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가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져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각국에서는 경기부양을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한 나라만 정책을 잘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세계 경제는 거미줄처럼 정교하고 긴밀하게 연결되어, 지구 반대편의 불안요인에도 휘청 할 수밖에 없는 글로벌한 족쇄에 채워져 있다.
수출이 경제의 근간이 되는 세계적인 무역대국인 우리나라도 이 여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잔뜩 움츠러든 세계경제에 우리 내수시장도 얼어 붙고 있다. 특별히 무엇을 할 것도, 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여기 저기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아우성이지만 뽀죡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정부도 내 놓을 수 있는 경기 부양책이라고는 거의 부동산 활성화 대책이 전부인 실정이다.
국회의원이건 대통령이건 도덕성이나 국정 운영 능력보다는 집 값 올려주겠다는 후보에게 몰표를 주는 상황이다 보니, 새 정부가 들어서면 임기가 끝날 때까지 수십 차례에 걸쳐서 부동산 부양 정책을 내어 놓는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정책의 효과가 발표 당시에만 잠깐이요 지속적인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진 것이라고는 집밖에 없는 중산층, 서민들은 이 출렁이는 부동산의 경기에 목숨 줄을 맡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왜 한국사회는 집값, 특히 아파트 값에 목숨을 거는가? 그것은 한국에서 아파트란 재산으로서의 가치를 넘어서는, 인생의 모든 것을 함축하는 아이콘이기 때문이다. 아파트를 사기 위해 일하고, 아파트를 사기 위해서 이사를 다니고, 아파트를 사던 날의 감격은 그간의 모진 고생에 대한 보상이며, 아파트에서 자녀를 키우고, 아파트와 함께 늙어간다.
그러므로, 살고 있는 아파트의 브랜드 네임은 곧 빛나는 인생의 훈장이 된다. 직장을 퇴직하고, 자녀를 결혼시키고, 하루가 다르게 몸은 무거워지지만, 여전히 곁에서 든든하게 남아 있는 것은 그 인생의 여정을 함께 했던 아파트 뿐이다.
그렇기에, 아파트 값이 떨어진다는 것은 그 동안 땀 흘려 일해서 얻은 성취가 부정 당하는 것이다. 하루 아침에 몇 천만원의 시세가 떨어지는 것은 표면적인 문제요, 심정적으로는 인생의 한 부분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충격이 된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데모를 보며 혀 끝을 차던 부모님들이 주변에 혐오시설이 들어와 아파트 값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거리로 나서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것은 자신의 인생이 부정 당하는 것에 대한 항변인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거품경제 붕괴에서 보듯이 이제 '부동산 불패의 신화'는 없다. 더 이상 아파트는 재산 증식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아파트는 이제 그 본연의 목적인 주거의 수단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주거 가치 이상의 거품은 빠지게 되어 있다. 문제는 그것이 서서히 연착륙 하느냐 아니면 폭탄처럼 터지느냐 하는 것이다.
이 현실을 빨리 인정해야 한다. 부모세대가 신화처럼 무리하게 떠 받치는 아파트 값 때문에 우리 자녀들은 결혼연령이 늦춰지고, 빛나는 젊은 시절을 곰팡이 냄새 나는 반지하에서 살아가야만 한다. 아파트 값이 순수하게 노력하고 적금을 들어 살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다 보니, 높디 높은 아파트의 그늘은 그대로 젊은 세대의 그늘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의 인생이 늘 젊음에 머물 수 없는 것처럼, 아파트 값도 늘 최고를 찍을 수는 없는 일이다. 아파트 값이 떨어지는 것은 우리 인생이 늙어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다. 아파트 값이 떨어지는 것은 잃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녀의 미래를 위해서 그만큼 투자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