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본지는 지난 4월부터 6월에 걸쳐 총 10명의 신학 전공 유학생들을 만나 <목회적 영성과 신학적 지성이 만나는 그곳에서>라는 시리즈 인터뷰를 통해 이민교회 목회와 신학에 관해 논의해 왔습니다. 이 인터뷰를 통해 목회적 영성과 신학적 지성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모색하고자 했으며 또 양자 간에 어떤 점에 있어서 대화가 부족하며 증진되어야 하는지도 함께 고민했습니다.
이번 시리즈 인터뷰의 가장 주안점은 역시 신학교에서 신학훈련을 받으면서 동시에 시카고 지역 한인교회에서 목회훈련을 받고 있는 이들을 인터뷰 해 신학과 목회 두가지를 함께 논의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인터뷰 기간 가운데 현장에서 목회를 하는 많은 독자들께서 매우 긍정적인 격려와 함께 조언을 해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또 이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담임목회를 하고 있는 목회자와의 의견 교환이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의견을 제안하신 분들이 많았기에 본지는 지난 7월 23일 나일스의 한 식당에서 “목회와 신학이 만나는 미래 이민목회를 말한다”는 주제로 4시간에 걸쳐 포럼을 개최한 바 있습니다. 이 포럼을 위해 많은 목사님들께서 시간을 내어 참여해 주신 것과 특히 김광태 목사님께서 신학생들을 격려하는 의미로 식사를 대접해 주신 것에 감사를 아울러 드립니다.
본지는 포럼의 내용을 3차례에 걸쳐 요약, 정리해 보도합니다.
주제: 목회와 신학이 만나는 미래 이민목회를 말한다
진행자: 백영민 목사(글렌브룩교회, 게렛신학교 조직신학 Ph.D.)
발제자1: 김진양 목사(시카고루터란신학교 구약학 Ph.D. 과정)
발제자2: 신동수 목사(휫튼대학교 조직신학 Ph.D. 과정)
코멘트1: 서창권 목사(시카고한인교회, 비블리컬신학교 신약학 M.A.)
코멘트2: 김광태 목사(시카고한인제일연합감리교회, 웨슬리안신학교 D.Min. 과정)
<제1 발제와 코멘트>
백영민 목사: 신학적 지성과 목회적 영성이 만나는 토론을 하기 위해 오늘 이 자리에 모였다. 목회자 입장에서는 목회를 통해 신학하는 과정에 있고 신학생 입장에서는 신학을 통해 목회를 배워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 양자의 중요한 점은 역시 우리가 결국 어디서 만나게 되느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것을 우리는 미래 이민목회가 지향해야 할 지향점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토론을 통해 과연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가는 사역을 맡은 존재로서 한 팀인가? 서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상호협력적인 관계인가를 확인하길 원한다. 오늘 포럼을 위해 김진양 목사님이 먼저 발제를 준비하셨다.
김진양 목사: 밴더빌트신학교의 신학과실천연구소는 2008년도에 “앞으로 5년 혹은 7년 사이에 미국에 있는 20개의 신학교가 문을 닫을 것”이라고 경고했으며 이 원인은 신학과 교회의 단절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시카고 지역 한인교회의 신학과 교회는 어떠한가? 시카고 지역 한인교회가 현 당면한 문제들은 무엇인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교회가 없어진다거나 교인이 감소하는 것은 시카고 지역 한인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교회, 한국교회 등 우리 시대의 보편적 현상이다.
이런 문제의 원인이 신학의 부재 때문이라는 전제는 그리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그러나 만일 이것이 신학의 부재 때문이라고 한다면, 신학을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관건이다. 이 주제에 따르면, 신학은 교회의 본질을 규정하는 것이다. 바울의 서신은 교회의 위기에 대한 바울의 신학적 응답이라 볼 수 있는데 건강한 교회는 올바른 신학에 바탕을 둔 교회임에 틀림없다.
오늘 발제는 역으로, 시카고 지역 한인교회의 문제를 신학적으로 규명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을 주내용으로 하고 있다.
첫째, 한인교회는 직분제도 혹은 리더십의 위기를 겪고 있다. 교회의 직분제도는 아주 중요하나 잘못된 직분제도는 오히려 교회에 문제를 야기시킨다. 교회의 직분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제자로 인식되기보다 명예나 권력으로 여겨지곤 한다. 이것은 교회의 본질과는 동떨어진 잘못된 생각, 즉, 신학적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다.
성서가 말하는 직분자는 사명을 받아 섬기는 사람이다. 성서 속의 직분자들은 헌신과 섬김으로 존경과 권위를 얻었다. 그러나 주류사회에서 소외당한 경험을 가진 이민자들은 본능적으로 인생의 의미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공동체를 찾으며 교회가 이런 한인사회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지하고 있다. 교회의 직분이 이런 면에서 악용, 남용되기도 한다.
둘째, 한인교회의 성경공부와 같은 영성 교육의 목표가 본질을 잃고 있다. 경험에 비추어 보면, 많은 교회가 성경공부의 목적을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닌 교인 만들기에 두고 있는 듯 하다. 어떤 목회자는 교인을 자기 편으로 만들려는 의도를 가진 분도 있다. 성경 공부를 통해서는 다음과 같은 신학적 토론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은 오늘 우리와 어떤 관계를 맺고 계신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가” 더 나아가 구약과 신약을 통전적으로 읽고 해석할 수 있는 다양한 성경 공부 프로그램을 목회자들이 연구해야 할 것이다.
신학적 성경 공부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목회자가 신학교에 가서 교육을 받던지, 혹은 신학교가 목회자들을 찾아 가든지 하는 물리적 장소 이동이 필요하다. 신학자는 목회 현장에 가서 목회자의 이야기를 듣고 그 곳에 맞게 커리큘럼을 짜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어렵다면 한국신학연구소가 운영하는 월요성서학당과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신학과 목회의 괴리를 줄여 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한인교회가 개교회마다 가질 수 있는 독특한 맛과 향기를 잃고 있다. 지금 한인교회는 양적 성장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는 듯 보인다. 1명의 제자보다 10명의 교인을 선호하는 듯 하다. 많은 미국인들이 한국교회라고 하면 폭발적인 양적 성장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이 양적 성장이 오늘 우리가 직면한 문제점 앞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이민교회는 양적 성장을 향한 천편일률식 교회관을 재고해야 한다. 그리고 각 교회가 교회마다 특성과 환경에 맞는 독특한 맛을 내는 그런 교회의 모습을 그려 가야 한다. 어떤 교회는 말씀공부에 전념하는 교회로, 어떤 교회는 이민사회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응답하고 해결해 가는 참여적 교회로서의 사명을 감당해 가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현 한인교회는 교회의 본질을 신학적 차원에서 다시 한번 점검해야 한다. 따라서 신학의 부재가 현 한인교회의 전적인 문제는 아니지만 시카고 지역 한인교회의 위기를 신학과의 대화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은 바람직한 접근이다. 양자의 대화를 통해 신학은 그 깊이가 더욱 깊어지고 교회는 영성의 깊이가 풍성해 지길 기대해 본다.
서창권 목사: 김진양 목사님의 의견에 많은 부분 동의하지만 지금 지적하신 문제들이 신학의 부재 때문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이런 문제는 이민교회가 처한 특수성 때문이 아닐까? 많은 이민자들이 직분을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라기 보다는 명예 혹은 계급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면에서 이민자들의 자기 존재감이 상당히 낮을 수 밖에 없으며 그것을 충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곳이 교회이다. 이런 현상은 무조건 비판할 것이 아니다. 성경에도 보면 “하나님이 주시는 직분을 사모하라”고 한다. 우리 목회자들 역시 목사가 되고 싶다는 강한 동기가 있었기에 목사가 됐듯이, 그들 역시 장로 혹은 권사, 집사가 되고 싶다는 강한 동기를 갖는 것은 어떤 면에서 상당히 긍정적일 수 있다. 이것을 지혜롭게 물꼬를 터주는 것이 좋다고 본다. 이민교회의 특수성을 고려하는 목회가 필요하다.
성경 공부의 문제는 새로운 개발보다는 현재 있는 교재들을 각 교회의 컨텍스트에 맞게 잘 선택하고 적절하게 적용해 사용하는 것이 좋다. 요즘은 성경공부 프로그램 홍수의 시대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 훈련은 성경을 가르치는 것에 있다기보다는 삶을 통해 배우는 것이었다. 현재 각 교회가 도입하고 있는 성경공부가 그런 형식으로 변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주목할 것은 예수님과 3년간 먹고 자며 배운 제자들이 막상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앞에서 취한 행동들이다. 그런 제자들이 실제로 변한 사건은 오순절 성령 체험이었다. 성도의 변화에 있어서 성령 체험의 중요성이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된다고 볼 수 있다. 성경공부는 성경에 대한 확실한 이해와 성령의 강력한 체험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김 목사님의 세번째 의견에는 부분적으로 동의하지만 모든 교회가 각각 독특한 맛을 내기 위해 인위적으로 노력을 기울이는 것에 대해서는 오히려 반대한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요즘은 각 교회만의 특성을 따지기 어려운 시대다. 옛날에는 장로교인은 이민을 와도 장로교회로 가고 감리교인은 감리교회로 가고 순복음교인은 순복음교회로 갔다. 그러나 요즘은 교단을 초월해서 성도들이 이동한다. 목회를 해 보면, 한 교회 안에 여러 교단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들의 신앙적 배경에 따라 그들은 다양한 요구를 해 온다. 기도회를 강조하는 사람도 있고 제자훈련을 강조하는 사람도 있다. 교회 입장에서는 성도들의 다양한 요구를 최대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많은 교회들이 비슷해 질 수 밖에 없는 현상이 일어난다. 여기서 우리가 추구할 것은 각 교회가 가진 맛이라기보다는 건강한 교회다. 건강한 교회라는 기초 위에 담임 목회자의 목회적 철학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그 교회의 특성이 규정된다면 그것을 각 교회가 가진 맛이라고 부를 수 있지만 인위적으로 “우린 제자훈련하는 교회”라고 규정하고 목회하는 것은 균형을 상실할 수 있다고 본다.
김광태 목사: 우리가 성도들에게 말씀이 삶이 되어야 한다고 하듯이, 우리 목회자들에 있어서는 신학이 목회가 되어야 한다. 신학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교회론이다. 목회에서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도 교회론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론은 결국 인간론, 그리스도론, 성령론에 기초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백성인 인간을 알아야 하고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성령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런 것들이 우리의 목회에 어떻게 반영이 되어야 할까? 교회의 목회적 방향은 목회자에게서 나온다. 즉, 목회자가 교회를 이끌어 가는 방향을 제시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목회자가 교회의 존재, 목표, 즉 교회론에 관해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느냐가 목회의 방향을 결정한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이런 교회관을 갖고 이렇게 목회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으나 사실 목회라는 것은 자신이 가진 신학을 끊임없이 펼쳐가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우리 가운데 신학을 모르는 목회자는 없다. 누구나 정규 신학 공부를 마쳐야 목회자로 안수받을 수 있다. 그러나 보통 교회에 신학이 없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목회에 신학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제는 목회자가 성도에게 “말씀대로 살지 않는군요, 말씀을 삶에 적용하지 않는군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맥략이다. 우리는 이런 문제를 겪는 성도들에게 제자훈련이라든지, 말씀 묵상 훈련을 시킨다. 마찬가지로 신학을 목회에 적용하지 못하는 목회자가 있다면 우리가 신학을 깊이 묵상하고 그것을 어떻게 목회에 적용시킬 것인지 끊임없이 연구를 거듭해야 한다. 그리고 이 연구에서 나온 산물이 바로 목회의 비전이 되는 것이고 목회를 위한 신학이 되는 길이다.
이 땅의 모든 교회는 불완전하다. 나는 이런 불완전한 교회를 가장 이상적인 신학적 지평에 근접한 교회로 끌어 올리는 것이 목회라고 본다. 김진양 목사님의 많은 지적들은 나로서도 상당히 공감하는 이야기이다. 빌 하이벨스, 옥한흠 목사님 모두 평생을 제자훈련에 바친 분들인데 최근 그 제자훈련이 실패라고 고백했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외치고 가르치고 훈련했는데 실제로는 성도들이 그렇게 못 살더란 이야기다. 그러나 내가 볼 때 이분들은 실패한 분들이 아니다. 그 과정을 지금도 가고 있는 것이다. 목회도 마찬가지다. 신학적으로 완성되어 보이는 완벽한 교회가 지금 나타나 있지 않다고 해서 우리 목회가 실패는 아니다. 그 목표와 비전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이미 신학적 과정이다.
현실의 모든 교회는 신학의 부재를 겪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학이 목회로 온전히 드러난 교회는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나는 그것을 아주 긍정적이라 평가하고 싶다.
또 한가지 덧붙일 말은, 서 목사님의 의견처럼 성도들의 변화는 결국 성령에 의해서 이뤄진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변화도 성령에 의해서 이뤄진다. 목회에 신학이 없다는 말, 곧 신학이 완벽히 적용되는 완전한 교회가 없다는 말은 결국 신학을 목회로 구현해내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한 말이다. 이 역시, 성도의 변화처럼 성령의 개입 없이는 결국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닐까? 우리가 심고 물을 주지만 결국 자라게 하시는 이는 성령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도 여전히 노력하고 수고해야 마땅하지만 성령에 철저히 의존하는 것이 바람직한 목회의 자세라고 본다.
(신동수 목사님의 제2 발제와 코멘트가 다음 보도에서 이어집니다.)
이번 시리즈 인터뷰의 가장 주안점은 역시 신학교에서 신학훈련을 받으면서 동시에 시카고 지역 한인교회에서 목회훈련을 받고 있는 이들을 인터뷰 해 신학과 목회 두가지를 함께 논의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인터뷰 기간 가운데 현장에서 목회를 하는 많은 독자들께서 매우 긍정적인 격려와 함께 조언을 해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또 이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담임목회를 하고 있는 목회자와의 의견 교환이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의견을 제안하신 분들이 많았기에 본지는 지난 7월 23일 나일스의 한 식당에서 “목회와 신학이 만나는 미래 이민목회를 말한다”는 주제로 4시간에 걸쳐 포럼을 개최한 바 있습니다. 이 포럼을 위해 많은 목사님들께서 시간을 내어 참여해 주신 것과 특히 김광태 목사님께서 신학생들을 격려하는 의미로 식사를 대접해 주신 것에 감사를 아울러 드립니다.
본지는 포럼의 내용을 3차례에 걸쳐 요약, 정리해 보도합니다.
주제: 목회와 신학이 만나는 미래 이민목회를 말한다
진행자: 백영민 목사(글렌브룩교회, 게렛신학교 조직신학 Ph.D.)
발제자1: 김진양 목사(시카고루터란신학교 구약학 Ph.D. 과정)
발제자2: 신동수 목사(휫튼대학교 조직신학 Ph.D. 과정)
코멘트1: 서창권 목사(시카고한인교회, 비블리컬신학교 신약학 M.A.)
코멘트2: 김광태 목사(시카고한인제일연합감리교회, 웨슬리안신학교 D.Min. 과정)
<제1 발제와 코멘트>
▲백영민 목사 |
김진양 목사: 밴더빌트신학교의 신학과실천연구소는 2008년도에 “앞으로 5년 혹은 7년 사이에 미국에 있는 20개의 신학교가 문을 닫을 것”이라고 경고했으며 이 원인은 신학과 교회의 단절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시카고 지역 한인교회의 신학과 교회는 어떠한가? 시카고 지역 한인교회가 현 당면한 문제들은 무엇인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교회가 없어진다거나 교인이 감소하는 것은 시카고 지역 한인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교회, 한국교회 등 우리 시대의 보편적 현상이다.
이런 문제의 원인이 신학의 부재 때문이라는 전제는 그리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그러나 만일 이것이 신학의 부재 때문이라고 한다면, 신학을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관건이다. 이 주제에 따르면, 신학은 교회의 본질을 규정하는 것이다. 바울의 서신은 교회의 위기에 대한 바울의 신학적 응답이라 볼 수 있는데 건강한 교회는 올바른 신학에 바탕을 둔 교회임에 틀림없다.
오늘 발제는 역으로, 시카고 지역 한인교회의 문제를 신학적으로 규명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을 주내용으로 하고 있다.
▲김진양 목사 |
성서가 말하는 직분자는 사명을 받아 섬기는 사람이다. 성서 속의 직분자들은 헌신과 섬김으로 존경과 권위를 얻었다. 그러나 주류사회에서 소외당한 경험을 가진 이민자들은 본능적으로 인생의 의미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공동체를 찾으며 교회가 이런 한인사회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지하고 있다. 교회의 직분이 이런 면에서 악용, 남용되기도 한다.
둘째, 한인교회의 성경공부와 같은 영성 교육의 목표가 본질을 잃고 있다. 경험에 비추어 보면, 많은 교회가 성경공부의 목적을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닌 교인 만들기에 두고 있는 듯 하다. 어떤 목회자는 교인을 자기 편으로 만들려는 의도를 가진 분도 있다. 성경 공부를 통해서는 다음과 같은 신학적 토론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은 오늘 우리와 어떤 관계를 맺고 계신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가” 더 나아가 구약과 신약을 통전적으로 읽고 해석할 수 있는 다양한 성경 공부 프로그램을 목회자들이 연구해야 할 것이다.
신학적 성경 공부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목회자가 신학교에 가서 교육을 받던지, 혹은 신학교가 목회자들을 찾아 가든지 하는 물리적 장소 이동이 필요하다. 신학자는 목회 현장에 가서 목회자의 이야기를 듣고 그 곳에 맞게 커리큘럼을 짜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어렵다면 한국신학연구소가 운영하는 월요성서학당과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신학과 목회의 괴리를 줄여 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한인교회가 개교회마다 가질 수 있는 독특한 맛과 향기를 잃고 있다. 지금 한인교회는 양적 성장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는 듯 보인다. 1명의 제자보다 10명의 교인을 선호하는 듯 하다. 많은 미국인들이 한국교회라고 하면 폭발적인 양적 성장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이 양적 성장이 오늘 우리가 직면한 문제점 앞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이민교회는 양적 성장을 향한 천편일률식 교회관을 재고해야 한다. 그리고 각 교회가 교회마다 특성과 환경에 맞는 독특한 맛을 내는 그런 교회의 모습을 그려 가야 한다. 어떤 교회는 말씀공부에 전념하는 교회로, 어떤 교회는 이민사회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응답하고 해결해 가는 참여적 교회로서의 사명을 감당해 가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현 한인교회는 교회의 본질을 신학적 차원에서 다시 한번 점검해야 한다. 따라서 신학의 부재가 현 한인교회의 전적인 문제는 아니지만 시카고 지역 한인교회의 위기를 신학과의 대화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은 바람직한 접근이다. 양자의 대화를 통해 신학은 그 깊이가 더욱 깊어지고 교회는 영성의 깊이가 풍성해 지길 기대해 본다.
▲서창권 목사 |
성경 공부의 문제는 새로운 개발보다는 현재 있는 교재들을 각 교회의 컨텍스트에 맞게 잘 선택하고 적절하게 적용해 사용하는 것이 좋다. 요즘은 성경공부 프로그램 홍수의 시대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 훈련은 성경을 가르치는 것에 있다기보다는 삶을 통해 배우는 것이었다. 현재 각 교회가 도입하고 있는 성경공부가 그런 형식으로 변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주목할 것은 예수님과 3년간 먹고 자며 배운 제자들이 막상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앞에서 취한 행동들이다. 그런 제자들이 실제로 변한 사건은 오순절 성령 체험이었다. 성도의 변화에 있어서 성령 체험의 중요성이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된다고 볼 수 있다. 성경공부는 성경에 대한 확실한 이해와 성령의 강력한 체험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김 목사님의 세번째 의견에는 부분적으로 동의하지만 모든 교회가 각각 독특한 맛을 내기 위해 인위적으로 노력을 기울이는 것에 대해서는 오히려 반대한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요즘은 각 교회만의 특성을 따지기 어려운 시대다. 옛날에는 장로교인은 이민을 와도 장로교회로 가고 감리교인은 감리교회로 가고 순복음교인은 순복음교회로 갔다. 그러나 요즘은 교단을 초월해서 성도들이 이동한다. 목회를 해 보면, 한 교회 안에 여러 교단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들의 신앙적 배경에 따라 그들은 다양한 요구를 해 온다. 기도회를 강조하는 사람도 있고 제자훈련을 강조하는 사람도 있다. 교회 입장에서는 성도들의 다양한 요구를 최대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많은 교회들이 비슷해 질 수 밖에 없는 현상이 일어난다. 여기서 우리가 추구할 것은 각 교회가 가진 맛이라기보다는 건강한 교회다. 건강한 교회라는 기초 위에 담임 목회자의 목회적 철학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그 교회의 특성이 규정된다면 그것을 각 교회가 가진 맛이라고 부를 수 있지만 인위적으로 “우린 제자훈련하는 교회”라고 규정하고 목회하는 것은 균형을 상실할 수 있다고 본다.
▲김광태 목사 |
그렇다면 이런 것들이 우리의 목회에 어떻게 반영이 되어야 할까? 교회의 목회적 방향은 목회자에게서 나온다. 즉, 목회자가 교회를 이끌어 가는 방향을 제시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목회자가 교회의 존재, 목표, 즉 교회론에 관해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느냐가 목회의 방향을 결정한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이런 교회관을 갖고 이렇게 목회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으나 사실 목회라는 것은 자신이 가진 신학을 끊임없이 펼쳐가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우리 가운데 신학을 모르는 목회자는 없다. 누구나 정규 신학 공부를 마쳐야 목회자로 안수받을 수 있다. 그러나 보통 교회에 신학이 없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목회에 신학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제는 목회자가 성도에게 “말씀대로 살지 않는군요, 말씀을 삶에 적용하지 않는군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맥략이다. 우리는 이런 문제를 겪는 성도들에게 제자훈련이라든지, 말씀 묵상 훈련을 시킨다. 마찬가지로 신학을 목회에 적용하지 못하는 목회자가 있다면 우리가 신학을 깊이 묵상하고 그것을 어떻게 목회에 적용시킬 것인지 끊임없이 연구를 거듭해야 한다. 그리고 이 연구에서 나온 산물이 바로 목회의 비전이 되는 것이고 목회를 위한 신학이 되는 길이다.
이 땅의 모든 교회는 불완전하다. 나는 이런 불완전한 교회를 가장 이상적인 신학적 지평에 근접한 교회로 끌어 올리는 것이 목회라고 본다. 김진양 목사님의 많은 지적들은 나로서도 상당히 공감하는 이야기이다. 빌 하이벨스, 옥한흠 목사님 모두 평생을 제자훈련에 바친 분들인데 최근 그 제자훈련이 실패라고 고백했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외치고 가르치고 훈련했는데 실제로는 성도들이 그렇게 못 살더란 이야기다. 그러나 내가 볼 때 이분들은 실패한 분들이 아니다. 그 과정을 지금도 가고 있는 것이다. 목회도 마찬가지다. 신학적으로 완성되어 보이는 완벽한 교회가 지금 나타나 있지 않다고 해서 우리 목회가 실패는 아니다. 그 목표와 비전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이미 신학적 과정이다.
현실의 모든 교회는 신학의 부재를 겪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학이 목회로 온전히 드러난 교회는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나는 그것을 아주 긍정적이라 평가하고 싶다.
또 한가지 덧붙일 말은, 서 목사님의 의견처럼 성도들의 변화는 결국 성령에 의해서 이뤄진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변화도 성령에 의해서 이뤄진다. 목회에 신학이 없다는 말, 곧 신학이 완벽히 적용되는 완전한 교회가 없다는 말은 결국 신학을 목회로 구현해내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한 말이다. 이 역시, 성도의 변화처럼 성령의 개입 없이는 결국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닐까? 우리가 심고 물을 주지만 결국 자라게 하시는 이는 성령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도 여전히 노력하고 수고해야 마땅하지만 성령에 철저히 의존하는 것이 바람직한 목회의 자세라고 본다.
(신동수 목사님의 제2 발제와 코멘트가 다음 보도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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