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무용 시작 한 시간 전, 박서옥 예술감독은 분주하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찾아간 날은 ‘기도와 찬양’과 ‘룻기말씀’을 오로지 무용으로만 예배드리는 무대를 선보이기 때문에 신경이 바짝 곤두서 있었다. 항상 주님께 온전한 찬양을, 그래서 온 관객에게 진심이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빈틈없이 준비한다. 박 감독은 날렵한 눈매로 요목조목 빈틈을 집어낸다. “스크린은 그대로 하시고, 아직 어두우면 안되는데…… 불 좀 켜주세요!”

박서옥 예술총감독은 모든 공연의 안무를 혼자 짠다. 의상과 음악도 대부분 그녀가 진행한다. 따라서 매회 무대에 올리는 공연은 그녀의 인생에서 나온 경배와 찬양이다. 그녀의 춤 인생은 50년이 훌쩍 넘었고, 그 중 오직 복음을 위한 예배무용을 시작한지는 10여년이다.

박 감독은 작품을 만들 때마다 세속 예술과는 근본적으로 차이를 두고자, 자신의 모든 예술의 주권이 하나님께 속하도록 기도한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주신 영감이 주장이 아닌 고백이 되어기를 바라며, 그 고백 가운데 나의 연약함과 하나님의 거룩함이 드러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품을 만들어왔다”고 고백한다. 그렇게 생각과 마음이 늘 하나님을 향하다 보니 결국 표정도 춤사위도 감정도 바뀌게 되었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제한되지 않고 드러나는 것을 경험했다고 한다. 이것이 세속 무용과 예배 무용의 차이라고.

▲지난 5월 29일, 경기도 안산 꿈의교회에서 열린 예배무용 “가시는 곳에, 머무시는 곳에”에서 박서옥 감독의 솔로무대 한 장면.

한국기독교무용예술원 예술감독으로 섬기고 있는 박서옥 감독은 춤을 정말 사랑한다. 그 동안 단 한 번도 춤을 시작한 것을 후회해 본 적이 없고, 쉬지 않고 오직 한 길만 왔다고 한다. 아무 부족한 것이 없는 가정에서 10살부터 무용을 시작한 그녀는 서울예술고를 졸업하고 한양대 무용과를 전공, 민속예술단에 등단하는 등 순탄한 예술인의 삶을 살았다. 그녀는 “고등학교 교사로 10년, 대학 강사로 23년을 하나님도 모른 채 잘난 척하며 살았다”고 지난날을 회상한다.

그러던 그녀가 예수를 영접한 계기는 인생에서 처음 맛본 고난 때문이었다. 남편의 사업 부도에다 대학 교수의 꿈이 깨지는 등 좌절을 겪고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위로와 희망을 경험하게 됐던 것. 그리고 그 이후부터 그녀는 지금까지 예수님과 깊은 사랑에 빠져 이 자리까지 서게 됐다.

2006년 한국기독교무용예술원을 창단할 당시에는 연습실이 없어 무용도구들을 들고 다니며 전전해야 했다. 그러다 2008년 안산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제자의 연습실을 본 순간, 쾌적하고 넓은 그곳이 마음에 쏙 들어 속으로 “하나님, 이 곳 같은 연습실 주세요”하고 나즈막히 기도했다. 그런데 얼마 후, 제자가 이민 가게 되었다며 연습실을 그녀에게 인수해줬다.

남편이 다리를 절단할지도 모르는 대수술 중에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의연히 유럽연합한인행사의 무대에 선 일도 있었다. 우즈베키스탄 트리키스탄 극장에서 열린 한국예술축제도 이곳엔 무슬림과 무신론자가 많아 항의가 들어올테니 기독무용은 안된다는 총연합회장의 말에도 굴하지 않고, 대기실에서 눈물로 기도한 끝에 무대를 선보이기도 했다. 하나님의 오묘한 손길로 크리스천 사회자가 사회를 보았고, 관객들은 앵콜을 신청했다..

그녀의 무용단의 행보는 앞으로도 끊이지 않는다. 내년에는 미국 LA, 뉴저지, 워싱턴의 순회공연이 잡혀있다. 하지만 화려한 행보 이면에 놀라운 사실이 있다. 단원 대부분이 가정주부이면서 교회에서 집사, 권사와 사모의 직분으로 섬기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 게다가 꾸준히 무용연습을 하니 도무지 시간이 나지도 않을텐데, 무용단 순회비용 마련을 위해 우유배달·식당일 등 돈벌이까지 나선다. 무용단 순회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것.

무대 안에서 고상한 춤사위와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그녀들은 사실, 무대 밖에서는 어머니와 아내의 역할을 해내고, 교회에서 봉사하며, 하나님과 호흡하는 예배무용에 대한 열정으로 돈도 버는 일을 해왔던 것이다.

지난 5월 29일 저녁 꿈의교회에서 진행된 룻기를 소재로 한 『가시는 곳에, 머무시는 곳에』는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로 시작하여 박서옥 감독의 솔로 무대인 ‘사도신경’,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일어나 빛을 발하라!’, ‘메시야 중에서(44번 할렐루야)’, ‘할렐루야! 왕께 영광을’, ‘반석 반석’ 등의 공연으로 우리나라 전통음악과 무용을 선보였다. 그리고 박서옥 예술감독의 5분 간증과 함께 구약성서 ‘룻기’의 무대가 펼쳐졌다.

성경에서 여인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다. 그 시대 여자는 종과 같이 천한 신분이었다. 박 감독 자신이 여자라서 성경 속 여인들의 신앙을 유심히 관찰하였던 것 같다. 그 중에서 ‘룻’을 선택했는데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기록이다. 여럿이 줄지어 어디론가 떠나는데, 그 중 한 여인이 어떤 이의 손에 이끌려 하염없이 땅만 보며 간다.


유다 베들레헴에 심한 흉년이 들어 모압 지방으로 떠나는 엘리엘렉과 아내와 두 아들이 이 무대의 첫 장면이었던 것이다. 그 가족은 모압지방에 정착하고 두 며느리를 맞이하는데, 얼마 가지 않아 엘리엘렉과 그의 두 아들이 죽는 불행을 맞이한다. 그래서 죽은 엘리엘렉의 아내 룻과 시어머니인 나오미, 둘만 남는다. 나오미는 룻에게 입맞춤을 하고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떠나는데, 효심이 지극한 룻은 나오미를 따라 나선다.

룻은 시어머니를 봉양하고자 밭에 나아가 이삭을 줍는데 밭주인인 보아스를 만난다. 보아스는 일꾼들에게 룻이 이삭을 줍도록 허락하며 보태주라고 한다. 그리고 나오미는 룻을 단장시켜 보리타작 후, 보아스가 있는 곳으로 가서 발치에 누울 것을 청하고, 나오미의 뜻대로 둘은 마음이 맞아 결혼한다. 군중들의 축하가 이어지고 둘은 다윗의 할아버지인 ‘오벳’을 낳아 가문 대대로 그리스도의 계보를 잇는, 위대한 축복이 임함을 알리는 경쾌한 무대로 막을 내렸다.

박 감독은 “룻기를 읽어 내려가는데 나오미를 봉양하는 룻의 모습이 춤사위로 그려졌다”며 “이방 여인 룻의 효심과 믿음으로 인해 예수의 족보가 나올 수 있었고 이것을 춤으로 표현하여 하나님께 나아가고 싶었다”고 말한다. 동작이 하나하나가 성령께 의지한 것이라서 만들 당시 감동에 벅차 춤추는 운 적도 있다고 고백한다.

‘내가 만난 예수님’이라는 제목의 기도무용은 듣는 이가 자연스레 주님께 기도하도록 안내한다. “내 안에 부패한 모든 것을 버리게 하소서/ 내 안에 금송아지와 높은 의자에 눈을 다 감고 포기하게 하소서/ 신명나게 두들겨 맞고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죄를 토해내게 하소서/ 텅 빈 가슴처럼 둥, 둥, 둥, 해 질 때까지 울리는 북이 되어 주님을 찬양하며 춤추게 하소서/ 사랑하는 내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이제 평안하라.”

꿈의교회 담임인 김학중 목사는 “만일 색소폰이 술집에서라면 사단의 도구이지만 이곳에서라면 하나님의 영광이듯이, 예배의 도구가 어디에서 쓰임받는지가 중요하다”면서 “세속적이라면 춤이지만 하나님께 쓰임받았기 때문에 예배”라고 정의하여 우리가 가진 달란트가 하나님을 위해 아름답게 쓰이길 축복했다.

박 감독은 앞으로의 꿈에 대해 “우연히 고등학교 시절 사랑하는 친구가 폐암으로 소천했을 당시 낭독했던 조서를 발견했는데, 그곳에 고(故) 조수미 선생님을 잇는 복음을 전하는 문화사역자가 되겠다고 쓰여 있었다. 꿈을 이루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며 “내가 만난 예수님으로 내 춤사위가 변하고 메시지가 변했듯이, 나는 이미 세상에 발을 끊었고 오로지 기독무용의 길만 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