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에만 유일하게 존재하는 새벽예배. 한국교회 부흥의 첫 번째 원동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척교회부터 대형교회에 이르기까지 성도들의 신앙성숙과 더불어 부흥을 소망하는 곳에는 새벽예배의 열기가 더욱 뜨겁다. 이에 기독일보는 남가주 한인교회들의 새벽 설교를 집중 조명하여 새벽제단에서만 내리는 특별한 은혜를 나누고 개교회를 넘어 지역과 미주 전역의 부흥을 함께 소망하고자 한다.

2011년 11월 26일 토요일
제목: 열매 맺는 성숙한 신앙
본문: 요한복음 15:1-17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이 된 성도들에게 더 성숙된 삶이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는 천국의 궁극적인 삶에 관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15:1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이 표현은 비유지만 예수님에 대해, 하나님에 대해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15:2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우리를 가지로 표현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거기에 중요한 것이 과실입니다. 이제 성숙단계에 들어가면서 맺는 것이 과실입니다. 자라게 하시는 성령이 내주하심으로 그분은 지금도 우리를 성숙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행동도 언어도 가면 갈수록 성숙된 삶을 살게 하기 위한 성령님의 강한 의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 안에서 계속 일하고 계십니다. 일정기간이 지나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성숙에 대한 가장 중요한 표징이 과실입니다. 이 과실이 무엇을 말합니까? 하반절에 보면 서로 사랑하게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심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두개인,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을 지키고 십일조를 바치고 말씀을 지키려고 했지만 그들을 가리켜 성숙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종교 생활을 오래했지만 연수에 의해서 성숙하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요3장에 나오는 니고데모도 율법으로는 흠이 없었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도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접붙임이 없었습니다. 그가 밤에 예수님을 만났을 때 니고데모는 거듭나려면 다시 어머니 모태에 들어 갔다 나와야 하냐고 예수님께 묻습니다.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동문서답하고 있습니다. 그는 외형적으로는 성숙된 자입니다. 바리새인으로서, 유대인의 관원으로서 세상에서 존경받던 자였습니다. 외형적으로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외형적인 조건들이 신앙의 성숙의 기준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요15장은 신앙의 성숙에 대한 기준을 말합니다. 이게 바로 과실입니다. 가장 중요한 사명은 과실을 맺는 것입니다. 만약 과실을 맺지 못한다면 주인은 어떻게 합니까 오늘 본문에서는 “제하여 버린다”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한다는 열매는 무엇인가? 우리의 삶으로, 행동으로 열매 맺어야 합니다.

사랑에 대한 구체적인 열매를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에서 믿어 반드시 과실을 맺어야 합니다. 과실을 많이 맺으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고 하십니다. 생명되신 그리스도가 우리를 통해서 열매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그런데 중요한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성숙에 대한 열매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맺을 수 있습니다. 주님을 떠나서도 봉사하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친구를 위해서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과실은 아닙니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도 신의와 의리, 희생의 삶을 사는 이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주님은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떠나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 속에서 하는 봉사, 구제, 선교는 바리새인과 같은 신앙의 모습입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자기 의 속에 빠져서 정죄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사람으로 끝나지 않아야 합니다. 반드시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하심과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먼저는 자기를 부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죄인 중에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15: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흔적이 없이 사라집니다. 그리스도 밖의 삶은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바리새인처럼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 앞에서 말씀을 듣는 바리새인은 자기의 속 사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두꺼워진 껍질 때문입니다. 이 껍질을 벗는 것이 정말 힘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벌거벗고 주 앞에 서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바울 역시 주님을 만나기 전에 많은 옷을 입고 살았습니다. 그는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었습니다. 613개의 율법의 옷을 입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주님 앞에 그는 벌거벗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 분 앞에 자신을 비춰보니 너무 부족한 것입니다.

15: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과실을 많이 맺으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리고 내 제자가 되리라고 말합니다. 제자가 쉽다고 우린 말합니다. 사랑하는 주님 앞에 벌거벗은 모습으로 나가야 합니다. 주님은 “너희 안에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 살 것인가? 나를 따르는 삶이 무엇인가”를 가르치셨습니다. 너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이 땅에 생애를 마치는 날까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라나야 합니다. 그것이 과실입니다. 그러므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15: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신 것처럼”입니다. 그런데 그 삶이 어떠했습니까? 이 땅에서 배척받으시고 온갖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세상의 사랑과 다른 것입니다. 사랑의 행위가 고난이었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아버지의 사랑을 노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인도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지금도 우리 안에서 확정되어집니다.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확정되어집니다.

5:14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주님은 친구가 되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지 않는다면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관계가 되어야 진정한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주님과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작은 자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공궤하는 것입니다. 한 나무의 존재를 결정짓는 것은 씨앗입니다.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르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가지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반드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의 그 이전의 삶을 다 부인합니다. 내 안에 이제는 그리스도가 사신 것입니다. 이전의 나는 십자가에 못박힌 것입니다. 내가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육체와의 싸움입니다. 날마다 육체를 쳐서 복종시키겠다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그 육체를 쳐서 나를 죽이는만큼 더 큰 기쁨을 얻게 됩니다. 그는 감옥에서도 기쁨을 노래했습니다.

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과실을 많이 맺는 것입니다 사랑의 열매를 맺으면 하나님의 나라의 열매를 맺습니다. 사랑이란 과실의 열매는 내 주변에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15: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로라

17절은 결론입니다. 성도들은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주님으로 말미암아 사랑으로 말미암아 시작된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심으로 그 사랑으로 우리의 삶을 통해서 사랑이 실천되어야 합니다. 작은 자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우린 가지입니다. 예수님은 농부이신 것입니다. 우린 예수님의 참 제자, 참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를 회복하며 주께 영광 돌리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다음은 짧은 인터뷰.

-교회가 과거 어려움에 처했는데.

감사하게 사역하려고 한다. 어려운 상황이 없었으면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에 실패했을 것이다. 감사함으로 목회한다. 지금도 우리는 치유받고 있다. 목회자에게 어려운 것이 자존심이다. 그 싸움에서 이겨야 승리자가 된다. 나에게 자존심이 그렇게 큰지 몰랐다. 내 나름의 성공의 기준이 있었다. 그것이 성령 안에서 성공적인 것이 아니라 비교의식 속에 있는 기준이었다.

이런 비교 의식이 형제들 간의 투쟁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교회와 교회의 경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나를 포함한 이 시대의 교계의 현실을 볼 때 가슴이 아프다. 주님의 눈으로 볼 때는 어떨까. 영혼을 끌어 안고 사랑하고 주님의 심장으로 동역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자기자존심을 버리고 성령의 음성을 듣기가 쉽지 않을텐데.

다윗이 양을 치는 심정으로 가려고 한다.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본다. 오늘날의 목회자에게 주님이 내려놓으라고 말씀하신다면 우리는 어떨까? 모세는 울면서 내려 놓았다. 성령의 사람이 아니면 못한다. 오늘의 목회자에게 그 음성이 들릴 때 얼마나 순종할 수 있을까?

-요즘 교회 분위기는 어떤가?

성도들이 1년이 지나면서 자유함이 생겼다. 그리스도의 안의 삶이 무엇인지를 하나씩 찾아가는 것이다. 주님도 내 설교를 그렇게 끌고 가신다. 자유함과 평안이 있다. 성도들 간의 다툼이 사라졌다. 장년 200여명이 모이는데 기쁘고 즐겁고 좋다. 자유함을 맛보게 하셔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