸 수 있는 시간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난해 1월 2주간의 피정 기간 동안 쓰려고 마음을 먹고 시작했는데, 며칠 만에 탈진 상태로 뻗다시피 해서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는 암이라는 건 몰랐는데, 4월 말에 암인 것을 알고 몇 달간 요양하는 기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몸만 생각하고 보신하는 일만 할 것인가' 생각했을 때 '아니다, 이 시간도 없어지는 시간이고 귀한 시간이기 때문에 해야 될 일을 하자' 그래서 숙제로 미뤄뒀던 <사명자반>을 쓰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목회를 하는 한, 책을 또 쓴다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