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부산에서 열린 WCC 제10차 총회가 채택한 'WCC의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관한 성명서'와 관련, 서경석 목사(기독교사회책임 상임대표)가 'WCC는 끝났다'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강력히 규탄했다.
서 목사는 이 칼럼에서 "나는 단언한다. WCC는 이제 끝났다"며 "앞으로 WCC는 한반도 문제에서 손을 떼라. WCC가 한반도 프로그램을 하면 할수록, 북한의 인권 회복은 그만큼 지연되고 북한의 기독교인들은 더 억압당하고 평화와 통일은 더 멀어질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서 목사의 칼럼 전문.
WCC는 끝났다 이번 WCC 제10차 총회는 WCC의 정신을 배반한 총회, WCC의 종언을 고한 최악의 총회로 기억될 것이다. 그 동안 WCC의 가장 아름다운 업적은 무엇인가? 대표적인 것이 한국의 민주화운동, 그리고 남아연방의 反인종차별 투쟁을 지원한 것이었다. 이러한 WCC의 외롭고 힘든 결단이, 정의를 갈망하는 전 세계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억눌린 사람들의 편에 서는 것, 이것이 바로 WCC 정신이었다. 나는 이 정신 때문에 WCC를 사랑했다. 나는 지금도 NCC 청년 간사 시절에, 한국을 내방한 WCC 필립 포터 총무를 만났던 감동을 잊지 못한다. 이번에 WCC의 자유주의 신학 풍조에 대한 극심한 반대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자유주의 신학을 극렬하게 반대하지 않는다. 내가 자유주의 신학을 지지해서가 아니다. 나는 과거에 자유주의 신학에 빠졌던 적이 있었다. 그 때는 내가 믿음이 부족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합리적으로 사고하게 되어 있다. 합리적인 사고에 입각한 기독교 이해가 바로 자유주의 신학이다. 그리고 나는 신앙체험을 하고 나서야 복음주의로 되돌아왔고 자유주의 신학 전체를 버렸다. 그래서 나의 자유주의 신학 이해는 "신앙체험을 아직 하지 못한 사람들의 과도기적 생각"이다. 그래도 나는 자유주의 신학 - 내게는 민중신학 - 덕분에, 신앙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를 완전히 떠나지 않고 기독교 안에 있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점을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래서 나는 복음주의의 WCC 반대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반대운동에 동의하지 않았다. 자유주의 신앙은 비판한다고 해서 바뀌지 않는다.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신앙체험을 하고 예수님에게만 구원이 있음을 고백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복음주의 교회가 WCC를 극렬하게 반대하기보다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에게 복음적 신앙을 증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오늘과 같은 불신앙의 시대에 그들이 여전히 기독교 울타리 안에 있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속한 통합측 교단은 예수님에게만 구원이 있음을 믿는 복음적인 교단이지만, 이런 넓은 마음으로 WCC에 참여하고 있다고 나는 추측한다. 가장 억눌린 사람들인 북한 주민 편에 섰어야 했는데... 또 WCC가 말하는 정의와 평화가,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가 아니라 세상적인 정의와 평화라는 비판이 있다. 이 비판은 절대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나는 WCC가 세상적인 정의와 평화만을 말해도 만족한다. 그 동안 하나님의 정의를 말하는 기독교인들이 세상적인 정의를 외면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한국민이 독재 하에서 고통을 겪을 때, 하나님의 정의를 강조하는 기독교인들은 우리를 돕지 않았지만 WCC는 열심히 도왔다. 그래서 나는 세상적인 정의와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를 말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내가 이번 WCC 부산총회에 대해 분노하는 이유는 WCC가 세상적인 정의와 평화를 헌신짝처럼 버렸기 때문이다. WCC가 동북아에 와서 총회를 개최한다면 동북아의 가장 억눌린 사람들의 편에 서야 했다. 그들은 누구인가? 말할 것도 없이 북한 주민이다. WCC가 WCC 정신에 충실했더라면 과거 한국민의 인권 회복을 위해 헌신했던 것처럼 이번에 북한 주민의 인권을 위해 헌신했어야 했다. 그러나 WCC는 이번에 북한인권 문제에 침묵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억압자인 김정은의 편에 섰다. 예장 통합측 총회와 감리교 총회 실행위원회는 "WCC 총회가 북한인권결의안을 내야 한다"는 결의를 했었다. 그러나 이 결의는 부산총회의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성명>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이는 WCC의 논의구조가 소수의 에큐메니스트들에게 장악되어 지극히 비민주적이고 폐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저명한 선교신학자인 피터 바이어하우스박사는 "많은 참관자들과 제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WCC 부산총회를 준비한 사람들이 서울에서 100마일 떨어져 있는 북한의 그리스도인들이 대량으로 그리고 가장 무자비한 방식으로 순교의 죽음을 당하고 있는 사실을 거의 알지 못하고, 부산에서 북한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오히려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조종받는 북한 당국의 교회를 초청하려고 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바이어하우스박사의 이 발언은 한국 기독교인을 포함하여 전 세계 기독교인을 대변하는 발언이었다. WCC는 아직도 1984년의 도잔소 회의에 갇혀 있다. WCC가 도잔소 회의에 남과 북의 기독교인을 초청했을 때만 해도 북한교회가 가짜라는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2005년 미국 프리덤하우스가 주최한 북한인권대회에서 탈북자 김현식 교수는 "모스크바대학의 조선어 교수로 가면서, 평양에 남게 되는 아내가 조금 편하게 살도록 의복배급과 식량배급이 특별한 봉수교회 교인이 되게 해 달라고 노동당에 청원했는데, 노동당은 이미 봉수교회 교인이 되려고 신청한 사람이 60명이 되어 아내를 61번째 대기자 명단에 올리겠다"고 답변했음을 폭로하면서 봉수교회가 가짜 교회임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이렇게 되면 WCC는 북한교회가 가짜인 줄 몰랐다고 정직하게 고백해야 했다. 그런데 WCC는 이번에도 '도잔소 정신'을 들먹이면서 남과 북의 교회가 만나도록 주선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 행동은 한국교회와 전 세계 교회를 속이는 사기행위다. 뿐만 아니라 이 행위는 북한에 신앙의 자유가 있는 것처럼 선전하는 북한정권의 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북한의 기독교 탄압을 방치, 묵인, 조장하는 행위다. 북한 동포에게 필요한 건 평화나 통일 아닌 '인권'이다 이번에 WCC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강조했다. 그러나 북한 동포에게 필요한 것은 평화나 통일이 아니라 인권이다. 지난 68년간 세계 최악의 인권유린 속에서 살았는데, 이번에 젊은 수령이 등극했으니 앞으로 50년 이상을 다시 최악의 인권유린 상태에서 살아야 하는 현실이 가장 큰 문제다. 인권을 말하는 순간 그대로 깨지는 평화, 인권이 없는 평화는 거짓 평화, 사이비 평화일 뿐이다. 북한인권을 말하지 않고 한반도의 평화만을 말하는 것은, 북한인권 문제를 외면하는 대가로 남한의 생명과 재산과 안전을 북의 김정은으로부터 보장받으려는 극도의 이기적인 행동이다. 기독교인은 이런 이기주의자가 되면 안 된다. 한국은 북한인권을 말하는 바람에 천안함·연평도 사건이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그런데 기독교인은 이보다 더 큰 대가를 치르는 한이 있어도 북한인권을 말해야 한다. WCC가 북한인권에 대해 말하지 않은 이유가 통일열차나 북한교회 초청 등의 프로그램에 대한 집착 때문이었을지 모르겠다. 만일 그렇다면 이는 기독교의 본질을 망각한, 커다란 판단착오다. 기독교인에게 생명처럼 중요한 일은 무슨 남북관계 프로그램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의를 선포하는 일이다. 트베이트 총무는 "북한인권 문제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로서 계속해서 대화로 풀어나가야 될 과제"라고 말했다. 아니, 북한인권 문제를 대화로 풀겠다니 말이 되는가? 모세가 바로왕을 만나 대화를 했나? '내 백성을 해방시키라'며 재앙으로 바로왕을 굴복시키지 않았나? 도대체 트베이트 총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로왕의 압제에서 해방시킨 야훼 하나님이 북한 주민의 절규를 들으시고 북한 동포를 김씨왕조의 압제에서 해방시키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나 한 것인가? 이번에 WCC는 북한을 향해 "내 백성을 해방시키라"(Let my people go)를 외쳤어야 했는데, 이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출애굽 신앙을 저버렸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더 이상 WCC에 예언자적 사명을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유엔이라는 세속기구가 이 사명을 감당해 줄 것을 기대할 것이다. WCC는 재정이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워도 정신만 살아있으면 운동은 절대로 죽지 않는다. 그 동안 WCC가 숱한 공격을 받으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소외되고 억눌린 사람들의 편에 섰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부산총회에서 WCC는 그것마저 포기해 버렸다. 그러면 해답이 없다. 그래서 나는 단언한다. WCC는 이제 끝났다. 앞으로 WCC는 한반도 문제에서 손을 떼라. WCC가 한반도 프로그램을 하면 할수록, 북한의 인권 회복은 그만큼 지연되고 북한의 기독교인들은 더 억압당하고 평화와 통일은 더 멀어질 것이다. 그리고 예장 통합측 총회에 탄원하고자 한다. 통합측 총회가 WCC가 북한인권결의안을 낼 것을 요구하기로 했는데 이 요구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내년 통합측 총회에서 WCC 총회가 하지 못한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