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갈보리선교교회(담임 심상은 목사)에서 前 백악관 통역관 이이다 고넬료(飯田コーネリアス·80)목사가 주일예배 설교를 전했다.

이날 이이다 목사는 “쓰나미보다 더 무서운 것이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이라며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위험이 닥칠지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이다 목사는 “하나님의 크신 자비와 보호하심 안에 우리가 있다”라며 “재난을 받은 사람뿐 아니라 일본 전역의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기도해주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이이다 고넬료 목사는 1930년 동경 출생으로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와 칼빈신학교에서 구약을 전공했으며, 일본인교회 담임으로 시무한 바 있다. 10여 년간 미일 정상회담, 7개국 경제정상회담 등 미 정부 유일의 일본어 담당 공식 통역관으로 집무했으며, 현재 미 애리조나에 거주하면서 매년 일본 규슈지역를 중심으로 성경연구, 집필, 간증집회 등의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다음은 말씀 요약.

대진재와 우리의 기도
본문:누가복음 22장 39~46절

이번에 일본에 쓰나미가 났을 때 한 남성이 집 안에 있었는데 부인이 떠내려가고 집이 부숴지고 계속 떠내려가서 육지가 보이지 않게 됐습니다. 이 남성은 지붕위에서 2-3일 동안 슬픈 마음으로 지새게 됐습니다. 이 남자는 이제 드디어 죽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이 사람은 구조를 받았지만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여러분구조 받았을 때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생각하셨겠죠. 그러나 아시겠지만 일본사람 99%가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일본인은 800만 우상 신앙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런 재난을 보면서 정말 생각해야 하는 것은 그 사람들의 영혼을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지금 일본에 연세 많으신 분들과 젊은 사람들에게 일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아버지 어머니들은 어떻게 하면 집을 세울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입니다. 여러가지 위험한 것이 우리에게 다가올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크신 자비와 보호하심 안에 우리가 있습니다. 원자력 발전소에서 일하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습니다. 일본 영혼을 위해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재난을 받은 사람뿐 아니라 일본 전역의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기도해주기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복구를 위해서 엄청난 돈이 들어갑니다. 열심히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시간과 물질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여러분들도 잘 부탁드립니다.

오늘 아침에는 기도에 대해 생각해보길 원합니다. 여러분 아시겠지만 예수님은 기도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역 초기에 금식하면서 기도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한 가지를 가지고 두 번 세 번 기도하는 분이었습니다. 물론 일본사람을 위해서 중언부언하는 기도는 안좋습니다. 예수님은 한 가지 기도를 가지고 땀이 핏방울 되게 기도했습니다. 정말 이상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아닙니까. 베델레헴에서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 예수님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들로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왜 기도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었고 그리고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전 사람들의 죄를 지고 희생제물이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참 사람이었기 때문에 한 가지 기도를 놓고 기도했습니다.

저는 1930년대에 태어났는데 태평양 전쟁이 있을 때 어릴 때였습니다. 우리나라 광복절은 1945년입니다. 그때 14세 때였습니다. 그때까지 나쁜 짓은 아무것도 안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1년간 너무 슬프고 바빴습니다. 그때 저는 예수님 얘기를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내 죄를 짊어지고 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너무 기뻤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겠다고 고백했습니다.

14세 때까지 아무 나쁜 짓도 안하고 그렇게 살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죄를 범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누가복음 22장 39-46절입니다. 이 본문을 가지고 메세지를 많이 들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에도 적혀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책을 종합해보면 겟세마네 기도는 참 불쌍하고 슬픈 기도였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십자가 위의 처형을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좀 피하고 싶어합니다. 한잔의 잔이 들어가 있습니다. 독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먹고 싶어 하겠습니까. 이 잔을 물리쳐주세요, 하고 기도했습니다. 너무 열심히 기도하고, 죽기까지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셔서 기도를 돕더라하고 말했습니다. 여러분들 기도하면서 마음이 괴로워지고 육신이 약해지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저는 있습니다. 언젠가 성경이 안 믿어질 때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랑하지만 성경은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정말 괴롭고 죽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도와주셨습니다. 천사가 왔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이 도와주심을 느꼈습니다. 예수님은 세번 기했습니다.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내 마음대로 하지 마시고 하나님 뜻을 따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내게는 생명이었습니다.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확실한 응답이 왔기 때문에 예수님은 십자가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슬프고 약한 그런 기도의 결과가 십자가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하나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렇게 기도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십자가로 가신 것입니다.

지금 동북지역에 지진을 통해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하는 가운데서 그분들이 얼마나 기도했겠습니까. 하나님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십니까? 이렇게 기도하는 분들이 있지 않을까요. 지금 이 시간은 대재난의 이야기뿐만 아닙니다. 그런 재난을 당한 분들뿐만 아니라 여러분도 열심히 기도했는데 안들어 주신 적이 있지 않습니까. 제가 10대 때 전쟁이 끝났지만 여러분에게 죄송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왜냐면 여러분 할머니 할아버지가 전쟁에서 많은 피해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기도했는데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 그런 슬픈 가운데서 또 한가지 계속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아무리 기도해도 언젠가 죽음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상황일지라도 믿음의 사람으로 예수님을 바라보게 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하셨지만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죽음이 생명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우리 믿음을 가진 성도님들, 앞에 있는 찬란한 미래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줄 믿습니다. 여기 믿는 모든 성도들 예수님을 다 믿는 줄 믿습니다. 나온 분들 중에서. 믿음이 없는 분들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마음으로 받으시길 바랍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60대 아저씨도 다시 한번 찬스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런 인생을 들으실 것입니다. 그런 분들 위해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강렬한 기도를 통해서 계속 전해지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라는 젊은 왕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20대 때 왕이 되었습니다. 29년 동안 정직하게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젊은 왕이 얼마되지 않아 큰 병이 결리게 되었습니다. 이 이사야 선지자가 왕궁에 올라갑니다. 그리고 이야기 합니다. 열왕기하20장에 보면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말합니다.

그런데 예언자의 말을 듣기 싫다는 것입니다. 벽에 얼굴을 돌렸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저는 죽기 싫습니다. 하나님을 정직하게 섬기고 있지 않습니까. 아직 저에게는 자식도 없습니다. 저 좀 도와 주십시요. 옛날에 선지자는 대단한 사람들 아닙니까. 오늘날 목사님들과 좀 다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왕이 눈물로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데 그냥 집에 돌아갔습니다. 어제나 오늘날이나 하나님은 자비가 많고 사랑이 많은 분이라 믿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집에 가는 중에 하나님이 다시 가라고 명령하십니다. 나의 민족 왕에게 가서 전하라. 사랑이 말씀이 아닙니까. 내 백성의 왕, 내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이 젊음의 왕, 이것은 제가 ‘할렐루야’ 하고 싶습니다.

그 무서운 병에서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이 믿음 좋은 히스기야 기도의 소리에 집중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도 정말 죽음의 직면에서 히스기야처럼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금식하면서도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로 돌아가겠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응답받은 기도였습니다.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또 하나의 전환이 여기 있습니다. 정말 상당히 신기한 전환입니다. 정말 슬프게 기도하셨습니다.

성경에서 마지막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엘리엘리라마 사막다니. 왜 저를 버리시나이까, 왜 저는 버려져서 이런 모양을 하고 있습니까. 약속이 틀리지 않습니까. 이것은 대단한 반전이 아닙니까. 여러분 잘 생각해 보십시요. 이 십자가의 장면은 예수님이 사역 초기에 말씀하신 장면입니다. 나는 모든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에서 약속 틀리지 않습니까. 이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 묵상할수록 내 죄가 얼마나 깊은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희망이 없는 사람이 제 자신이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이야기하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찬란한 미래를 보여주십니다. 너를 버리지 않았다. 영광이다. 너는 부활할 것이다. 그래서 말씀하십니다. 아버지여 내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나이다. 정말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주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여러분 그러한 귀한 믿음을 가지시고 즐거운 삶을 가지시길 소망합니다. 우리 주 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용납하고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