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희 목사
(Photo : ) 고승희 목사

라마단 기간을 지나갑니다. 라마단이란 이슬람을 신봉하는 모슬렘들의 종교 달력으로 아홉 번째 달의 이름입니다. 그들은 9월인 라마단 월을 금식하는 달로 지키고 있습니다. 저희도 지난 14년 동안 라마단 기간에 모슬렘 형제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모슬렘들의 삶과 신앙에 대하여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모슬렘들의 삶과 신앙을 알아가면서 깨달아지는 것이 이것이 모슬렘들의 특징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본질을 잃어버린 크리스천들의 모습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모슬렘들의 신앙을 받쳐주는 다섯 가지 기둥이 있습니다. 모슬렘들의 신앙을 지탱해주는 이 다섯 기둥은 우리 크리스챤의 신앙을 지탱하는 다섯 가지 기둥이기도 합니다.

1) 신앙고백입니다. [알라 유일신, 모하멧은 신의 전달자]
2) 하루에 다섯 번씩 하는 기도입니다. [다니엘]
3) 라마단 월 한 달 동안 하는 금식이 있습니다. [예례미야 36:9]
4) 가난한 자들에게 베푸는 구제가 있습니다. [최후의 심판 -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
5) 성지 순례가 있습니다. [나그네 히 11:13-16]

그렇다면 이슬람을 신봉하는 모슬렘과 하나님의 사람들과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모슬렘과 크리스천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우리들에게는 있지만 모슬렘들에게는 없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러나 이것이 없다면 실상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모슬렘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신앙과 삶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는 특징이 무엇입니까?

계시록 2:9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크리스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지만 전혀 하나님 사람다운 모습이 없는 모슬렘과 다를 바 없는 신앙과 삶을 가진 사람이 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야 할 것으로 첫째로 꼽은 것이 은혜입니다.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들기 위해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모슬렘들에게도 알라의 긍휼과 자비를 말합니다. 모슬렘뿐만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말합니다. 그러나 은혜는 그리스도인들에게만 있습니다. 자비는 선물을 베푸시는 분의 성품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긍휼은 선물을 받는 사람의 안타까운 형편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는 받는 사람이 받을 자격이 없다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즉 교회를 핍박하던 자가 사도가 되었습니다.

은혜의 뿌리에 있는 것은 그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에 대한 차이입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십니다. 모슬렘들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어떻게 세 분의 하나님이 하나가 되느냐고 고개를 꺄우뚱 합니다. 우리는 더하기와 곱하기의 차이로 설명합니다. 두 사람이 한 커플이 되고 두 자녀와 함께 네 사람이 한 가정이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참된 연합의 의미를 배우게 됩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하나님 중에서 가장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성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마리아와 관계하여.. 아들을 낳을 수 있는가? 불경스러운 일로 간주합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위클리프 성경 번역 선교회가 이슬람권에 보급하는 성경 번역본에 하나님의 아들을 다르게 번역하려 했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 하나님의성회(Assemblies of God USA)와 일부 장로교회가 지원을 철회했습니다. 이들에게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할 때 아들이란 아버지의 이미지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개의 아들은 개입니다. 사자의 아들은 사자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인간의 모습을 띠고 이 땅에 찾아오셨다는 것은 은혜입니다. 큰 은혜입니다.

파키스탄에 영어 캠프를 위해 간 청년들을 찾아갔습니다. 50도에 가까운 무더위 속에서, 습도도 높지만 하루 다섯 번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선풍기조차 돌릴 수 없는 곳에 찾아갔습니다. 그들과 함께 먹고 뒤에서 기도했습니다. 우리 학생들이 위로를 받았습니다. 아무 것도 도움이 된 것이 없지만 그저 함께 했다는 것으로 위로가 되었습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습니다.

빌립보서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도 이해가 안되는데..... 그 하나님의 아들이 극악한 죄인들만 처형하는 가장 고통스러운 십자가에서 죽었다. 이것은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십자가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면 시험에 들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볼 때 큰 능력이 됩니다.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 고백 후 십자가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능력이 인정될 때 십자가를 말씀하시며 왜 십자가를 지는지를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십자가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가올 때 우리는 그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 은혜를 입게 됩니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그렇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고전 1:18] 십자가의 은혜가 우리에게 다가오면 우리에게는 구원의 확신이 생겨납니다. 아들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들에게 무엇을 아끼시겠습니까?

감사와 감격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터져 나오는 기쁨으로 살 수 있게 됩니다. 그 기쁨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그가 바로 크리스천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들, 곧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 은혜가 우리들의 삶에 넘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