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17:8 때에 아말렉이 이르러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9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10 여호와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11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12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13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파하니라 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15 모세가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16 가로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1. 하나님 명령에 절대순종

광야 이스라엘 교회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가나안을 향하여 전진하는 과정에서 신광야를 떠나 르비딤까지 왔으나 백성들이 마실 물이 없다고 불평했습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 기도할 기회와 기도할 제목을 주셨는데도 그들은 하나님 중심의 신앙 행보를 하지 않고 기도할 생각을 하지 않은 채 모세에게 노골적인 원망과 불평을 털어놓고 포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돌을 들어 모세를 때려죽이려고 까지 했습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애굽 땅에 우리의 매장지가 없어서 여기까지 끌고 와서 우리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했더냐”하면서 그들을 인도하신 이가 하나님이신데 그것을 믿지도, 알아 보지도 못하고 사람인 모세를 붙들고 불평했습니다. 모세는 당황했습니다. 자기를 인도하신 하나님은 자기를 통해 그 백성을 인도하셨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항의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얼마 아니면 내게 돌질하겠나이다”(출17:4)

이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하수를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내가 거기서 호렙 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출17:5~6)하십니다. 이로써 하나님은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이가 모세가 아닌 모세를 붙들어 쓰시는 하나님이심을 증명하셨고 그들이 인도하심을 받고 나아가는 그 길에 그들의 삶과 소망의 보증이 되어주실 분은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다시 확인시켜 주신 바가 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교회생활을 통해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당하는 어려움은 여러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순종하기 위해 나아갈 때, 그 어려움을 분명히 분별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즉시 하나님의 방법, 초자연적인 기적으로 해결해 주실 것을 믿기 바랍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로 가지 않고 한 교회의 직분자로서의 의식에 사로잡혀 자기 욕심대로 목적을 정하고 자기 맘대로 옆길로 빠져 나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길을 욕심대로 서둘러 가다가 실패를 만나게 되었을 때는 그 일에 대한 회복이나 해결을 기도할 것이 아니라 불신앙을 먼저 회개하는 지혜가 앞서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잘 분별하지 못해 혼돈에 빠지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얻어맞고 있으면서도 왜 얻어맞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다면 계속 얻어맞을 소지가 다분하고 그 인생은 교회 다니면서도 되는 일이 없고 하는 일마다 실패하고 상처투성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광야교회도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입니다. 그들은 체험은 많이 했지만 영적 신앙을 생활화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각, 말, 행동이 하나님과 어긋났습니다. 출애굽기 17:7절에 “우리 중에 여호와께서 계신가 아닌가” 하는 불신앙적인 말로 인하여 그 백성들은 엄청난 쓰라린 고통을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체험으로 교육하고 확인해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여호와 닛시라는 제목으로 깨닫기 바랍니다.

2. 하나님 절대주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반석에서 난 물을 마시고 그곳 이름을 맛사라 또는 므리바라 불렀을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아말렉을 붙드셔서 이스라엘을 쳐들어오게 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는지, 아닌지를 가르쳐 주시기 위함입니다. 창세기 36:12절에 보면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의 첩 딤나는 아말렉을 엘리바스에게 낳았으니 이들은 에서의 아내 아다의 자손이며” 했습니다. 즉, 아말렉은 에서의 손자입니다. 에서는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 정도로 신앙을 가볍게 여긴 사람입니다. 그의 신앙은 이성의 지배를 받는 자율주의적 신앙이었습니다. 이로써 에서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아말렉은 에서의 형식적이며 습관적인 겉치레 신앙 족보의 후손이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교회가 있지만 그 교회가 어느 신앙 노선에 서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신적인 수양의 방편으로 교회를 다니면서 생활은 에서와 자기 의지적인 자율주의적 신앙을 하는 자를 불신앙자보다 더 악한 대상으로 취급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 절대주의, 신율주의라고 하는 하나님 법을 내 모든 생애의 원칙이자, 기준이라 믿고 사는 신자는 하나님이 성령으로 인치시고 자녀삼아 책임지시고 보살피시며 가꾸시고 하늘나라까지 데려가 주십니다.

본문의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장되지도 않았고 훈련된 정예군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나그네입니다. 그들은 밤낮으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나안을 향하고 있는 지친 나그네들일 뿐이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이 아말렉이 생각할 때는 정말 쉬운 상대였습니다. 아말렉은 세상적인 전술, 전력에 의해 자신만만했습니다. 아말렉군은 중무장하여 가나안을 향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쳐들어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이스라엘이 승리함으로써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계심을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시편 2:1~3절에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虛事)를 경영하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여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버리자 하도다” 합니다. 이에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로다”(시2:4)하십니다.

기름 부음 받은 자는 성령을 받은 자며 그는 곧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 된 자를 대적하는 자를 하나님의 방법으로 없애버리십니다.

신명기 25:17~19절에 “너희가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너를 길에서 만나 너의 피곤함을 타서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느니라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기업으로 얻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로 사면에 있는 모든 대적을 벗어나게 하시고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아말렉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할찌니라 너는 잊지 말찌니라” 합니다.

하나님은 원수를 갚으시는 분입니다. 구속하신 백성들이 약해졌을 때 기회를 틈타 그들을 공격한 아말렉을 기억해 나중에 가나안에 들어가 원수들을 다 쫓아내고 태평성대하게 되거든 반드시 아말렉을 쳐부수어 씨도 손도 남기지 말고 천하에서 전멸시키라는 말씀입니다. 아말렉의 입장에서는 사형선고를 받은 셈입니다. 이러한 것을 모르는 아말렉을 하나님은 충동질하셔서 너무나 연약해 보이는 광야 이스라엘을 치게 만드십니다. 스스로 죽을 자리로 찾아 오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 뜻을 저버린 채 애써 양심적인 목회로 영적인 소망을 일깨워주려고 애쓰는 목자를 마음 아프게 하는 사람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을 하나님이 그냥 두실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도 참고 기다리시지만 어느 때까지 회개하지 않으면 반드시 진멸시키고 마십니다.

아말렉이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고자 쳐들어 왔습니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출17:9)하고 말합니다. 이때 여호수아가 무장된 아말렉과의 싸움이 당치도 않은 말이라고 하며 나가서 그들과 싸우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은 전멸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모세를 지도자로 알고 절대 복종했습니다. 또한 모세는 이스라엘의 장정들을 믿은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산에 올라가 기도할 때,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아말렉을 이기게 해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에 훈련되지 않은 자들이라도 함께 싸울 것을 결심했습니다.

여호수아는 르비딤에서 싸우고 모세는 두 손에 하나님의 지팡이를 치켜들고 하나님을 향해 기도했습니다. 기도하고 있는 동안 이스라엘이 이기게 하셨고 모세가 지쳐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깁니다(출17:11). 이것은 지도자의 책임이 얼마나 중한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목자가 하나님 앞에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로 그가 맡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살게 해 주시는 응답을 보장받습니다. 모세의 뻗은 팔에 이스라엘 백성의 생명이 보장었기에 모세는 사력을 다해 팔을 뻗어 올리고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세의 팔이 피곤해져서 아론과 훌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고 그 위에 앉게 하고 양옆에서 팔 하나씩을 붙들어 올렸습니다.(출17:12) 만약 아론과 훌이 자기들보다 나이 적은 동생의 팔을 들어 올림으로 돕는다는 것에 기분이 나빴다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아말렉에게 전멸당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또한 아론과 훌이 모세대신 지팡이를 들고 있었어도 하나님의 도우심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맡겨진 직분이 달리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두 사람은 장로로서 자기보다 어린 목회자를 애써 도운 것입니다.

3. 조직의 계통질서를 지키라

세상조건을 초월해 영적 사명의 위치에서 자기 직분을 잘 감당하는 교회라야 하나님이 승리하게 해주십니다. 모세는 그 노후에 다리가 후들거리고 주저앉을 때까지 두 팔을 있는 힘을 다해 뻗어 올렸습니다. 그가 기진맥진했을 때 아론과 훌이 그의 오른편과 왼편에서 힘을 다해 그의 손을 붙들어 올렸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명대로 나아가 힘껏 싸웠기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영광스러운 승리를 보장 받을 수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길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출17:14)하십니다.

여호수아는 벌판에 나가 아말렉과 접전하고 있었기에 모세가 손을 뻗어 기도했던 상황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죽은 후 그 뒤를 이어 모세의 직분을 계승할 사람으로 여호수아를 지명하셨습니다. 그가 어떻게 아말렉을 이겼는가를 분명히 알고 사명에 임할 때 광야 이스라엘 교회가 앞으로도 여호와 닛시라는 승리를 보장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여호수아와 그와 함께 싸웠던 젊은 장정들에게 모세가 손을 뻗어 기도했던 상황을 기록하여 알려주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전쟁은 여호수아의 전술로 이긴 것도 아니며 광야생활에 지친 이스라엘 장정들의 용기로 이긴 것도 아닙니다. 모세와 여호수아, 아론과 훌의 제대로 된 역할분담으로 하나님 앞에 소망적인 교회로 확인됐기에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르비딤 광야에서 전멸했습니다.

이렇듯 교회는 여호와 닛시라는 체험을 바탕으로 승리하는 교회로 발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15절에 모세가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기게 해주시니 우리 승리의 깃발은 바로 여호와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승리의 깃발입니다. 교회가 신율절대주의고 영감적 체질신앙으로 말씀 보수 신앙을 바르게 가꿔서 조직의 계통질서를 지켜 소망 있는 교회로 인정 받으면 하나님께서 원수, 마귀들을 굴복시켜 주실 것이고 승리하는 교회로 여호와 닛시의 깃발이 펄럭이게 해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