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한인이 5천명 정도 되는 지역에서 한인 목사로 목회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풍요와는 거리가 있는 곳에서 아픔받는 성도들을 목회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9년 전 빅토빌에 예수마음교회를 개척해 시무하고 있는 김성일 목사. 남가주에 빅토빌이란 도시가 있는지도 몰랐다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그곳에 교회를 개척하게 된 그의 목회 이야기를 들어 본다.


그의 목회 철학을 한 가지로 요약하면 섬김이다. 빌2:5의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는 말씀에서 교회 이름이 나왔듯이 그의 목회 철학도 이 구절에서 나왔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 곧 낮아짐과 섬김의 마음이 목회의 첫째, 둘째, 셋째라고 믿는다. 그는 “교회 성장, 세계 선교, 지역 사회 봉사, 다 좋지만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하느냐 아니냐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섬김을 실천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보여 주는 것이 가장 강력한 전도이고 복음 전파라는 소신을 갖고 있다. 또 섬김을 위해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이 목회자의 본분이라고 믿고 있다.


그는 자신이 하는 목회의 모든 분야가 다 섬김이길 기도하고 있다. 그는 샌버다니노카운티한인교회협의회 회장, 남가주기독교교회협의회 부회장, 남가주교육사역자회 자문위원, 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 로스앤젤레스노회 노회장, 국제개혁대학교 신대원 총동문회 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빅토밸리 한인목사회 회장을 역임했다.


국제개혁대학교 신대원을 졸업하고 1994년 목사로 안수받은 후, 서울 충현교회, 하시엔다 임마누엘교회, 라성 빌라델비아 교회 등을 섬겼다. 목회 외에도 크로스웨이 성경연구 목회자 세미나 강사, 둘로스 미디어선교회 디렉터, 어깨동무사역원 서부지역 책임자, 월드미션대, 국제개혁대학교 실천신학 교수, 영상예배 및 미디어사역 목회자 세미나 강사 등도 맡고 있다.

-목사님께서 목회하시는 빅토빌은 어떤 도시인지부터 먼저 설명해 주십시오.


빅토빌(Victorville)은 흔히 Victor와 Village가 합쳐진 단어라고들 설명합니다. 즉 승리자의 마을이란 뜻입니다. 이름처럼 이 동네가 좋다고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적으로 이곳은 수많은 인디언들이 피를 흘린 곳입니다. 백인의 입장에서 보면 승리자의 마을이지만 인디언들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의 무덤인 셈입니다. 이런 접근과 달리 어떤 분들은 이 마을의 설립자의 이름이 빅터였기에 빅토빌이라고 부른다고 하기도 합니다.


빅토빌에서 왼쪽으로 가면 리노, 오른쪽으로 가면 라스베가스가 있습니다. 이쪽으로 가도 도박, 저쪽으로 가도 도박이란 이야기죠. 리노로 가서 도박을 할지, 라스베가스로 가서 도박을 할지 고민하다 생긴 도시가 빅토빌이라고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사람들 안에 한번에 뭔가 끝장내려는 성향이 있는 도시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 환경이 목회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일단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는 한인의 수가 급격히 늘었다가 불황과 함께 최근에는 그 수가 감소하고 있습니다. 빅토빌이 원래 부동산의 영향을 크게 받는 곳 중 하나인데 저희가 사용하고 있는 건물도 한 때는 36만불 나가다 현재는 5만불 정도로 크게 감소했습니다. 그 낙폭이 타 지역에 비해 상당하죠.


또 이 지역은 차세대에 대한 비전이 낮은 곳이라 볼 수 있습니다. 대학진학율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진 못하지만 0.2-0.3% 정도라는 낮은 진학율은 이 문제의 단면을 보여 줍니다. 매년 4천5백여명이 고등학교를 졸업해야 하는데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는 학생은 1천5백명 정도이고 3천명은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합니다.


미 전국에서 살인율, 강간율, 영아 유기율이 높은 도시이기도 합니다. 한인들의 경우 교육열이 높기로 유명하지만, 생계 문제로 인해 자녀 교육에 최선을 다하기 어려운 곳이기도 합니다. 한인의 수가 적으므로 타인종과 결혼한 가정이 매우 많습니다.


또 취직을 할 만한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예, LA와 같은 인근 큰 도시로 통근하는 사람도 있고 다이아몬드바나 란초쿠카몽가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과거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에는 크게 발전하는 것 같았지만 지금은 그로 인해 눈물을 흘리는 분들도 있습니다. 한인들의 경우는 자영업이나 전문직종에 계신 분들이 많아서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입니다.


제가 이곳에서 목회를 시작할 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그들을 섬기고 또 그들이 예수님을 마음을 갖도록 하라”라는 비전을 주셨습니다. 이곳에서 목회한지 9년 4개월이 되었는데 이 기간동안 저는 이곳의 상처받은 사람들을 섬기는 일을 감당해 왔습니다.


-그런 곳에서 목회하시는 데에 무엇이 가장 필요하시던가요?


생각입니다. 저는 교육 목회를 오래 했고 영상, 미디어, 인터넷 분야에 있어서도 오랫동안 사역했습니다. 그래서 김성일 목사라고 하면 미디어 사역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아직도 있습니다.


저는 1996년부터 이쪽 사역을 했는데 그즈음 “헤븐스 게이트(Heaven’s Gate)”라는 웹사이트를 통해 전파된 한 사교집단의 주장으로 인해 47명이 집단 자살한 사건을 보며 “인터넷이 사람을 정말 죽일 수도 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반대로 “인터넷이 사람을 살릴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들이 목회에 필요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목회라고 하면 열심히 전도하고 설교하는 것만을 생각하는데 저는 깊은 생각과 사고가 목회에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예로 우리 교회 성도는 10명 중 8명이 외국인과 결혼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교회 한글학교는 한인 2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국제결혼한 가정에서 태어나 한국을 잘 모르는 어린이들, 혹은 외국 어린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우리 빅토빌에서 보는 대한민국은 LA에서 보는 대한민국과는 전혀 다릅니다. 몇 년 전만 해도 한국에 대한 인식이라곤 6.25가 전부였습니다. 그런 사고 방식을 뒤엎고 한국과 한글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주일학교나 타민족 선교나 이 모든 것들이 교회가 해야 하니까 한다는 것이 아니라 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생각하는 목회가 빅토빌에서는 필요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계 연합사역에도 나서게 됐고 멕시코의 인디오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선교 사역도 하게 되었습니다. 9.11이 터졌을 때에는 시의회 모임에 가서 기도회도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그 생각하는 목회란 것이 목사님의 비전과도 잘 맞았겠군요.


그렇습니다. 생각을 왜 하는 것일까요? 섬기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성경적 지식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예수님처럼 섬기는 것입니다. 빅토빌에서 섬기는 동안 산전, 수전, 공중전 다 해 봤습니다. 목회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해 봤습니다.


무엇이 목회일까? 그런데 그 답은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목회였습니다. 제가 뭘 하고 싶다고 하는게 목회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는 것이 목회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레위기 3장의 소제에 관한 말씀을 답으로 주셨습니다. 소제는 곡물을 고운 가루로 부수어 그것을 기름에 반죽한 후, 유황에 태워 드리는 제사입니다. “지금 저에게 곡물 장사를 하란 것인가요”라는 엉뚱한 질문을 드리자, 성령께서 아예 해답까지 주셨습니다. 바로 “네가 가진 고정관념을 부수어라. ‘목회는 이렇게 한다, 이런 것이 목회다’라고 하는 고정관념을 깨고 성령이 반죽하는대로 빚어져라. 네가 할 일은 기도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깨달음을 얻은 후, 목회함에 있어서 편안함을 얻었습니다. 만약 주님께서 “목회는 성도를 1천명 전도하는 것이다”라든지 “교회 성도 수를 얼마나 부흥시키는 것이다”라고 했다면 저는 진작 말라 죽었을 것입니다. 저는 자유함을 얻은 후,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했더니 바로 예수님의 마음으로 섬겨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그런 주장에는 이견을 가진 분들도 많을 듯 합니다.


물론입니다. 저는 보수적인 신학을 가진 KAPC 소속 목사입니다. 그리고 교리에 있어서라면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러한 교리보다 섬김을 더 강조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설교 강단에서 무슨 설교를 했느냐, 무슨 교리를 설파했느냐보다 그런 설교를 하고 내려온 제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느냐에 더 관심을 갖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말씀을 하셨느냐는 더할 수 없이 중요한 것이지만 우리에겐 예수님이 어떤 삶을 사셨는가에 대한 관심도 당연히 있습니다. 그분의 구속 사역 역시도 많은 부분에서 우리에게 그분의 삶을 보여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 사건도 교리가 아니라 그분의 희생과 섬김의 삶 자체였습니다. 우리 목사들이 그렇게 살 때, 성도들도 그런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런 삶을 살지 않으면 성도들도 그런 삶을 살지 못합니다.


일전에 어떤 분이 저보고 한인회장에 출마하라고도 했습니다. 빅토빌 지역 한인상공회의소 고문을 맡고 있던 저는 “비즈니스도 모르는 제가 상공회의소 고문까지는 해도 한인회장은 못합니다”라고 하면 “한인회장이 뭐하는 자리입니까? 섬기는 자리 아닙니까? 한인회장을 왜 못하십니까”라고 되묻습니다. 아직도 제 고정관념을 못 깬 것이지요. 목사의 일과 평신도의 일이 나뉜 것입니다. 목사들이 평신도의 수준까지 내려 가지 못한다면 평신도들도 목사의 수준까지 올라오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인간의 수준까지 내려 오신 것이고 그 덕에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림을 얻을 수 있게 되지 않았습니까?


난 목사니까 대접받고 누려야 한다고요? 아닙니다. 거지와 나사로의 비유를 보면, 목사들이 이 땅에서 많이 누리면 예수님께 받을 상이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못박혀 돌아가셨는데 예수님을 따른다는 우리는 목사라고 목에 힘주어선 안됩니다. 우리가 바리새인화 되어 가면 안됩니다.


-그 섬김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교회에서 나타나고 있나요?


우리 교회는 홈리스들을 섬기는 일을 합니다. 부모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워 자녀들을 유기하는 일이 빈번한 우리 도시에서 이들을 돌보아 줄 위탁 가정을 연결해 주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고통에 빠진 사람을 찾아 갔던 것처럼 우리도 찾아 가는 일을 하려 합니다. 이것이 목회의 외적인 것 같지만 사실 목회와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 교회는 한 해의 3개월을 해외 선교에 투자합니다. 그런데 선교지에서의 섬김을 통해 남은 9개월 목회할 힘을 얻습니다. 저는 9개월 목회하고 남는 힘으로 선교를 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3개월 선교하며 받은 은혜로 남은 9개월을 목회하며 빅토빌을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목회자가 목사님의 목회관에 동의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제 목회관을 갖고 있지만 이것이 모든 사람에게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바울이 있고 바나바가 있습니다. 저는 바나바를 좋아합니다. 저 구석에 박혀 있던 바울을 끄집어 내서 세워 주고, 나중에는 싸워 헤어지기도 했지만 그런 바울까지도 품었던 바나바입니다.


저는 섬김의 사역이 곧 바나바의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도, 선지자, 교사가 있듯이, 모든 사람들에게 맡겨진 일이 다른 것이 당연합니다.


다만, 목회가 무엇인가라고 하나님이 물으신다면 그 근본은 같을 것입니다. 중세시대처럼 자신만의 성을 만들고 그곳의 영주가 되어 그곳으로 사람들을 끌어 들이고 싸우는 모습은 사라져야겠지만요.


-미디어 사역에도 상당히 조예가 깊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회와 미디어에 관해서도 한 말씀해 주신다면요.


조나단 에드워즈가 지옥에 관해 설교할 때, 그것을 듣는 이들이 마치 지옥에 빠질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며 울부짖고 교회의 기둥을 붙잡았다고 합니다. 현대 목회자들의 영성이 그와 비슷하다면 미디어 사역이 굳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의 영성이 그것을 따라 갈 수 없으므로 이것을 보조해 주는 수단으로 미디어를 사용할 수 있고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가 천국에 관해 가르칠 때, 예수님이 말씀해 주셨던 것처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예수님처럼 정확한 비유로 설명할 수 없다면 미디어를 이용하는 것이 청중들로 하여금 더 잘 기억하고 알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현 시대에 이렇게 발전한 미디어와 인터넷도 모두 우리 성도들을 섬기는 도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