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달력도 한 장 남았다. 한 장 남은 달력도 절반을 뚝 자르고 있다. 유수 같은 세월이다. 아쉬움과 후회, 그리고 반성을 기초한 새로운 결심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시기이다.
크리스천들에게 12월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메시야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날을 기념하는 성탄절이 있기 때문이다. 기쁨과 평화의 소식을 갖고 자기 땅에 찾아오신 메시아, 그의 탄생은 온누리의 희망이요 축제이다. 그런데 성탄의 기쁜 소식이 전해진 12월에 얼어붙은 북한 땅에 강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2년 전, 세계의 촉각이 곤두섰다. 새파란 젊은이가 과연 김정일 체제를 물려받을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었다. 쏜 화살 같은 세월은 어느덧 2년이 훌쩍 지났다. 출범 2년을 맞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 김정은은 서슬이 시퍼런 칼을 휘두르고 있다. 핵심 권력층 물갈이를 단행하기 위해. 물론 1인 독재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한 수작이다.
작년에는 인민군 총참모총장 이영호를 전격 해임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권력의 정점에 있는 국방위 부위원장 장성택을 내쳤다. 장성택 실각은 더욱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그는 김정은의 고모부이자, 오랜 후견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올해 북한에서는 40여명이 공개 처형됐다고 한다. 물론 자신의 일인독재 체제를 강화하고, 내부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일 게다. 대강절에 일어나고 있는 북한의 지각변동을 보면서 몇 가지를 생각해 본다.
첫째, 공포정치의 끝은 어딜까? 정말 궁금하다. 최첨단 시대에, 공산주의가 다 붕괴된 이 시대에 북한의 체제는 아직 건재하다. 위태위태함의 스릴을 타면서도. 그들 몸부림의 끝은 과연 어딜까? 합리성과 유용성이 우선하는 시대에, 칼과 무력으로 휘두르는 체제가 언제까지 통용될까? 공포와 협박, 불안의 마감은 언제일까?
그러나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찾아오셨다. 무기력해 보이는 아기의 모습으로.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은혜로웠다. 천국복음으로 사람들 마음에 평화의 씨를 뿌리셨다. 그가 다스리는 땅에는 평화의 꽃이 피어나고 있다. 저 북한 땅에도 공포정치는 종식되고 평화의 꽃이 활짝 피어나기를 기도해 본다.
둘째, 인간의 권력 집착의 끝은 어디일까? 김정은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인륜도, 윤리도 중요하지 않다. 권력유지를 위해서는.
권력이란 게 참 무섭지 않은가? 최근 장성택은 김정은에게 매일 반성문을 제출하고 있다고 북한 소식통은 전하고 있다. "장성택이 집에 칩거하면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특별지시에 따라 반성문을 매일 제출하는 등 자숙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권력 앞에는 고모부도 별 수 없는가 보다. 기울어가는 권력을 다시 붙잡기 위해서는 자존심도 중요하지 않나 보다.
그러나 우리가 기다리는 예수님은 어떤 메시야인가? 권력의 옷을 내던지신 분이시다. 그는 하늘 영광을 스스로 포기하시고 이 땅으로 내려오셨다. 천하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서. 온 세상의 왕이신 예수님은 자신이 가진 권력을 휘두르려고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권력을 과감히 포기하셨다. 지금도 권력을 잡기 위해 불의와 야합하고 총회를 쏘다니는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교회를 어지럽히면서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는 우리와는 정말 다르지 않은가? 그 예수님의 우리의 권력에 대한 집착도 몰아내시면 어떨까?
셋째, 권력의 안전지대가 어디인가? 권력은 무상하다. 영원한 절대 권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장성택은 권력의 정점에서 힘을 과시해 왔다. 그러나 김정은은 권력의 정점에서 그를 끌어내렸다. 강제로. 그러니 세상에 권력의 안전지대는 없다. 권력이란 강력한 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상하기 그지 없다.
장성택을 끌어내리고 수많은 인사들을 내치는 김정은의 자리는 언제까지 보장될까? 언젠가 그도 또 다른 사람들에 의해 끌려나가는 건 아닐까? 권력의 정점을 두고 올려가려고 몸부림치고, 끌어내리려고 안간힘을 쓰는 인간의 투쟁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다리는 예수님은 다르다. 사람들이 끌어내린 게 아니다. 스스로 인간 세상으로 내려오셨다. 자기포기이고, 자기희생이다. 힘과 권력의 정점을 스스로 내려놓으신 것이다. 예수님은 권력을 지키려 애쓰지도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온 인류의 영원한 왕으로 통치하신다. 그분은 힘과 권력의 절정은 섬김임을 삶으로 보여주셨다.
넷째, 권력에 집착하는 김정은의 마음은 교만으로 꽉 차 있다. 그는 정상에 올라가기를 원했다. 정상을 지키려 애쓴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위선과 거짓을 밥 먹듯 둘러댄다.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파리 생명보다 하찮게 여긴다. 사단은 그의 마음에 교만의 씨를 심었고, 끊임없이 영양분을 공급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기다리는 예수님은 겸손한 모습으로 우리를 방문하셨다. 인간의 몸을 입고, 베들레헴 땅, 말구유에, 아기의 모습으로 찾아오셨다. 이 모든 게 있을 수 없는 사건이다. 하나님이신 그 분이.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분이. 만물을 창조하신 그분이. 진리와 은혜를 충만히 담은 그분이. 어떻게? 그에게서 교만은 찾아볼 수 없다. 겸손한 스승이셨다.
박수와 칭찬에 허기진 우리에게는 겸손하게 방문하신 예수님이 정말로 필요하다. 남들보다 조금 더 큰 것을 소유했기 때문에 우쭐대는 우리는, 예수님의 영으로 충만하게 채움 받아야 한다. 자신을 무시하고 알아주지 않는 사람들을 증오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우리는, 예수님의 정신으로 물들어야 한다. 교만한 마음을 갈아엎고, 겸손한 마음밭을 기경해야 한다. 그래야 성탄의 예수님이 우리의 왕좌를 정복하시리라.
북한의 엄청난 지각변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는 더 강력한 지각변동을 일으키셨던 예수님에게로 눈을 돌려야 한다.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세상을 주목시켰던 예수님. 칼을 휘두르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의 마음을 다 빼앗아버린 메시야. 무력이 아닌 평화의 복음으로 우리의 마음 왕좌를 차지한 그분에게로.
인간 심연에 도사리고 있는 권력에의 욕구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또 일어나는 욕구를 막을 수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께로 나아간다. 북한의 지각변동의 불꽃이 엉뚱한 방향으로 튀지는 않을까? 북한의 미래 뿐 아니라 남한의 미래조차 알 수 없다. 내일에 대한 불안이 엄습한다. 그러나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거하러 이 땅에 찾아오신 임마누엘 주 앞에, 불안한 염려의 보따리마저 조용히 내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