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도착해서 3일의 일정이 잡혔습니다. 디아스포라 세계 선교 대회 마지막 날을 잘 마무리하고 첫날을 보냈습니다. 세번째 날은 주일 예배 설교가 두 군데 잡혔습니다. 둘째날 토요일 저녁에는 버지니아에서 함께 신앙생활하다가 한국에 돌아간 가족들 몇 집이 함께 모이기로 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원래 하이패밀리 송길원 목사님이 계획했던 일정이 있었지만 날씨 관계로 일정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한국에는 한달 내내 하루도 걸르지 않고 비가 왔기 때문입니다.
송길원 목사님 아파트에서 금요일 밤을 보내고 토요일 아침 일찍 사모님이 차려 주신 아침식사를 한 후 바쁜 사역 일정이 시작된 두 분과 헤어졌습니다. 양재동 하이패밀리 센터에서 가까운 지하철 역으로 같습니다. 지하철을 갈아 타고 수원을 지나 1호선 끝자락에 있는 범계까지 갔습니다. 떠나면서 한국에 와 계신 박증려 집사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지난 해에 가족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고 한국에 방문해서 모든 형제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돌아온 박집사님입니다. 오빠들 중에 둘째 오빠와 올케가 결신하지 못해서 한국 방문 후에도 늘 안타깝게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마침 둘째 오빠가 미국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도착하는 즉시 감기 몸살로 고생하셨기 때문에 짧은 미국 체류 기간에 복음을 전하려는 동생의 마음이 더욱 더 안타까웠습니다. 몇번 예배를 참석하시고 어느날 동생이 전해 주는 복음을 듣고 감격적으로 주님을 영접하고 믿기로 결단하셨습니다. 함께 기도했던 믿음의 식구들에게도 얼마나 큰 감격이었는지 모릅니다. 그 후 한국에 돌아가신 둘째 오빠는 몇달 후 암 판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고 평생 알지 못했던 기쁨을 발견하고 이제 강원도 고향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의미있고 보람있는 일을 해 보려고 꿈에 부풀어 있던 상황에 암 선고를 받은 것입니다. 오빠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했던 동생은 언니와 함께 한국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마침 짧은 한국 일정이 겹쳐서 꼭 직접 만나보고 기도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원래 강원도 고향에 계셨더라면 엄두를 못 냈을 터인데 마침 월요일 서울에서 2차 약물치료 일정이 잡혀서 금요일에 수원에서 사시는 형님 댁에 오신 것입니다. 태평양 건너 강원도와 경기도를 연결해서 타이밍이 맞은 것은 당연히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이라고 믿고 범계 역에 도착했습니다. 전철 역에서 맞아 주시는 박 집사님의 얼굴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큰 오빠를 소개해 주시고 집으로 가는 길에서 작은 올케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그 며칠 사이에 다시 복음을 제시하게 되었고 올케는 크게 울면서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했다는 이야기를 신나게 들려 주셨습니다.
집에 들어가니 형제들이 모두 같이 모였습니다. 강원도에서 가져온 토종 재료로 준비한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암 치료를 받고 있는 본인은 계속해서 절망적인 이야기만 하고 계셨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원하시는 대로 수명을 연장해 달라고 기도하시도록 권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손을 얹고 안수기도를 했습니다. 고쳐주시기를 구하면서 남은 인생의 하루 하루가 복되게 해달라고 구했습니다. 기도를 아멘으로 마치자 둘째 오빠되시는 분이 큰 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병 나아서 미국가서 목사님을 꼭 뵙겠습니다." 함께 기도했던 형님과 동생들이 할렐루야 외치면서 기뻐했습니다. 전철역까지 배웅하면서 역 앞에서 다시 병 나아서 보게 될 것이라고 확신을 가지고 말씀하셨습니다.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송길원 목사님이 어디 갔다 왔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목사 노릇하고 왔다고 했습니다. 설교하고, 집회 인도하고, 이런 저런 선교 활동에 동참하는 것은 사실 목사 노릇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양을 찾아 가서 만나고 병 낫기를 구하고 마음을 위로하고 말씀으로 양을 먹이는 것이 바로 목사 노릇하는 것입니다. 짧은 일정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목사 노릇 일정을 주님께서 직접 잡아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