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송태근 목사가 삼일교회 담임으로 부임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사람들은 그가 원로목사 추대를 불과 1년 앞두고 교회를 옮긴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원로목사가 되면 여생을 편히 보낼 수 있는데도 송 목사가 그것을 포기했다는 것이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을 안겼기 때문이다.
◈누가 ‘원로목사’ 되나=어느 때부턴가 ‘원로목사’라는 말이 부쩍 자주 들린다. 특히 최근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리더십이 교체되면서 더 흔한 단어가 됐다. 원로목사는 담임목사, 부목사, 협동목사처럼 목회자의 지위와 역할 등을 규정하는 단어들 중 하나다.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국내 대부분의 교단들은 원로목사의 정의와 자격 기준 등을 그들의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예장 합동총회는 교단헌법 정치 제4장 제4조에서 원로목사의 자격을 “동일(同一)한 교회에서 20년 이상 시무한 목사”로 정하고 있다. 추대 과정에 대해선 “공동의회를 소집하고 생활비를 작정하여 원로목사로 투표, 과반수로 결정한 후 노회에 청원하면 노회의 결정으로 원로목사라는 명예직을 준다”고 밝히고 있다.
예장 통합총회 역시 비슷하다. 그러나 기장과 기감, 기성은 예장 합동과 통합처럼 원로목사가 될 수 있는 목회연한을 따로 정하지 않고 있다. 기장과 기감은 담임목사가 정년(만 70세) 은퇴 후 원로목사가 될 수 있도록 정하고 있고 기성은 이를 교회의 재량에 맡기고 있다. 다만 원로목사에게 치리권이 없다는 점은 이들 교단 모두가 공통으로 못박고 있었다.
◈예우는=이외 원로목사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더 이상 없다. 기성이 “지교회가 현직 담임교역자 생활비의 30% 이상을 지급한다” 정도로 언급하고 있을 뿐, 나머지 교단들에선 예우와 역할에 대한 구체적 가이드라인이 없다. 결국 개교회가 이러한 것들을 당회와 공동의회 등의 과정을 거쳐 정하고 있는 형편이다.
개교회가 원로목사에게 어느 정도의 ‘노후’를 보장하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담임목사의 사례비를 공개하는 교회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원로목사의 그것까지 알기란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형교회에서 원로목사로 추대될 경우 그 예우가 상당하리라는 것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한 목회자는 “교회 규모에 따라 원로목사에 대한 예우가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원로목사를 추대할 정도라면 그 교회는 중·대형 이상”이라며 “원로목사의 월 사례비는 일종의 연금으로 적게는 담임시절 받던 사례금의 50%에서 많게는 80%까지 교회가 지급한다. 경우에 따라선 사례금 말고도 사택과 개인비서까지 지원하기도 한다. 따로 사역을 하면 여기에 필요한 경비 일부를 교회가 부담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원로목사가 되면 비록 사례금이 담임목사 시절 만큼 되지 않으나, 목회의 부담이 줄어들고 무엇보다 교회 안팎에서 그 명예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목회자들은 원로목사로의 추대를 ‘성공한 목회’의 중요한 지표로 삼고 있다.
그러나 담임목사로서 오랜 기간 목회했지만 원로목사가 되지 못하는 이들도 허다하다. 이들은 그저 교단이 정한 연한이 차 목회 일선에서 물러난 ‘은퇴목사’들일 뿐이다. 한 목회자는 “국내 대부분의 중·소형 교회들은 현직 담임목사의 사례비조차 감당하기 어려워 은퇴한 목사를 원로로 추대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형편”이라며 “더러는 원로로 추대했다가도 교회 사정이 어려워져 지급하던 사례금을 중단하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유례=그렇다면 한국교회에서 이 원로목사는 언제부터 존재해 왔을까. 연세대에서 교회사를 가르쳤던 최재건 박사는 “그리 오래 되진 않은 것 같다. 교단들이 교회의 여러 직제와 법을 정비하기 시작했던 것이 한국전쟁 이후였으니, 원로목사라는 개념 역시 그 때부터 생기기 시작했을 것”이라며 “이것은 영미권 교회들에선 존재하지 않는, 한국교회만의 특수한 직함이다. 한국 특유의 관료적 특성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슨 일 하나=대부분 목회자들은 원로목사가 된 후 은퇴한 교회에서의 비정기적 설교, 출판 등으로 시간을 보낸다. 원로목사가 된 후 이전보다 더 많은 사역을 감당하는 목회자들도 있다. 주로 대형교회의 목회자들로, 담임 시절 교회일 때문에 돌아볼 수 없었던 연합사업이나 특수사역, 국·내외 선교에 보다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이들이다. 지구촌교회 이동원 목사나 국내 최고령 목회자로 영등포교회 원로인 방지일 목사 등이 바로 그런 경우다.
드물지만 또 다른 교회를 개척해 ‘목회 제2막’을 열어가는 목회자들도 존재한다. 평생 다니던 직장에서 은퇴한 후 다시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열정을 불태우는 여느 직장인들과 다를 바 없는 경우다. 자신에게 주어진 목사로의 사명을 일평생 붙들고 사는 이들은 ‘정년’에 관계 없이 목자로서 잃어버린 양들을 하나님께 인도하길 희망한다.
◈구체적 지침 필요=원로목사와 후임 담임목사 사이의 갈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많은 교회들이 이런 갈등으로 심한 몸살을 앓았고 지금도 이것은 진행형이다.
대형교회 당회원인 한 장로는 “원로목사들은 교회에 대한 애착이 갖 부임한 후임 담임목사보다 당연히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때로 이 애착이 지나쳐 간섭으로 이어지기도 한다”며 “둘 사이에 부딪히는 일이 잦다 보면 교회는 어려움을 겪는데, 심한 경우 원로측과 담임측으로 나뉘어 대립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장로는 “최근 이런 일들이 자주 발생하자 원로목사는 은퇴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수 없게 하자거나 아예 원로목사직을 없애는 게 낫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담임목사와의 갈등 뿐만 아니라 원로목사에 대한 지나친 예우가 자칫 교인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며 “교단 차원에서 원로목사에 대한 예우와 역할, 활동 범위 등을 보다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