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영민 목사
(Photo : ) 엄영민 목사

따르릉! 전화 벨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린다. 한참 다른 일로 전화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발신자 신호를 보니 오래 전 텍사스로 이사를 간 한 권사님의 이름이 뜬다. 무슨 일인지 알 듯 하다. 오늘이 바로 내 생일이다. 몇 년 전 타주로 이사를 가셨고 대부분의 경우 이 정도 되면 다 잊을 법도 한데 어김없이 과거의 담임목사인 내 생일을 기억하시고 전화를 주신 것이다.

쑥스럽지만 전화주신 것이 고마워 전화를 돌리자 팔십이 훨씬 넘으셨음에도 여전히 낭랑한 목소리로 반가워하며 전화를 받으신다. 일 년전 생일날 전화를 주셨으니 꼭 일년 만이다. 무엇을 또 이렇게 일부러 전화까지 주셨느냐며 미안해하자 내가 숨이 붙어있는 한은 어찌 잊겠느냐 하신다. 내가 무얼 했다고 숨이 붙어있는 한 잊지못할 사람이란 말인가? 잠시 과분한 사랑을 받는다 싶은 생각이 스쳐간다.

청년부 전도사로부터 시작해서 오랜 기간 교회를 섬기면서 젊은이들부터 연세 많으신 어른들까지 여러 세대를 섬겼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대체로 젊은이들은 함께 있을 때는 웃고 떠들며 재미있게 지내지만 지나고 나면 다시 찾아오는 법이 드물다. 이십년이 넘은 오랜 기간을 한 자리에 있었지만 내가 그리워, 날 찾아온 젊은이는 극히 소수에 불과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반면 어른들은 같이 있을 때에 그리 가까이 하지 못했다 싶은 분들조차도 떠나면 잊지 않고 소식을 전하고 안부를 전해온다. 담임목사를 잊지 않을 뿐 아니라 교회를 잊지 않고 늘 그리워하는 분들도 많다.

언젠가 한 권사님은 다른 곳으로 이사해서 교회를 떠난 지 한참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거액의 헌금을 보내 교회에 큰 힘이 되었던 일도 있었다. 무슨 차이일까 싶다. 아무리 생각해도 단순한 나이 차이만은 아닌 듯싶다. 비록 어렵게 살았지만 이전 세대의 어른들에게는 은혜를 잊지 않고 옛정을 기억하는 좋은 습관이 있다. 연세 드신 어른들의 좋은 습관은 이뿐이 아니다. 교회의 어르신들 중에는 지금도 잠시 교회를 비우게 되면 언제나 먼저 목회자에게 전화를 해서 무슨 일로 어디에 가고 언제 돌아올 것을 정중히 말씀해 주시는 분들이 계신다. 그 모습 속에 마치 어디 나가기 전 먼저 집안 어른에게 고하던 옛 미풍이 배어있다.

나 자신을 비롯해서 우리 세대나 그 보다 젊은 세대들에게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전화를 걸어오신 권사님은 마치 이 날을 위해 일년을 기다려 오신 분처럼 말 한 마디 한 마디 속에 그리움과 사랑이 진하게 배어있다. 본인의 이야기는 간략하게 하신 후 교회 식구들이며 우리 집 아이들 소식을 물으신 후 이사 갈 때 가지고 가셨던 우리 식구 사진을 다른 곳에 두고 와서 볼 수가 없다고 아쉬워하신다. 그 말을 듣고 무심할 수 없어 가족 사진을 한 장 보내드리겠다니 아이처럼 기뻐하시며 몇 번이고 다짐을 받으신다.

그러고 보니 심방을 하다보면 많은 권사님들이 우리 아이들의 이름을 줄줄이 외우고 계셨다. 늘 기도하시는 까닭이다. 젊은 세대 중에도 그럴 분이 없지는 않겠지만 이 분들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부족한 가운데도 오늘까지 이렇게 교회를 섬기고 쓰임 받은 것은 전적으로 이 귀한 분들의 기도 덕분이다. 그러고 보면 이 분들이야말로 동네 한 복판의 느티나무처럼 교회를 지켜오고 목회자를 지탱케 해주는 영적인 기둥들이다. 많은 이야기를 하시고 싶겠지만 목회자의 바쁜 사정을 아는 까닭에 부랴부랴 전화를 끊으시는 권사님의 음성에 아쉬움이 가득하다. 그러면서 마지막 하시는 인사 말씀이 영어로 “I love you so much!” 하신다. 한국어보다는 덜 쑥스러워 영어를 쓰셨겠지만 그 진지한 사랑이 짜릿하게 가슴에 전해온다. “God Bless you!” 나도 영어로 맞장구 쳤다. 아! 참 지상의 천국인 교회서만 나눌 수 있는 아름다운 교제와 사랑이다. 교회 안팎의 어르신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와 축복을 드린다. I Love you so much t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