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믿어지는 믿음
믿어지는 것은 축복입니다. 아무리 믿으려고 해도 믿어지지 않는 것은 저주요 불행입니다. 육의 오감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보겠다고 하는 태도는 아주 어리석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물체가 아니고 신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반드시 신의 감동에 의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요6:45)는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을 경우, 하나님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이라야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는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에게는 성령으로 그에게 깨달음과 체험, 감동을 주셔서 예수님을 알아보고 믿을 수 있게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순교할 수 있기까지 믿는 믿음은 자의적 노력의 수단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축복으로 가꾸어주신 믿음의 결과입니다. 그렇기에 믿음 그 자체가 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6:16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시몬 베드로가 고백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는 사람에 의해 교육을 받았거나 지식을 바탕으로 예수님을 알아보게 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가르치심에 의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심을 알아보게 되는 것은 축복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이 간단한 고백은 역사 이래로 모든 택하신 백성들에게서 듣기를 소원했던 가장 정확하고 진실한 신앙고백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사랑하는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어지는 축복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성과 지각으로 이해되지 않아도 자꾸만 믿는 마음이 하나님께로 기울어져 가며 자신도 모르게 예수님에 대한 기대가 넘치고 소망의 확신이 생깁니다. 또한, 그는 예수님이 자신을 영원히 자기백성으로 구원해 주시고 그 영광의 자리에 동참시켜 주실 것을 기대하고 소망하는 가운데 믿게 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늘나라 갈 자격을 생각해 보니 아직도 죄가 많아 회개의 눈물이 터져 나오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육신의 유익보다는 의를 지키기 위하여 손해를 보더라도 내세의 소망을 믿음으로 살아가며 세상조건을 다 준다 해도 천국의 소망을 놓칠 수 없고 어떤 모략중상(謀略中傷)의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소망을 하늘에 두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 마음 빼앗길 수 없고, 그것으로 인해 헛수고할 수 없다고 생각해 날마다 자신을 채찍질하며 말씀을 붙들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자고 몸부림치며 믿음을 가꾸는 사람입니다.
2. 진리의 생명양식
예수님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요6:47)라고 하셨습니다. 이미 믿어지는 축복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영생을 보장받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요6:48-50)하셨습니다. 또한 51절에는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하십니다. 이 말씀은 사람의 이성으로 이해하기는 참으로 곤란합니다. 그렇기에 52절에서 유대인들은 “서로 다투어 가로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했습니다. 53-55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고 예수님이 답변하십니다.
56-57절에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하십니다. 이 말씀은 생명의 뿌리가 어디서부터 발원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요6:58)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은 자신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고 사람이 육신의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육체를 떼어 먹임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신 떡, 생명의 양식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살이 찢기고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 받게 하셨고 그 살을 영원히 사는 생명의 떡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인데 그 살이 하나님의 진리의 생명 말씀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39에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하셨습니다. 성경말씀대로 사는 것이 곧 영생한다는 것입니다.
3. 성령의 계시와 감동
목회하다 보면 어렵고 힘이 들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시키시면 어떠한 힘겨움을 감수하더라도 선교를 해왔습니다. 육체적 고통을 넘어서는 영적인 기쁨은 눈물겹도록 황송 무지하게 감사한 것뿐이었습니다. 곳곳에 예배당을 세우면서도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려 드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격했고 하나님은 벅찬 소망으로 이끌어 가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할 수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어디든지 주께서 오라시면 이 한 몸바쳐서라도 한 영혼을 구할 수 있다는 믿어지는 축복에 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오히려 영적인 소망과 넘치는 기대로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본문 말씀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어렵다고 수군거립니다. 그들은 육신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기에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고 물으십니다. 성령의 계시와 감동을 따라 영적인 신앙을 가지게 될 때 말씀이 걸림이 되지 않고 이해될 수 있습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신,구약성경의 모든 구절의 말씀이 걸림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62절은 예수님이 이전에 계시던 곳으로 올라가실 때 이 말씀들이 육신적인 차원이 아닌 영적인 차원의 교훈임이 깨달아 질것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가시면서 성령을 너희에게 보내서 그 성령이 너희를 깨닫게 하고 믿어지게 하고, 계시와 감동으로 역사하셔서 그때는 너희가 믿어지는 축복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는 말씀은 영적인 입장에서 말씀하셨는데 육신적인 차원에서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64절에서는 가룟유다를 믿어지는 축복을 받지 못한 자로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들 중에도 믿어 보려고 애를 쓰는데도 믿어지지 않고 회개의 눈물도 나오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가룟유다와 같이 믿어지는 축복에서 제외된 사람일 것입니다. 이러한 믿어지는 축복은 택한 자들에게만 주어집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 된 집입니다. 65절에 “또 가라사대 이러하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는 말씀처럼 교회에 왔으나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 아니면 예배를 드리고 믿으려 애를 써도 예수님을 알게 되지도, 믿게 되지도, 회개하게 되지 않고, 그저 예배당만 오고가다가 지옥에 갈 수 밖에 없습니다. 44절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하십니다. 예배당에 온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성도라야 예수님께 돌아온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보내주신 아버지께서는 자기 백성을 성령의 계시와 감동을 통해 영적 신앙으로 예수님을 알아보고 믿도록 역사하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알게 되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것을 믿게 되어, 회개와 신앙고백이 터져 나오는 것은 자신의 의지적인 노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요6:44-45) 아버지께서 택하신 백성, 교회로 이끌어내신 백성은 아버지께서 성령으로 가르치시고 믿어지게 역사하셔서 구원 얻게 되는 모든 과정에서 내 개인의 의지적인 노력이 아니라 나를 택하시고 이끌어 오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령의 계시와 감동하시는 역사로 내 믿음을 구원에 이르도록 가꾸어 오신 것임을 깨달을 때, 믿어지는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축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4. 영생의 말씀이 계심으로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 이후에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요6:66)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 그동안 온전한 믿음 없이 따라다니던 많은 사람들을 정리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등지고 돌아갔으니 스스로 지옥 길을 택한 것과 같지만 예수님 편에서는 아버지께서 이끌어 오시고 진리와 성령으로 가르치시어 예수님을 알아보게 하시고 믿어지게 역사하셔서 믿어지는 믿음의 복을 받은 사람들이라야 예수님이 마지막까지 책임지시고 다시 살리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에 그들만 예수님이 책임지고 구원을 보장하십니다. 그 외에 아무리 예배당을 오고가며 열심을 내어도 아버지께서 이끌어오지 않은 백성, 아버지 하나님의 성령이 그에게 깨달음과 체험, 감동을 주시지 않아 화인 맞은 심령처럼 깨달음도, 분별도, 감동도, 회개도 없고, 신앙고백도 없는 이들은 예배당에 자리만 차지하고 앉아 있을 뿐입니다.
67절에서 예수님은 열두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물으십니다. 이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합니다. 이것은 가장 올바른 믿음의 기준이 됩니다. 베드로가 믿은 신앙기준은 예수님께서 이루어주신 영생의 진리 교훈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진리로 오신 분임을 알고 믿는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정통보수신학은 바로 이 말씀과 같이 예수님께서 전해주신 영생의 말씀을 믿고 실천하는 데에서 우리는 영원하고 신령한 하늘의 소망을 가꿀 수 있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 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저는 열 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요6:70-71)하셨습니다.
가룟 유다는 믿어지는 축복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예수님의 제자의 신분으로 예수님을 가까이 모시고 예수님의 회계장부를 관리하기까지 했으나 불행하게도 믿어지는 믿음의 축복에 참예하지 못해서 예수님까지 팔아넘겨 결국은 지옥 길을 택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듣고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고 정리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믿는 믿음이 육신의 요구대로 세상조건을 원하는 믿음인지 아니면 영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을 믿는 믿음인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는 말씀을 잘 깨닫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진리의 교훈은 영적으로 영원히 살게 하시는 생명의 양식인데,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먹을 줄을 모르면 체해서 죽을 수도 있습니다.“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는 말씀처럼 같은 자리에 앉아서 같은 말씀을 들었는데, 그 말씀이 믿어지는 축복의 사람이 있고 믿어지지 않아 결국 지옥 길을 갈 수 밖에 없는 불행한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중에 어떤 경우에 속하는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믿어지는 것은 축복입니다. 아무리 믿으려고 해도 믿어지지 않는 것은 저주요 불행입니다. 육의 오감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보겠다고 하는 태도는 아주 어리석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물체가 아니고 신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반드시 신의 감동에 의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요6:45)는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을 경우, 하나님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이라야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는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에게는 성령으로 그에게 깨달음과 체험, 감동을 주셔서 예수님을 알아보고 믿을 수 있게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순교할 수 있기까지 믿는 믿음은 자의적 노력의 수단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축복으로 가꾸어주신 믿음의 결과입니다. 그렇기에 믿음 그 자체가 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6:16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시몬 베드로가 고백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는 사람에 의해 교육을 받았거나 지식을 바탕으로 예수님을 알아보게 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가르치심에 의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심을 알아보게 되는 것은 축복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이 간단한 고백은 역사 이래로 모든 택하신 백성들에게서 듣기를 소원했던 가장 정확하고 진실한 신앙고백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사랑하는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어지는 축복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성과 지각으로 이해되지 않아도 자꾸만 믿는 마음이 하나님께로 기울어져 가며 자신도 모르게 예수님에 대한 기대가 넘치고 소망의 확신이 생깁니다. 또한, 그는 예수님이 자신을 영원히 자기백성으로 구원해 주시고 그 영광의 자리에 동참시켜 주실 것을 기대하고 소망하는 가운데 믿게 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늘나라 갈 자격을 생각해 보니 아직도 죄가 많아 회개의 눈물이 터져 나오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육신의 유익보다는 의를 지키기 위하여 손해를 보더라도 내세의 소망을 믿음으로 살아가며 세상조건을 다 준다 해도 천국의 소망을 놓칠 수 없고 어떤 모략중상(謀略中傷)의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소망을 하늘에 두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 마음 빼앗길 수 없고, 그것으로 인해 헛수고할 수 없다고 생각해 날마다 자신을 채찍질하며 말씀을 붙들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자고 몸부림치며 믿음을 가꾸는 사람입니다.
2. 진리의 생명양식
예수님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요6:47)라고 하셨습니다. 이미 믿어지는 축복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영생을 보장받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요6:48-50)하셨습니다. 또한 51절에는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하십니다. 이 말씀은 사람의 이성으로 이해하기는 참으로 곤란합니다. 그렇기에 52절에서 유대인들은 “서로 다투어 가로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했습니다. 53-55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고 예수님이 답변하십니다.
56-57절에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하십니다. 이 말씀은 생명의 뿌리가 어디서부터 발원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요6:58)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은 자신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고 사람이 육신의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육체를 떼어 먹임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신 떡, 생명의 양식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살이 찢기고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 받게 하셨고 그 살을 영원히 사는 생명의 떡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인데 그 살이 하나님의 진리의 생명 말씀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39에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하셨습니다. 성경말씀대로 사는 것이 곧 영생한다는 것입니다.
3. 성령의 계시와 감동
목회하다 보면 어렵고 힘이 들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시키시면 어떠한 힘겨움을 감수하더라도 선교를 해왔습니다. 육체적 고통을 넘어서는 영적인 기쁨은 눈물겹도록 황송 무지하게 감사한 것뿐이었습니다. 곳곳에 예배당을 세우면서도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려 드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격했고 하나님은 벅찬 소망으로 이끌어 가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할 수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어디든지 주께서 오라시면 이 한 몸바쳐서라도 한 영혼을 구할 수 있다는 믿어지는 축복에 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오히려 영적인 소망과 넘치는 기대로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본문 말씀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어렵다고 수군거립니다. 그들은 육신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기에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고 물으십니다. 성령의 계시와 감동을 따라 영적인 신앙을 가지게 될 때 말씀이 걸림이 되지 않고 이해될 수 있습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신,구약성경의 모든 구절의 말씀이 걸림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62절은 예수님이 이전에 계시던 곳으로 올라가실 때 이 말씀들이 육신적인 차원이 아닌 영적인 차원의 교훈임이 깨달아 질것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가시면서 성령을 너희에게 보내서 그 성령이 너희를 깨닫게 하고 믿어지게 하고, 계시와 감동으로 역사하셔서 그때는 너희가 믿어지는 축복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는 말씀은 영적인 입장에서 말씀하셨는데 육신적인 차원에서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64절에서는 가룟유다를 믿어지는 축복을 받지 못한 자로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들 중에도 믿어 보려고 애를 쓰는데도 믿어지지 않고 회개의 눈물도 나오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가룟유다와 같이 믿어지는 축복에서 제외된 사람일 것입니다. 이러한 믿어지는 축복은 택한 자들에게만 주어집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 된 집입니다. 65절에 “또 가라사대 이러하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는 말씀처럼 교회에 왔으나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 아니면 예배를 드리고 믿으려 애를 써도 예수님을 알게 되지도, 믿게 되지도, 회개하게 되지 않고, 그저 예배당만 오고가다가 지옥에 갈 수 밖에 없습니다. 44절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하십니다. 예배당에 온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성도라야 예수님께 돌아온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보내주신 아버지께서는 자기 백성을 성령의 계시와 감동을 통해 영적 신앙으로 예수님을 알아보고 믿도록 역사하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알게 되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것을 믿게 되어, 회개와 신앙고백이 터져 나오는 것은 자신의 의지적인 노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요6:44-45) 아버지께서 택하신 백성, 교회로 이끌어내신 백성은 아버지께서 성령으로 가르치시고 믿어지게 역사하셔서 구원 얻게 되는 모든 과정에서 내 개인의 의지적인 노력이 아니라 나를 택하시고 이끌어 오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령의 계시와 감동하시는 역사로 내 믿음을 구원에 이르도록 가꾸어 오신 것임을 깨달을 때, 믿어지는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축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4. 영생의 말씀이 계심으로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 이후에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요6:66)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 그동안 온전한 믿음 없이 따라다니던 많은 사람들을 정리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등지고 돌아갔으니 스스로 지옥 길을 택한 것과 같지만 예수님 편에서는 아버지께서 이끌어 오시고 진리와 성령으로 가르치시어 예수님을 알아보게 하시고 믿어지게 역사하셔서 믿어지는 믿음의 복을 받은 사람들이라야 예수님이 마지막까지 책임지시고 다시 살리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에 그들만 예수님이 책임지고 구원을 보장하십니다. 그 외에 아무리 예배당을 오고가며 열심을 내어도 아버지께서 이끌어오지 않은 백성, 아버지 하나님의 성령이 그에게 깨달음과 체험, 감동을 주시지 않아 화인 맞은 심령처럼 깨달음도, 분별도, 감동도, 회개도 없고, 신앙고백도 없는 이들은 예배당에 자리만 차지하고 앉아 있을 뿐입니다.
67절에서 예수님은 열두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물으십니다. 이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합니다. 이것은 가장 올바른 믿음의 기준이 됩니다. 베드로가 믿은 신앙기준은 예수님께서 이루어주신 영생의 진리 교훈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진리로 오신 분임을 알고 믿는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정통보수신학은 바로 이 말씀과 같이 예수님께서 전해주신 영생의 말씀을 믿고 실천하는 데에서 우리는 영원하고 신령한 하늘의 소망을 가꿀 수 있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 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저는 열 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요6:70-71)하셨습니다.
가룟 유다는 믿어지는 축복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예수님의 제자의 신분으로 예수님을 가까이 모시고 예수님의 회계장부를 관리하기까지 했으나 불행하게도 믿어지는 믿음의 축복에 참예하지 못해서 예수님까지 팔아넘겨 결국은 지옥 길을 택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듣고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고 정리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믿는 믿음이 육신의 요구대로 세상조건을 원하는 믿음인지 아니면 영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을 믿는 믿음인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는 말씀을 잘 깨닫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진리의 교훈은 영적으로 영원히 살게 하시는 생명의 양식인데,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먹을 줄을 모르면 체해서 죽을 수도 있습니다.“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는 말씀처럼 같은 자리에 앉아서 같은 말씀을 들었는데, 그 말씀이 믿어지는 축복의 사람이 있고 믿어지지 않아 결국 지옥 길을 갈 수 밖에 없는 불행한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중에 어떤 경우에 속하는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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