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들은 성년식 때 3대가 하나님 말씀의 전수식을 갖는다. 랍비가 보는 앞에서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아버지가 아들에게, 토라를 전수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음 세대에 전수하는 것은 유대인의 사명이다. 할아버지는 이 때 토라를 건네면서 눈물을 많이 흘린다고 한다. 토라 전수식은 할아버지에게 사명 완수로 인해 삶을 마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목숨을 경각에 두면서까지 신앙 전수를 잘 한 가정이 있다.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들었다. 즉 아므람이 같은 지파 여인인 요게벳과 결혼했다. 이들이 살았던 때는 이스라엘이 애굽의 노예생활을 하는 고난의 시기였다. 부부는 미리암과 아론을 낳아 잘 길렀고, 세번째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다.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의 번성을 두려워한 바로가 갓 태어난 히브리 남자 아이들은 모조리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아므람과 요게벳은 아들을 낳게 되었다.
그들은 그 아들을 석 달 동안 숨겼다. 그것은 애굽 왕인 바로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기 때문에 아므람과 요게벳 뿐만 아니라 아론과 미리암까지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아므람과 요게벳은 믿음으로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않았다(히 11:23). 아이를 더 숨길 수 없게 되자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고 아기를 담아 나일 강가 갈대 사이에 두었다.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 알려고 멀리 서 있었다(출 2:2-4).
마침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강으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나일 강가를 거닐었다. 공주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오라고 하였다. 상자를 열고 아이를 보니 아기가 울었다. 공주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임을 알고 아이를 불쌍히 여겼다. 미리암이 바로 공주에게 "내가 가서 당신을 위하여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게 할까요?" 하고 물었다. 공주가 허락하여 미리암은 그 아이의 어머니 요게벳를 불렀다. 공주는 요게벳에게 "이 아기를 데려다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고 하였다. 친어머니가 유모가 된 것이다(출 2:5-9).
그 아기가 자라서 바로 공주에게 데려가니 공주의 아들이 되었다. 공주는 아들의 이름을 "내가 물에서 건져내었다" 하여 모세라고 불렀다. 모세가 궁궐에서 지내는 40년 동안 요게벳의 신앙교육이 있었을 것이다. 이후 모세가 광야에서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까지 요게벳이 그녀의 품에서 히브리인의 정체성을 심어준 것은,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시키는 데 크게 일조를 한 것이다.
아므람과 요게벳은 하나님으로부터 자녀를 얻는 기쁨을 누렸다. 그러나 그 자녀를 자신들의 힘으로는 지켜낼 수 없어 안타까웠다. 하나님께서 그의 섭리 하에 바로 공주의 손에서 모세를 자라나게 하셨다. 요게벳은 모세의 유모가 되어 아므람은 유모의 남편으로서 아들이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모세는 더 이상 아므람과 요게벳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였다.
우리 문화 속에서 부모 자녀 간 끈끈한 혈육의 정으로 엉켜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 부부는 자녀를 더 이상 자신들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을 위해 길러야 한다. 세상의 물결 속에서 주님을 의지할 수 있도록 자녀 양육에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한다.
부부 삶의 절반, 아니 그 이상이 자녀를 위한 삶이다. 남편과 아내는 자녀 양육에 대한 의견 차이로 수없이 대립하기도 한다. 아므람과 요게벳은 경건한 부부로, 자녀 양육에 있어 생명을 불사하는 믿음을 보여 주었다. 남편과 아내가 함께 이런 마음으로 자녀를 양육한다면 믿음 전수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며 자녀로 인한 행복한 열매를 누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