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대 마비와 고관절 신경 통증....목회 중 찾아온 고난, "목회자의 자기 관리" 박사논문으로 이어져
성전, 예배당, 새벽 기도, 중심의 신앙에서 영‧ 혼‧ 육의 전인적 신앙으로
많은 크리스천에게 신앙 여정에 잊지 못할 순간이 있다. 마치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여러분의 신앙 추억은 어느 해인가?”
좋은나무교회 신윤석 담임목사에게는 1992년이 바로 그해이다. 지난 11월, 신 목사는 TV 기독일보 간증 프로그램 ‘늘 새롭게’에 출연해 진행자 곽윤영 집사와 이성일 목사와 함께 자신의 신앙 여정 중 잊히지 않는 ‘응답하라 1992’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 시기를 기점으로 신 목사의 하나님과의 ‘소통’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금요철야기도회에서 들은 사도행전 2장 말씀, “초대교회 성도들이 물건을 서로 통용하였다”는 구절이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그 ‘통용’이 그에겐 ‘하나님과의 소통’의 의미로 다가왔다. 주님의 음성에 순종해 원치 않던 기도를 시작했을 때, 마음속 찌꺼기가 불에 타 사라지듯 주님과의 소통 장애물이 제거되는 경험을 했다.
다음은 신윤석 목사가 진행자들과 나눈 하나님과의 소통 이야기이다.

-좋은 나무란 어떤 나무일까요?
신윤석 목사: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듯이, 하나님께서 공급하시고 하나님께서 열매 맺게 하시는 나무가 좋은 나무라고 생각합니다.
-목사님께서는 처음부터 신앙 가정에서 자라셨나요?
신윤석 목사: 가정 이야기부터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교육자셨습니다. 이미 1992년에 별세하셨기 때문에 벌써 33년 전의 일입니다. 하지만 저에게 아버지는 청렴하고 정직하며, 세상을 올바른 가치관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신 분이셨습니다.
어머니 이야기를 드리자면, 어머니는 저희 가정의 초대 신앙이십니다. 어머니를 통해 아버지도 전도되셨고, 어머니의 믿음과 기도를 통해 온 가족은 물론 사촌, 육촌까지 복음으로 인도되었습니다. 한국 사회가 무속 신앙에 익숙한 환경이었기 때문에, 그런 신앙과 부딪히며 가족을 감화시키는 과정을 어릴 적부터 보아왔습니다. 그런 점에서 어머니는 저의 믿음에 가장 큰 영향을 주신 분입니다.
지금도 연로하신 연세에도 여전히 기도로 저를 붙들고 계십니다.
-목회의 길을 가야겠다고 느끼신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나요?
신윤석 목사: 모든 이야기는 ‘응답하라 1992’로 귀결됩니다. 1992년 1월 31일,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철야 기도 시간에 중생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대학부 수련회에 참여해 에베소서 말씀을 공부했는데, 수련회를 마치고 돌아온 후 제 안에는 더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영락교회 금요 철야기도회에 참석하게 되었고, 그날 설교 본문은 사도행전 2장이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물건을 서로 통용하였다’는 말씀을 듣는 순간, 그 ‘통용’이 제게는 ‘소통’으로 다가왔습니다. 나는 과연 하나님과 소통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마음을 파고들었습니다.
그때까지 제 기도는 제가 원하는 것을 나열하는 간구에 불과했습니다. 불편한 사람에 대해서는 기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잘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제 안에 있었습니다.
한 번도 저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을 향해 축복하거나 기도한 적이 없었는데, 기도를 시작하는데 제 안에 있던, 누군가를 향한 미움의 마음, 그리고 기도하지 않고 스킵해 버렸던 그 마음이, 주님 앞에 제 마음의 통로를 꽉 막고 있는 어둠 컴한 동굴처럼 느껴졌습니다.
주님이 주신 마음을 갖고, 그 이름을 부르며 “주님, 이 사람을 축복합니다. 주님이 사랑하시니 저도 사랑합니다”라고 기도하는 순간,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둡고 막혀 있던 동굴 같은 심령에 빛이 들어오듯, 마음이 열리고 제 마음을 어둡게 막고 있던 찌꺼기들이 불에 태운듯 사라지고, 마음 깊은곳까지 밝은 빛이 비췄습니다.
그날 밤 회개의 기도가 밤새 이어졌고,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했던 모든 죄를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날의 날짜를 아직도 잊지 않습니다. 1992년 1월 31일입니다.
- 그때 바로 목회자로 헌신하셨나요?
신윤석 목사: 사실 그보다 더 이른 시기에 하나님께 드린 서원이 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아버지께서 간경화와 당뇨 합병증으로 위독하셨고, 셋방에서 가정예배를 드리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바치오니 제 아버지를 살려 주십시오. 저희 가정에 아버지가 필요합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제 기도를 들으신 아버지가 회개의 기도를 드리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의 생명을 11년 연장해 주셨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 해가 바로 제가 대학을 졸업한 해였습니다.
- 그 11년 동안, 목회자의 길에 대한 고민은 없었나요?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는 영혼들을 찾아가, 기도하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말씀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대신, 신학교에가 보니까 정말 거룩한 신앙 훈련을 받은 친구들이 많았어요. 그것을 보면서 저는 오히려 자신감을 많이 잃었습니다.
그 말씀하신 것에 좀 더 제가 덧붙인다면, 경제적인 삶을 보면, 부자가 된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월말이면 통장에 몇 십불, 마이너스가 되어서 메꿔야 하는 생활이 지금까지 수십년이 되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것 때문에 불안해하거나 잠들지 못한 적은 없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채워 주시겠지’ 하면서, 하나님이 마르지 않는 기름 병으로 채워주시면서 지난 30여년의 시간을 여기까지 인도해 주셨기 때문에 경제적인 고난이라는 것은 말씀드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목회 중에는 성대 마비와 고관절 신경 통증이라는 고난을 겪었습니다. 성대에는 곰팡이 감염이 발생했고, 다리를 톱으로 켜는 것 같은 그런 순간적 통증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냥 그 자리에 누워서 통증이 가실 때 가만히 있어야 했습니다. 그로 인해 교회를 사임하고 긴 회복의 시간을 가져야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그것은 저에게는 고난이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기간 동안 제 몸을 돌보고 회복하게 하셨습니다.
이전의 저의 신앙의 중심이 성전, 예배당, 새벽 기도, 늘 앉아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이었다면, 이 기간을 통해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우리를 영, 혼, 육 전인적인 신앙으로 살아갈 것을 우리에게 허락하셨고, 또 그렇게 살기를 원하고 계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트레일을 걸으면서, 주님과 교재하고, 말씀이 생각나고, 하나님께서 제 기도제목들에, 지혜와 통찰력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 시간 두 시간 걷다 왔는데, 제 안에는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이 더 충만하고 제 입술, 제 영혼에 찬양이 넘쳐나고, 그리고 무엇인가 해야 될 일들이 정리가 되는 경험을 했다. 그 경험은 ‘목회자 자기 관리’라는 박사 논문으로 이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 고난의 시간을 통해 저에게 역사하신 거 있다면 전인적인 신앙으로 살아가는 목회를 하여라라는 마음을 주신 거 같습니다.
- 그런 고난이 닥치면 하나님께 원망도 하고, 목회를 그만하라는 뜻인가 하고 그냥 내려 놓았을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은 안 드셨어요?
지금 말씀하신 그런 고백을 제가 왜 안했겠어요? '하나님 여기까지 오기는 왔는데 이제 모든 거 다 내려놔야 되지 않겠습니까?'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판단해서, '목회 사명은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이제는 제 길을 가겠습니다.'라고 인생의 결정을 제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시면 순종하며 나아가려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그 기간 동안, '목회자의 자기 관리'라고 하는 목회학 박사 논문도 쓸 수 있었습니다. 육체적 고난을 겪으며, 전인적 신앙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이것에 대해 공부하며, 책을 읽고 있던 중, 교수님의 격려로 박사 논문을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또, 캘리포니아 필렌의 새벽별 교회에서 3년간 주일 설교 사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교회 시설 문제로, 2025년 6월 말로 주일 설교자의 자리를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2주, 3주가 지났을 때, 좋은나무교회에 설교자로 가게 되었고 공동회의 청빙을 통해 담임으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좋은 나무 교회에서 이루고 싶은 목회는 무엇입니까?
신윤석 목사: 저는 사랑의 목회를 하고 싶습니다. 모든 열매는 결국 사랑으로 맺히기 때문입니다. 성도 한 분 한 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정성껏 준비해 드리고, 어머니가 가족을 돌보듯 섬기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