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아닌 봄눈이 내렸다. 소복이 쌓인 것은 아니지만 사르륵 내리는 야설(夜雪)을 덱에 외등을 켜고 나와 맞으니 색다른 흥취가 더 한다. 봄눈에야 설중매(雪中梅)가 제격이지만 매화가 어디 그리 흔한가! 개나리위에 쌓인 설편(雪片)만 으로도 춘설야화(春雪夜花)의 그림은 환상이다. 설록차 한잔을 들고 시심에 잠기니 이런 걸 오비이락(烏飛梨落)이 아닌 설비시락(雪飛詩落)이라 할 것이다. 봄의 첫 자락에 내린 춘설은 어쩌면 통곡하는 대지를 달래는 선물일지도 모른다.



봄눈이 온다해서 심드렁 했지!
어제 내린 눈은 그저 내린 봄눈이 아니다.

꽃가루 뿌리듯 사르륵 사뿐이 내려앉는 설편은
통곡하는 대지를 어루만지는
햇 봄맞이 선물이다.

내려라
얼어붙은 겨울의 이야기들이
녹아 시냇물이 되어
수줍은 수선들을 쏘옥 올리도록

조금 더 내려
아이들 깔 깔 웃음 골목을 채우도록
겨우내 잔 기침하며 창밖을 내다보던
이웃 할멈이 봄 뜨락을 거닐게

그리고는
내 상념의
털 벙거지도 날려 버려라

신이 자연 은총을 주시지 않는다면 봄을 어떻게 맞을 수 있을까? 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