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왕(King of Knowing)’ 케네스 C. 데이비스의 베스트셀러 저작!

[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미국사], [말랑하고 쫀득한 세계지리 이야기] 등의 베스트셀러로 국내 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진 미국의 역사학자 케네스 C. 데이비스가 인류 최고의 고전인 ‘성경’을 들고 찾아왔다. 방대한 지식의 핵심만 뽑아 흥미로운 질문과 명쾌한 대답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능력을 지닌 케네스 데이비스. 이번 책 [당신이 성경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에서는 성경의 역사부터 성경의 유명한 에피소드, 사람들이 성경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 등 말 그대로 ‘성경의 모든 것’을 가장 사실적으로 전달한다.

케네스 데이비스는 루터파 계열의 대학과 예수회가 운영하는 대학을 다니며 성경의 역사와 문헌을 지속적으로 공부하였다. 그는 자신의 저서 [지오그래피]를 쓰면서 성경의 내용에 관해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점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놀랐고, 본격적으로 성경에 대한 역사적 연구를 시작하였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기독교인에게 성경은 무조건 받들어야 할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다. 반면 비기독교인에게 성경은 고리타분한 찬양 이야기와 남의 나라(이스라엘) 역사로만 여겨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경 역시 역사적 정확성과 문화적 맥락을 고려하여 읽을 때 비로소 제 가치를 발하는 중요한 고전 텍스트이다. 또한 성경이 그동안 인류 역사와 문명에 끼친 영향을 고려한다면, 종교적 가치 이상의 의미를 지닌 인류의 위대한 유산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이 성경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은 누구나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선뜻 다가가기 어려웠던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방법이다.

교황, 유대인의 무죄를 선언하다-누가 예수를 죽였나

: 성경에 관한 모든 상식, 혹은 성경에 대한 모든 오해
이윽고 예수님께서 가시나무 관을 쓰시고 자주색 옷을 입으신 채 밖으로 나오셨다. 그러자 빌라도가 그들에게 “자, 이 사람이오.” 하고 말하였다. 그때에 수석 사제들과 성전 경비병들은 예수님을 보고,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하고 외쳤다. 빌라도가 그들에게 “여러분이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나는 이 사람에게서 죄목을 찾지 못하겠소.” 하자, 유다인들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우리에게는 율법이 있소. 이 율법에 따르면 그자는 죽어 마땅하오. 자기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자처하였기 때문이오.” ([요한 복음서] 중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3월 10일 발간 예정인 자신의 저서 [나자렛 예수] 제2권에서 유대인들이 예수의 죽음에 집단 책임이 없다고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모함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게 했다는 이른바 ‘유대인 집단 책임론’은 지난날 홀로코스트와 같은 유대인들의 역사적 수난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어왔으며, 기독교와 유대교의 뿌리 깊은 갈등의 원인을 제공했다.
위의 인용문에서, 분명 유대인들은 예수를 “죽어 마땅하”다고 이야기한다. 하느님의 아들을 자처하여 하느님을 모독한 예수는 유대인의 율법에 따르자면 돌로 쳐죽이는 처벌에 해당하는 죄를 저지른 것이었다. 하지만 분명 유대인이 예수를 죽인 것은 아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빌라도’는 예수가 체포되었을 당시, 예루살렘을 통치하던 로마인 총독 폰티우스 필라테이다. 성경에서는 필라테가 예수를 처형하는 것을 주저하고, 심지어 예수를 두둔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그럼으로써 예수의 처형에 대한 비난은 자연스레 유대인 지도자들, 더 넓게는 유대인 전체로 쏠리게 되었다. 유대교나 기독교의 많은 해설자들은 로마인에게서 심한 박해를 받고 있던 복음서 저자들이 로마인을 더 자극하지 않기 위해 그런 식으로 묘사했을 것이라고 설명해왔다.

케네스 데이비스는 필라테가 예수의 처형을 내켜하지 않았던 것이 선의 때문이 아니라 유대인의 문제에 휘말리기 싫어서였기 때문이라고 결론짓는다. 또, 많은 사람이 오해하는 것이 있는데, 필라테가 예수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 것은 유대인들의 말처럼 예수 자신을 메시아라고 칭해 하느님을 모독했기 때문이 아니라 로마 황제에게 도전하고, 로마를 위협하는 민족주의 반란자로 취급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예수의 처형에 궁극적 책임이 있는 사람은 바로 필라테였다.

또 하나 성경 내용에 대해 사람들이 크게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담과 이브가 따먹은 에덴동산의 ‘선악과’에 관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과일을 사과라고 알고 있지만, 성경 구절 어디에도 이 열매가 사과라는 말은 없다. 심지어 ‘금단의 열매’라는 표현도 없다. 다만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생명 나무 열매’라는 표현만 있을 뿐이다.
(/ p.89)

이처럼 성경에 대한 제대로 된 역사적, 문맥적 이해가 없이 에피소드만으로 성경을 다 안다고 자신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성경에 들어 있는 내용이 실제로 어떤 것인지를 가장 정확하게 알려주고,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을 바로잡고자 한다.

모세의 기적은 홍해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 성경과 번역의 오류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어김없이 방영하는 고전영화 [십계]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이집트 군사들에게 쫓기던 모세와 히브리인 무리가 홍해를 가르고 유유히 건너가는 장면일 것이다. 그런데, 모세가 건너간 바다가 홍해가 아니라면? 더 정확히 말해 바다가 아니라면?
모세와 히브리인들이 건넌 것은 홍해가 아닌 ‘갈대 바다’(Sea of Reeds)였다. 이 사실은 성경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기적을 믿고 싶은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겠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성경의 이야기들이 맨 처음 기록되었을 때부터 끊임없이 변형되고 윤색되었다는 사실을 인지시키기에는 매우 적합한 예시이다.
(/ p.17)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라는 말이 있다. 왜 하필 ‘낙타’인지를 고민해본 사람이 있을까? 대개는 예수가 뜻을 강조하기 위해 과장된 비유를 사용했을 거라고 생각하거나, 당시 그 지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동물을 인용했으리라고 미루어 짐작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 역시 오역이라는 주장이 있다. ‘낙타’라는 뜻의 그리스어 Kamelos와 ‘밧줄’을 뜻하는 Kamilos와 철자가 매우 비슷하다. 이것을 다른 언어로 옮기는 과정에서오역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원래 낙타가 아니라 밧줄을 바늘구멍에 꿰기 어렵다고 말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이 책은 이야기한다.
(/ p.505)

처음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기록된 성경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줄어들면서, 또 그 시대를 지배하던 언어에 따라서 그리스어로, 라틴어로, 독일어로, 영어로 점점 옮겨가며 번역되었다. 이 과정에서 실수로 혹은 고의로 잘못 번역된 성경의 내용은 꼬리를 물고 또 다른 오해를 낳았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된 경우가 허다하다. [당신이 성경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이처럼 성경의 오역 사례를 들어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사실에 한 번쯤 의문을 품는 자세를 견지할 것을 요구한다.

과연 누구를 위한 하느님인가?

: 악을 옹호하는 성경에 대하여
경건하고 신성한 성경이 사실은 수많은 논란과 분쟁의 씨앗이라면? 미국 남북 전쟁 당시, 노예 제도 옹호론자들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내세운 것이 바로 성경 구절이었다. 옹호론자들은 “가나안은 저주를 받으리라. 그는 제 형제들의 가장 천한 종이 되리라.”라는 [창세기] 구절을 인용하면서 성경이 노예 제도를 인정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들은 도망친 노예에게 자유를 주라는 신약 성경의 구절이나 도망친 노예를 숨겨주라는 유대인 율법은 애써 무시했다. (본문 108쪽)
성경에는 분명 ‘살인해서는 안 된다’라는 계명이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하느님의 뜻에 따라 대규모 학살이 이루어졌던 것도 사실이다. [여호수아기]는 이집트를 탈출한 모세와 그 무리들이 40년 동안 광야를 헤맨 후에, 하느님의 허락 아래 약속의 땅(가나안)을 ‘정복’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의 성읍 예리코를 점령하고 무자비한 살육을 서슴지 않는다.

이러한 성경 구절에 대해, 가나안 사람들은 너무나도 타락하고 나빠서, 마땅히 정복하고 없애야 할 대상이었다는 게 전통적인 견해였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보았을 때,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점령하는 과정은 이주와 협상을 동반한 ‘정착’을 통해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 일어났으며, 성경에 나오는 정복 이야기는 후대에 윤색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드러났다.
(/ p.207)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제물로 바쳤다고 해서 오늘날 자신의 아이를 제단에 바칠 부모가 없는 것처럼, 고대 세계에 만들어져 끊임없이 가공되고 윤색된 성경 구절을 있는 그대로 오늘날의 세계에 적용한다는 것은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행동으로밖에 볼 수 없다. 성경 구절에 드리워진 비유를 걷어내고 그 진정한 의미를 들여다볼 줄 아는 눈을 지니는 것이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또한, 진정으로 성경의 가르침을 따른다는 것은 얼마나 성경 구절을 정확히 지키느냐가 아니라, 올바른 믿음을 지속하는 것임을 이 책은 가르쳐주고 있다.

인터파크 도서 정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