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화평의 일과 덕을 세우는 일에 힘쓰라

둘째로 화평의 일과 덕을 세우는 일에 힘쓰라고 합니다. 이것은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적극적인 방법입니다. 19절을 보겠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여기에서 '화평의 일'이란 다름 아닌, 믿음이 연약한 형제를 이해하고 용납하는 일입니다. 그를 비판하지 않고 이해함으로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을 말합니다. 상대방을 이해할 때, 화평을 이룰 수 있습니다.

어떤 마을에 두 집이 있었습니다. 한 집은 일곱 식구인데도 조용하며 화목하게 지내고 있었고, 다른 한 집은 세 식구밖에 안 되는데 항상 시끄럽고 말썽이 많았습니다. 어느 날 세 식구인 집 가장이 일곱 식구인 집 가장을 찾아갔습니다. 이집은 식구도 많은데도 불구하고 언제나 명랑하고 화목하게 지내고 계시는데 무슨 비결이 있으면 가르쳐주십시오. 그러자 일곱 식구 댁의 가장이 대답했습니다. 그 집은 잘난 사람들만 모여 살기 때문에 그렇고 우리 집은 모두가 못난 사람들만 모여 살고 있으니 조용할 수 밖에요 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세 식구의 가장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그것을 본 일곱 식구의 가장은 빙그레 웃으면서 말을 덧붙였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밥을 먹다가 누가 컵을 엎지르면, 엎지른 사람이 제 잘못이라고 사과를 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아니야 내 잘못이야. 내가 컵을 그곳에 놓지 않았어야 했는데'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또 다른 사람이 저마다 제 잘못이라고 구실을 달아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합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세 식구의 어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거참 진리는 가까운 데 있었군요. 우리 집은 그 반대였습니다. 무슨 일이 생길 때면 저마다 제 잘못은 없고 상대방만 탓했습니다. '왜 조심성이 없느냐', '왜 그런 곳에 두었느냐', '왜 나만 야단치느냐'하면서 서로 소리를 질렀으니까요라며 참으로 좋은 교훈을 얻었다면서 돌아갔습니다.

이 이야기는 가족들이 서로 이해하면 가정은 저절로 화목해진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화목과 화평이 달리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화평하자, 화평하자라고 큰 소리로 외친다고 화평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한번 타인을 비판해 보십시오. 그 비판은 이자까지 붙어 더 크게 다시 돌아옵니다. 공동체 안에서는 남을 비판하면 비판할수록 화평은 깨어집니다. 그러나 남을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화평을 이룹니다. 우리가 믿음이 약한 자를 이해하면 공동체가 화평을 이루게 되는데,

바로 이것이 덕을 세우는 일입니다. 19절 하반 절에서 '덕을 세운다'는 말은 원래 '집을 짓는다'라는 의미로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굳건하게 세우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건강하게 세워 가는 일은 목사나 전도사나 교회의 일부 사람들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공동체 안에 모든 사람들이 함께 덕을 세울 때, 주님의 몸 된 교회가 건강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화평케 하는 일을 힘쓰시기 바랍니다. 남을 비판하기보다는 이해하며 화평케 하시기 바랍니다. 벽돌을 한 장 한 장 차근차근 쌓는 것처럼,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일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이 화평이 깨어지면 교회는 제 기능을 발휘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배를 타고 가다가 폭풍우로 배가 뒤집혀서 조난을 당했습니다. 그는 나무판자에 의지하여 혼자 표류하던 끝에, 다행히 조그만 무인도에 닿게 되었습니다. 그 섬에 고립되어 있는 동안, 건축가였던 그 사람은 인간사회가 너무나 그리운 나머지 자기의 기능을 발휘해서 모형부락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 있는 것 같은 환상 속에서 고독한 나날의 삶을 달랠 수 있었습니다. 몇 년이 흐른 뒤에 그는 무인도 앞을 지나가던 한 선박에 의하여 구조되었습니다. 그는 지금껏 살던 그 섬을 떠나기 전에, 자기가 세운 모형부락을 선원들에게 구경시켜 주었습니다. 마을의 거리마다 집들과 상점들이 들어 차 있었는데, 마을 한가운데 교회가 둘이 서 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 배의 선장이 물었습니다. "당신이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물론 교회가 필요했겠지요. 그런데 이 무인도에 인구라고는 당신 한 사람 뿐인데, 왜 교회가 둘이 있어야 했습니까? 해난사고로 무인도에서 몇 년 동안 살아온, 그 사람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한 교회는 내가 다니는 교회이고, 다른 한 교회는 내가 다니지 않는 교회입니다." 이 이야기는 그리스도인들이 쩍하면 갈라지기를 좋아하고 싸움이 잣은 것을 비판적으로 꼬집은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서로 서로를 이해할 때에 세워주는 교회로서의 사명을 감당 할 수가 있습니다.

3) 믿음을 좇아 행하라

세 번째, 건강한 교회를 세우려면 믿음을 좇아 행하라고 합니다. 22절과 23절을 보겠습니다.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의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책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여기에서 '믿음으로 좇아 한다'는 것은 믿음을 따라 행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음식을 먹으려고 할 때, '먹어야 되나, 먹지 말아야 되나'라는 의심이 생긴다면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신앙의 양심대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 중에 '양심'은 매우 특이합니다. 겉으로는 속일 수 있어도, 우리의 양심은 속일 수 없습니다. 여러분! 양심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양심은 그냥 양심이 아니라 네 믿음의 선한 양심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말씀으로 교정된 양심을 말합니다. 이 믿음의 선한 양심대로 행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 백성답게 사는 길입니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발모랄 왕궁(Balmoral Castle)에 거하고 있을 때, 여왕은 종종 평민 복장을 하고 인근 동네를 걸어 다니곤 했습니다. 그날도 평복 차림으로 옆문을 통해서 살짝 빠져 나왔습니다. 여왕은 가장 신임하는 종인 존 브라운만을 대동한 채 거리를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평복 차림의 여왕이 길을 가고 있는데, 마침 반대편에서 한 목동이 양떼를 몰고 오고 있었습니다. 목동 소년은 여왕을 행하여 소리를 쳤습니다. “얼른 비켜요! 바보 할머니 같으니라구!” 이 말은 들은 여왕은 그냥 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깜짝 놀란 종이 목동에게 달려가서 작은 목소리로 말하기를 “저 분은 여왕 폐하십니다”라고 말을 하자, 깜짝 놀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을 했습니다. “아, 그래요! 그러면 여왕님처럼 옷을 입고, 여왕님처럼 행동하셔야 지요!”

우리는 스스로를 크리스챤이라고, 성도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 과연 크리스챤이라고, 성도라고 인정할까요? 성도는 성도답게 살아야 합니다. 목사는 목사답게 살아야 합니다. 성도는 성도답게 행동해야 합니다. 장로는 장로답게 행동하여야 합니다. 여러분! 믿음대로 행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선한 양심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모든 행동은 믿음에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제이 씨 페니 체인을 만들 사람이 바로 JC 페니입니다. 그는 훌륭한 크리스천 사업가가 이었습니다. 그는 매사에 크리스천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산 사 사람입니다. 어느 날 그가 사교모임 석상에 참석하여 옅은 노란색을 띠는 '진저 에일에 오렌지 주스를 탄' 음료수를 마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교석상에 참석했던 어떤 사람이 그가 칵테일을 마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는 사교석상에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페니가 오늘 술을 마신 것을 직접 자신의 눈으로 보았다고 소문을 내었습니다. 신실한 크리스챤으로 행동하던 페니가 파티 장에서 술을 홀짝홀짝 거리며 마시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는 소문이 금세 퍼져 나갔습니다. 소문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가 급기야 본인인 페니의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페니는 그 말을 듣고 나서 즉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내가 진저 에일을 마시면서 사람들에게 의혹거리가 되고, 크리스챤으로서 나의 명예에 손상을 입는다면, 나는 지금부터 결코 진저 에일을 마시지 않겠습니다. 나는 지금부터 빨간 색깔의 토마스 쥬스를 마시거나, 아니면 투명한 색깔의 냉수만을 마시겠습니다

여러분! 바로 이 페니라는 사람이 진정한 크리스챤입니다. 그가 음료수를 마시는 것은 분명히 죄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범죄행위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형제들의 영혼을 생각하여, 좋아하던 음료수조차 마시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가 마시는 진저에일 음료수는 술이 아니었지만, 그는 앞으로 그것을 마시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는 형제를 망하게 하지 않기 위해,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해, 믿음의 양심을 따라, 더 이상 진저에일을 마시지 않겠다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방법으로 절제하고 주님을 섬기면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보너스로 주십니다. 18절을 보겠습니다.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우리가 말씀대로, 신앙의 양심대로 살아갈 때, 주님을 기쁘시게 할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많은 칭찬을 받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에 성공하는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건강한 교회,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형제를 망하게 하는 어떠한 것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일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양심에 따라 먹든지 마시든지 행동함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들에게 칭찬 받을 뿐 아니라,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프랜시스가 평화의 기도에서 고백한 것처럼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아픔이 있는 곳에 용서를..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게 하소서.”이것이 우리의 기도의 소원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