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우 박사가 소천하셨다. 작년 말 췌장암 진단을 받고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은지 한 삼 개월쯤 되는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강영우 박사를 만나 본 적이 없지만 실명을 딛고 일어선 그의 입지전적인 삶과 장애를 지닌 한국인으로서 미국 정부 요직에 임명됐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신앙인으로서 살아온 자신의 삶에 대한 간증을 통해서 그를 알고 있다.
특별히 장애를 지닌 아버지로서 자녀들을 키우면서 겪어온 그의 이야기는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로서 큰 귀감이 되었다. 감수성이 예민한 틴에이저 시기를 지나는 아들이 앞을 보지 못하는 아버지에 대해 큰 부담을 느끼다가 그 아버지가 불을 켜지 않는 캄캄한 밤 자신의 침상에서 책을 읽어주는 남다른 모습을 보면서 “Voice in the Darkness” 즉 어둠 속의 목소리라는 에세이는 많은 아버지와 아들들의 마음에 적지 않은 감동을 주었다.
그리고 그런 어려움 속에서 자신 스스로 입지전적 삶을 살았을 뿐만 아니라 두 아들들을 모두 잘 키워낸 것은 한편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기조차 했던 분이다. 언젠가 한번 교회에도 모시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차일피일하다 이제 다시는 모실 수 없는 분이 되고 말았다.
강영우 박사는 그 치열한 삶의 여정을 통해서 우리 모두에게 큰 도전과 교훈을 많이 남겨 주었다. 먼저는 실명이라는 절대적인 절망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갔던 그 의지와 결단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조금만 어려움이 있어도 낙심하고 좌절하기 쉬운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있어서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올바른 뜻을 세우면 길이 열린다는 살아있는 불굴의 의지의 상징같은 존재였다.
또 그의 간증 테이프를 들으면서 느껴지는 것은 어려운 일생을 살아 왔으면서도 그가 삶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자세를 잃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 집회에서 간증을 하면서 마치 보는 사람처럼 이렇게 예배당에 가득 찬 사람들을 보니 마음이 흡족하다며 자신의 장애 조차도 유머로 받아들이는 여유를 보였던 기억이 있다. 그 한 마디에 장애인이라는 선입견으로 다소 무거웠던 좌중의 분위기가 일순간 환하게 변하는 듯 느껴졌다.
또 강영우 박사를 생각할 때마다 느껴지는 것은 가족의 소중함이다. 특별히 장애가 있는 그에게 시집을 와 한 평생 그의 눈이 되어 주었던 아내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감동적이다. 모르긴 해도 강영우 박사가 한 평생 실명이라는 장애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 부인의 헌신과 내조가 절대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강영우 박사는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별히 내가 설교에서도 몇 번 언급을 했듯이 강영우 박사가 삶의 마지막 순간에 그가 보여준 아름다운 모습은 지금까지의 그의 삶 못지 않게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도전을 주는 모습이었다. 암이라는 진단, 그것도 불과 수개월도 못 살 것이라는 진단을 받고 초연이 살아 오면서 많은 신세를 진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고 그리고 자신의 재산을 정리해서 후학들을 위한 장학기금으로 내어놓은 이런 모습들은 정말 드물고도 귀한 믿음의 사람의 모습이요 다른 많은 사람들 특히 성도들이 본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런 의미에서 강영우 박사가 우리 한국인이요 더 나아가 믿음의 사람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르겠다. 필경 주님의 마음도 흐뭇하실 것이다. 고인의 귀한 삶에 다시 한번 머리를 조아리며 나 자신도 또 우리 모든 성도들도 이 귀한 교훈들을 가슴에 새기고 살고 또 죽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