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돌아가셨지만, 한국전력회사에서 전국신우회 회장을 하시던 한 장로님의 명함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나를 잊는 것은 아주 작은 것을 잊어 버리는 것입니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잊는 것은 전부를 잊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주로 말미암고, 모든 것이 주의 것이고, 주에게로 모든 것이 돌아감이 사실이라면, 진정 예수 그리스도는 만유의 예수님이요, 그 예수님 없이는 모든 것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창조주요, 섭리주요, 구속주요, 심판주이신 예수님을 잃어버린다면, 그 인생이 아무리 부요하더라도, 그는 허무를 마시고 무의미를 먹는 것과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대는 예수님 없이 살려는 세대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지 마음에 관한 일이요, 사사로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분을 공적인 영역에서 우리 삶의 의미있는 주권자로서 인정하지 않습니다.
개신교의 기반 위에 세워진 독일과 영국, 그리고 스코틀랜드와 네덜란드에서도 살아계신 예수님의 통치권은 종종 무시되기 일쑤입니다. 청교도의 전통에 세워진 미국에서도 그 기초는 빠르게 침식되고 있습니다.
교회는 중요한 진리의 문제에 있어서 동일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동성애 목회자들이 안수를 받는 상황은 이제 성공회, 그리고 일부 대표적 장로교회까지 침투하고 있고, 이러한 상황은 점차 확산되어가고 있습니다.
소수자에 대한 관용(tolerance)은 미덕이지만, 그것이 진리에 대한 폐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더욱이 기독교인의 공동언어로서의 성경 교육은 점차 약화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앙의 퇴화 혹은 퇴행을 역전시키는 것은 성도들의 갱신과 부흥이 없이는 안됩니다. 교회는 선지자적인 메시지를 전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여야 합니다. 불경기의 원인이 된 월가의 탐욕을 지적하지 못하고, 거짓 풍요에 미혹되어 거품 마시기를 계속한 세상을 나무라고 바로 가르치지 못한 영적인 지도자들이 회개하여야 합니다.
이제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노아의 가족처럼, 아브라함의 가족처럼, 이 시대의 “남은 자”가 되어 우리 교회와 다른 이민교회, 그리고 미국교회와 세계교회를 위하여 기도할 때입니다.
모세는 40일동안 시내산에 머물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엘리야는 40일동안을 걸어 시내산에 이르렀고 그곳에서 다시 소명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40일동안 금식하시면서 금식 후에 사탄의 유혹을 말씀으로 무너뜨렸습니다. 40일 기도는 위기를 기회로 바꿉니다. 기도하는 공동체와 개인은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나고 세상의 빛이 됩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