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영성의 문제점

영성이란 무엇인가를 논하기 전에 참으로 한국 교회의 단세포적이고 이기적이며 독선적인 행태를 주님 앞에 먼저 고발치 않을 수 가 없다.

1960년대 오순절 성령운동이 일어났을 때 한국보수교단과 교회들은 그들을 이단으로 정죄하였다. 오직 말씀인데 무슨 단회적인 성령의 역사가 또 일어난다는 말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그 목소리를 높이던 교단과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그 뒤에 너도나도 심지어 이단을 외치던 교회들조차도 성령을 부르짖고 있지 않은가? 또 은사운동도 이단시비에 말려들기는 마찬가지였다. 물론 개중에는 도를 넘어 신비주의나 체험주의 또는 은사주의로 빠진 것은 질타를 받아 마땅하나 건전한 은사, 건전한 성령운동까지도 이단이란 굴레를 씌워 정죄하였고 단죄하였다. 각자의 믿음을 객관적으로 옳고 그름은 성경에 비추어 비판하고 말할 수는 있으나 자신과 다르고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덮어 놓고 남을 정죄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오직 정죄권은 하나님께만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에 있는 말씀도 못 지키는 자들이 어찌 내 눈의 대들보는 안보고 남의 눈의 티만 본단 말인가? (마7:1-5)

앞으로는 영성운동의 시대가 될 것이다. 잃어버렸던 영성을 찾는 것이 정상이기 때문이다. 진리는 때를 따라 하나의 물결이 되어 퍼져 나가게 마련이다. 진리가 가려져 잠잠하면 돌들도 소리를 지른다고 하였다. 영성이 빠진 기독교는 허상의 기독교요 죽은 기독교다. 하나님은 이제 기독교에 영성을 불어넣어 죽어가는 기독교에 영성으로 수혈을 시켜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시고자 하신다.

그런데 문제는 그 핵심을 바로 알고 가느냐 또는 잘못된 영성의 길로 가느냐가 문제다. 어떤 시대적 변천이 있을 때 마다 거짓 목자들이 기득권을 쥐려고 먼저 설치는 것이 문제이다. (마7:15) 도날드 카슨은 오늘날 영성운동을 보면서 “유익하면서도 동시에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여기저기서 영성을 들고 나오는데 실제 영성의 의미를 모르고 해방 영성, 저항의 영성, 여성운동의 영성, 동성애 영성, 겔트 영성, 종교 다원적 영성에 이르기까지 영성이란 단어를 주저 없이 사용한다.

영성이란 단어는 아무데나 붙이면 되는 수사학적 단어나 형용사적 단어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고유한 성품을 말하기 때문이다.

2. 영성의 정의

오늘날 영성의 정체성은 무엇이며 어떻게 정의를 할 것인가? 그동안 많은 사람들은 영성의 주체가 사람들에게 있는 것으로 잘못 알아왔다. 영성은 바로 하나님의 성품으로 이것을 지켜나갈 대상이 인간이지 인간들이 영성자체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인간들은 하나님의 성품을 지켜 살아나갈 피사체 일뿐이다. 어디까지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성(성품)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합일체(合一体)가 되어 내속에 하나님의 영이 들어와 체휼되고 느껴지며 하나님이 주시는 방법과 뜻대로 그분의 지시를 따르고 순종하며 순리적인 삶을 살 때 하나님의 영성(성품)이 나를 통하여 나가게 되는 것 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말씀대로 사는 삶이며 또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인 것이다.

하나님의 영성을 알기위해서는 먼저 ‘영’에 대하여 알 필요가 있다. ‘영’이라함은 눈에 보이는 어떤 형체를 가진 물질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는 ‘기(氣’)의 실체이다(창2:7). 이것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실재 존재하는 특수 물질로서 정신세계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이 정신세계를 이루고 있는 ‘령’들 중에는 선한 영과 악한 영들이 공존하고 있다. 그럼 어떤 영이 선한 영이고 어떤 영이 악한영인가? 성경에 하나님은 십계명의 제1계명에서 나 이외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하셨다. 즉 진리의 본체이신 하나님 이외의 다른 신들은 진리가 아니므로 모두 악한 령에 속함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자로 태초에 그분 외에는 다른 신들이 없었다, 다만 그들은 하나님이 만든 모든 창조의 피조물들 속에서 변질된 악한 령들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에서 말하는 단어들 중 ‘영적’, ‘영성’, ‘성령’, ‘영’ 이라는 단어들은 전부 선하신 하나님을 가리키는 영적 단어들이다.

영적 존재이신 하나님은 한분의 존재 속에서 세가지일을 하시게 되는데 말씀의 주권을 가지시고 명령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구원하시고 마지막 때 심판하실 아들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말씀을 주관하시며 시행하시는 성령 하나님으로 설명 할 수 있다. 이 분들을 가리켜 신학적 용어로 삼위일체 하나님이라 말한다. 이 삼위 하나님 중에서 오늘날 우리 인간들과 함께 하시기 위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보혜사 성령 하나님이시다. 이렇게 볼 때 성령이란 바로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이요 우리가 말하는 영성은 그 살아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성품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영성’(靈性)이란 단어를 살펴보면 한문으로 신령 영자와 ‘성품 성’ ‘마음 성’ ‘설질 성’자로 하나님의 성품, 마음 또는 하나님의 성질을 말한다. 하나님의 성질은 바로 참 선이신 사랑이다. 이사랑은 바로 Power요 능력 Dynamite이다. 하나님은 바로 이 사랑을 통하여 생명을 창조하시고 살리신다.(Dynamic) 이것이 하나님의 성품이시다.

3. 영성운동의 필요성

이 하나님의 성품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자체이다. 우리는 다만 그분(성령님)을 내속에 모셔들어 실존의 성령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생활 할 때 그분의 뜻대로 그분의 간섭을 받게 되어 그분의 성품이 내게서 나가는 것뿐이다. 오직 우리의 본분은 그분의 자녀로서 전능자 능력자이신 하나님 아버지 품안에서 평안과 참 자유를 누리며 그분과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X-Mas를 맞이하여 아이들은 들뜬 마음으로 House에 Tree를 장식하느라 바빴다. 아름다운 장식들을 끝냈다. 밤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아름답고 찬란한 트리를 생각하며 기뻤다. 밤이 되여 설레는 마음으로 식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전기 스위치를 넣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어디에선가 전기사고가 난 것이다. 그들의 실망은 컸다. 이와 같이 발전소에서부터 오는 전기가 중간에서 끊어졌다면 아무리 아름다운 추리를 설치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한낱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도 이와 같다. 아무리 성경을 많이 읽고 봉사를 많이 하고 교회를 열심히 다닌다 할지라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것은 전기 꺼진 X-Mas 트리에 불과한 것이다. 바로 영성은 발전소와 같이 영의 근원인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하나님의 성품이요, 이 성품은 사랑이며 사랑은 생명이다. 이 영성회복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으로 오신 보혜사 성령님과 함께 살아갈 때 영성은 회복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잃어버린 영성을 회복시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보혜사 성령님을 이 땅에 보내셨다. 이제 우리는 인간의 삶의 목적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동행하는 삶을 살아 드려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성으로 회복되는 것은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