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의 유리 현상은 한인교회 전반에 걸쳐 과거부터 깊게 제기되어 온 문제다. 한 극단에서는 신학적 지성이 목회 현장의 영성을 제한하는 방해 요소로 취급되기도 하고 또 다른 극단에서는 목회적 열성이 신학없이 표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에 본지는 현재 신학교에서 학업 중이면서 동시에 한인교회에서 목회를 함께 하고 있는 목회자들을 만나 신학의 학문성과 목회의 현장성 간에 일치점을 찾아 본다. 시카고 지역에는 게렛신학교, 노스팍신학교, 루터란신학교, 맥코믹신학교, 무디신학교, 북침례신학교, 시베리웨스턴신학교, 시카고신학교, 시카고대 신학대학원, 위튼대학교, 트리니티신학교 등 다양한 신학교가 밀집돼 있으며 최근 한 통계에서 미국 전역에서 신학생 배출율 1위 도시인만큼 이 문제를 논하기에 좋은 토양을 갖고 있다.
여덟번째 인터뷰는 트리니티신학교에서 선교학으로 Ph.D. 중에 있는 김주헌 목사다. 그는 연세대학교에서 중어중문학으로 B.A. 학위를 받았다. 당시는 한중 수교 이전이었지만 그는 한국과 중국의 관계, 특히 문화에 관해 큰 관심을 갖고 연세대 국제대학원으로 진학해 동아시아학으로 M.A. 학위를 받았다. 대학 시절, 처음 신앙 생활을 시작하며 한국의 대표적 침례교 목회자인 이동원 목사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김 목사는 대전침례신학교로 진학해 M.Div. 학위와 선교학으로 Th.M.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곧장 시카고로 유학와 트리니티신학교에서 선교학으로 Ph.D. 과정을 밟고 있다. 한국에서 한국기독교침례회 세계선교훈련원에서 총무를 맡은 경험이 있으며 시카고에서는 샴버그침례교회에서 청년부 담당목사로 섬긴 바 있다. 4년 전, 한중미문화교류연구소를 설립했으며 이곳의 소장으로 있다.
-선교학에 대한 간략한 소개나 정의부터 부탁드립니다.
사실 선교학은 아직 정식 신학의 한 분야로 인정받지 못하는 감이 있습니다. 여러 학문과의 대화를 통해 기독교적 적용을 중시하다 보니 짬뽕 학문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 어떤 교회나 복음도 사회나 문화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고 역으로 복음은 사회와 문화의 변화를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저는 선교학을 “복음과 교회가 우리가 살고 있는 문화에 어떤 의미를 갖고 전달되며 어떻게 사회를 섬기고 봉사할지 고민하고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선교학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해외선교라는 경계를 넘어 있습니다. 과거의 선교학은 전통적으로 선교 역사에 대한 연구였습니다. 그런데 1945년,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본격적으로 세계선교에 동참하면서부터 선교학의 경계가 넓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선교사들이 세계 곳곳에서 2백년 가까이 복음을 전했는데 그 복음이 우리가 원하는대로 선교지에 정착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반성적 시각에서 보니, 복음을 전한 선교사들과 복음을 받은 현지인들의 문화가 달랐음을 알게 됐습니다.
예를 들면, 선교학계의 논쟁 중에 유명한 사례가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합니다. 양이란 것은 양이 가진 독특한 특징 외에도 신학적으로 깊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문화에서 양이 갖는 의미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는 희생 제물이며,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순결한 제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파푸아뉴기니에는 양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했을 때, 양이 무엇인지도 모를 뿐 아니라 유대인의 양이 가진 고유한 의미를 포착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들이 유대인의 양과 같은 의미를 현지인에게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동물을 찾았는데 그것이 바로 돼지였습니다. 현지인들이 애완동물처럼 집에서 키우며 사랑하고 축제 때에는 잡아 먹게 되는 동물인 돼지가 양에 가장 근접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돼지’라고 번역해야 현지인들에게 가장 제대로 어린 양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돼지는 혐오스러운 동물로 묘사됩니다. 이 논쟁이 선교학계에서는 한동안 굉장히 뜨거웠습니다. 결론적으로 “성경에 나타난 고유한 계시와 상징을 존중해야 한다”고 매듭지어졌습니다.
지금 우리가 볼 때, 이 논쟁은 우스운 감이 있지만 이 논쟁이 가져온 파장은 컸습니다. 선교에 있어서, 복음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문화라는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 문화라는 개념이 194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선교학의 중요한 이슈였습니다.
-선교학이 선교 역사에서 시작해 문화에 대한 이해로 넘어 왔군요. 요즘은 복음의 상황화가 선교지는 물론 목회 현장에서도 광범위하게 반영되고 있지 않습니까?
이 이슈는 성경 번역 문제에서 시작됐지만 교회 시스템과 행정, 신학적인 모든 면에서 반영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건물의 형태까지도 서구식의 첨탑 교회가 아닌 현지의 문화에 맞게 지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자유주의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일본에 교회가 부흥하지 못한 이유를 상황화되지 못한 기독교에서 찾습니다. 기독교가 일본의 문화와 상황에 따라 변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급진적인 사람들은 일본 교회의 건물이 왜 서구식이어야 하는가, 신도처럼 건물을 지으면 왜 안되는가, 심지어 신도에서 예배를 드리면 왜 안되는가라고까지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상황화는 혼합주의를 자초할 위험도 있습니다.
-이 논쟁이 1960년대까지의 이슈이면 그 다음 시대의 이슈는 무엇이었습니까?
선교지에서의 이슈 뿐 아니라 지금 교회가 있는 사회 속에서 교회가 어떻게 그 사회를 섬겨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 교회성장학이라고 알려진 것도 선교학적인 생각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 분야의 선두 주자라 할 수 있는 맥가브란은 3대째 인도 선교사였습니다. 그는 왜 인도가 복음의 불모지가 됐는가를 고민한 사람입니다. 그는 인도가 가진 독특한 카스트 제도가 복음을 가로막는 한 요인 중 하나지만 이것을 이용해 오히려 동등한 카스트에 속한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를 만들면 부흥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관점은 교회가 계층화를 조장한다는 극한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물론 교회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계급과 계층이 무너져야 합니다. 그러나 북미나 한국이나 대부분의 교회에서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어떤 교회에 가면 지식인층이 많고 어떤 교회에 가면 경상도 혹은 전라도 출신들이 많습니다. 초기 한국교회도 그러했고 이민목회에도 그런 경향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맥가브란을 통해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사람들의 삶의 형태가 어떤지를 배운 제자들은 한 발짝 더 나아가 사회적 관점을 교회 성장에 적용했습니다. 교통이 좋은 곳에 교회를 개척해야 부흥이 잘 되고 셔틀 버스를 어떻게 운행해야 하고 하는 그런 주제들이 모두 여기서 나왔습니다.
-선교학이 선교지 뿐 아니라 기독교세가 강한 국가에서도 응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복음과 문화에 대한 인식이 그만큼 확산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 할 수 있겠네요. 그럼 요즘 선교학에서는 최고의 화두로 무엇을 꼽습니까?
요즘 복음주의권 선교학계에서 보는 최대의 이슈는 세계화입니다. 세계화는 굉장히 광범위한 주제이고 인류의 삶의 모든 분야를 다루고 있기에 말하기 조심스런 주제지만 선교학적 관점에서 세계화를 보면 몇가지 재미난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더 이상 영미를 중심으로 한 서구가 선교의 중심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아시아의 한국, 남미의 브라질, 아프리카의 남아공, 나이지리아 등 대륙마다 선교에 열심을 내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한국이 미국에 이은 선교대국이란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싱가폴은 교회의 수가 한국보다 훨씬 적지만 그 교회들이 파송한 교회당 선교사 파송 비율은 오히려 한국보다 높습니다. 인도의 경우도 한 나라이지만 서로 완전히 다른 문화권으로 기독교 선교사를 보내는 내국인 선교사가 아주 많습니다. 이런 현상 속에서 선교의 주체 문제, 파트너십의 문제가 선교학계의 주요한 이슈로 등장했습니다. 한국교회는 세계적으로 성장한 교회 중 하나이지만 다른 나라의 선교단체나 기관들과 협력하는 면에서는 크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화를 주요한 주제로 삼을 때, 이민목회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결코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세계화는 좋은 현상이지만 윤리적인 면에 있어서 비판적으로 접근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세계화, 세계화 하지만 사실 어떤 면에서 이것을 맥도날드 체인점이 서듯이 획일화 되는 “mcdonaldization”이라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선교학에서는 세계화를 “hybridization”이란 개념, 즉, 잡종화로 접근해 보는 것이 더 적절하겠습니다. 저는 이것을 혼성화라고 번역하고 싶습니다. 혼성화는 세계적 문화와 로컬의 문화가 섞이면서 새로운 문화적 다이내믹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이 혼성화 현상은 이민목회자들이 알아야 할 중요한 주제입니다.
코리안 어메리칸은 혼성화된 문화 속에 있습니다. 미국에 살면서 한국적 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2세들의 경우는 영어와 미국 문화에 익숙하지만 한국 문화도 알고 있으며 쉽게 적응을 합니다. 이민 목회자들이 이런 점을 잘 사용하면 미주 한인들이 세계선교와 특히 한국에까지 거대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게 됩니다.
-미국에 있는 한인들이야 당연히 혼성적 문화 속에 살고 있지만 요즘은 한국도 세계화의 경향 속에 있지요?
물론입니다. 한국 사회도 혼성화된 문화가 역동적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세계화 시대의 당연한 산물입니다. 특히 한국에 동남아시아 출신 노동자들이 대거 유입되고 있으며 탈북자, 재일동포, 조선족, 고려인 등 다른 문화권에서 온 한인 동포들도 유입되고 있습니다. 유승준 군이나 박재범 군 같은 이들의 경우는 미주 한인 동포였습니다.
한국 사회 역시 혼성화 현상을 겪고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먼저 겪은 미주 한인들이 경험을 바탕으로 이 현상을 잘 분석해 패러다임화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교학의 주제가 혼성화라고 하면 이것으로 미주 한인 사회의 1세와 2세 문제를 진단해 볼 수 있겠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조선족에 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중국 국적을 가졌지만 그 안에서 한국 문화를 영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을 보면 한국 문화인 것 같으면서도 상당히 다른 문화를 갖고 있고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국적 문제에 있어서 중국이라고 합니다. 한국도 아니고 중국도 아닌, 그렇다고 둘다 아닌 것도 아닌 그런 성향입니다.
제가 조선족을 연구하면서, 미주 한인을 볼 때 미주 한인들의 혼성화도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미주 한인은 아주 독특한 정체성이 있습니다. 일명 트윙키나 바나나라고 합니다. 트윙키나 바나나는 겉은 노란데 안은 하얗습니다. 그것처럼 얼굴이나 생김새는 황인종 동양인인데 사고방식은 완전히 백인처럼 서구화 된 존재입니다. 우리가 조선족을 대할 때, 이들의 친중국적 태도를 보면 “이들이 과연 동포가 맞나”라고까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2세들을 볼 때 이들이 생김새가 우리와 같다고 해서 이들을 한국 사람처럼 대하면 안됩니다. 1세들도 이민 와서 고생을 많이 하지만 사실 2세들이 겪는 것에 비할 수 없습니다. 1세들은 자녀 교육을 위해 미국에 왔다고 하지만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그들을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당장의 생존을 위해 돈을 버는 일에 집중합니다. 우리 2세들은 백인 중심의 사회 속에 살고 있습니다. 자연히 직장에서 돈을 벌고 있는 부모들이 느끼지 못하는 문제를 겪게 됩니다. 백인 사회 속의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 학교를 가고 파티를 가도 주목 받지 못하고 누구도 말을 걸어 주지 않는 “없는 사람”처럼 여겨집니다. 거기에 가족으로부터의 상실감, 사회로부터의 소외감을 겪으면서 이들은 큰 상처를 받습니다. 그리고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한국 정체성을 심어주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그들을 한국인처럼 대합니다. 1세와 2세의 갈등 문제를 요약한다면 첫째, 1세들이 2세들의 혼성화된 정체성을 이해 못하고 있으며, 둘째, 그들이 겪는 아픔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셋째, 한국 정체성을 심어주려고 노력도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현실적인 문제를 잘 지적해 주셨습니다. 문제를 찾을 수 있다면, 당연히 그 답도 선교학적으로 찾아 낼 수 있겠지요?
요즘의 추세는 트랜스내셔널리즘(transnationalism)입니다. 한 사람이 국가나 나라의 범위를 넘어 두 나라 혹은 더 이상의 나라나 문화와 연계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여러 문화를 갖고 향유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미국에 이민을 오면 미국에 동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명 ‘멜팅 팟(Melting Pot)’ 이론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미국 이민자들이 자신의 고유한 문화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서 ‘샐러드 볼(Salad Bowl)’ 이론이 나왔습니다 각자 고유한 맛을 가지면서 그것이 조화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보면, 각각의 이민자 그룹이 세계화 시대에 들어 오면서 본국과 더욱 긴밀하게 연결되는 현상을 보게 됩니다. 우리만 해도,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 대중 가요를 부르며 한국 TV를 봅니다. 한국 신문도 볼 수 있습니다. 방학만 되면 자녀들이 한국에 나갑니다. 뉴욕이나 LA는 한국 기업으로부터 2세들이 많이 채용돼 한국으로 갑니다. 한국을 대상으로 마케팅하는 미국 기업이 우리 2세들을 채용하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 2세들에게 한국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정립되느냐에 따라 2세들의 삶도 달라집니다. 이제 한국은 과거의 못사는 빈국이 아닙니다. 한국이 세계적 강국으로서 영향력을 가지며, 한류를 기반으로 문화적 강국을 유지해 가는 이 시점에 우리 2세들에게 한국을 어떻게 심어 주느냐가 중요한 과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교회는 어떨까요? 이제 미주 한인교회가 한국교회와의 관계를 정립해야 합니다. 지금의 미주 한인과 한국은 문화와 경제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복음과 크리스천 가치관으로 연결시킬 수 있을까요? 미주의 한인 2세들이 주류 사회 진출도 좋지만 어떻게 하면 한국을 새롭게 인식하고 한국에서 크게 쓰임받으며 세계 선교의 자원으로 사용될 수 있게 할까요?
물론, 이들은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인들이니 더욱 미국화되거나 혹은 2세들에게 맞는 무엇인가를 개발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세계화라는 상황과 현재의 추세에서 본다면 한국 문화를 더욱 잘 가르치고 한국과 미국의 트랜스내셔널리티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미국에 살지만 내가 살 사회적 공간을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가 삶의 지혜이며 돌파구입니다. 무조건 생존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의 공간을 미국 속에서 만들어 가는 지혜와 창의성이 필요합니다. 한가지 기쁜 소식은 우리 2세들이 한민족으로서의 부정적 생각을 버리고 있으며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 북한을 향한 선교적 열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한국에 귀농 현상과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도시 생활을 오래 하던 사람이 고향이 그리워 농촌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우리 2세들인 한국을 알고 싶고, 자신의 뿌리를 찾고 싶어서 한국을 방문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리턴 마이그레이션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이민학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목사님이 지적하신 것처럼 우리 한인 1세들이 2세들에게 미국만 생각하게 했지 세계화적 흐름을 읽고 그들을 세계화 시대의 리더로 양성하는 데에는 미진한 점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브라질은 일본 이민자 사회가 굉장히 크고 역사도 오래 됐습니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일본이 경제가 성장하면서 동남아시아 사람들을 많이 데려다 고용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같은 동포를 고용하면 말도 잘 통하고 좋을 것 같았습니다. 당연하지요? 그래서 눈을 돌린 것이 브라질의 일본인 2세, 3세들입니다. 브라질의 일본인 후손들도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모국에 대한 동경이 있었기 때문에 일본으로 일하기 위해 떠났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공존할 수 있었을까요? 이들은 생김새만 같았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문화도 다르고 사고 방식도 다르고 일하는 스타일도 달랐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밤만 되면 라디오를 틀고 춤추고 노래 부르는 브라질 일본인 동포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일하는 시간도 잘 지키지 못했습니다. 작은 목소리로 소근소근 말하는 일본인들에 비해 브라질 출신 일본인들을 목소리도 컸습니다. 결국 일본인들은 브라질 일본인 동포들을 무식하고 천박한 존재로 인식하게 됐습니다. 그러자 이에 대한 반감을 가진 브라질 일본인들은 오히려 브라질 문화를 더욱 지키는 것으로 대응하게 됩니다. 브라질에 있을 때는 천박하다 여겨 참석조차 안 했던 삼바 축제를 그들이 주도해 일본에서 열 정도였습니다.
우리 2세들도 이제 한국을 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에 가 보면 그들이 상상했던 기대들이 부서집니다. 이런 현상을 방지해 줄 수 있는 노력을 우리 목회자들이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 2세들의 한국 러시 현상을 어떻게 선교적으로 보고 선교적으로 정립할 것인가 고민해야 합니다. 지금 한국을 찾는 2세들에겐 한국에 정착할 수 있는 어떤 제도적 뒷받침이 없습니다. 집을 구하는 것, 문화에 적응하는 것 등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한민족 공동체론을 주장하는데 선교적 구호로만 그치지 현실적으로 많은 문제에 노출돼 있습니다. 영어도 잘하고 국제적 감각도 있는 좋은 자원들이 한국에서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 문제입니다.
-시카고 이민교회 내에 특별히 혼성화적 경향에 관해서도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을까요?
북미 상황에서는 시카고가 참 재미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LA나 뉴욕은 한인도 많고 한인교회도 큽니다. 2세들은 한국말도 더 잘하고 한국을 좀더 가깝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지금 시카고의 2세를 볼 때는, 2세 교회들의 독립 현상이 중요한 사건 같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 일이 마치 요한계시록에 나타나는 것처럼 모든 인종적 장벽이 무너지는 교회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2세 교회가 흑인, 백인까지 오는 다인종, 다민족교회로 가거나 혹은 범아시안 교회로 성장해 가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현상입니다.
다만 모든 한인교회가 이렇게 가야 한다는 주장은 경계하고 싶습니다. 왜냐면 이 다민족 교회 현상을 보면 이 곳에 오는 모든 이들은 피부 색만 다르지 사실 동일하게 미국 문화를 기반으로 혼성화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다민족교회를 찾는 이들 가운데 동양인과 결혼한 백인이라든지, 미주의 아시안 2세들이라든지가 좋은 예입니다. 이들은 혼성화된 문화적 경험에 더하여 모두 영어를 사용하고, 미국 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즉, 다민족화 되어 있긴 하지만 이들 안에 존재하는 문화는 사실 단일한 문화인 셈입니다
다민족교회는 바로 혼성화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만드는 새로운 삶의 공간입니다. 그런 점에서 박수치고 기뻐할 일이지만 모든 2세 교회가 다민족화 되어야 하고 결국 1세 교회는 없어질 것이라는 주장은 옳지 않습니다. 저는 오히려 한국인들만 모이는 한인교회는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문화적 경계이며 이것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 있다고 믿습니다.
-선교학 분야이니만큼 해외선교에 관한 질문도 빼 놓을 수 없겠습니다. 해외선교가 미주 한인들에게 줄 수 있는 긍정적 영향을 선교학적 면에서 꼽는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트리니티신학교는 그런 면에서도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단기선교를 다녀온 사람들이 타민족을 대하는 배타적 태도가 얼마나 극복될 수 있는가입니다. 선교의 경험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는 면은 물론이고 제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한인 공동체가 세계화 시대에 걸맞는 세계적 일꾼으로 자라기 위해 필요한 다양성과 관용의 정신을 고양시켜 줄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세계 선교 현장에서의 협력, 곧 파트너십이 강조될 것이고 많은 선교의 주체들이 모일 때 서로의 문화의 차이와 리더십 등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이런 부분에서도 미주 한인들이 세계 선교에 동참할 때 장점이 있습니다. 이미 삶으로 축적된 경험과 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네. 목사님. 오늘 인터뷰 감사합니다.
여덟번째 인터뷰는 트리니티신학교에서 선교학으로 Ph.D. 중에 있는 김주헌 목사다. 그는 연세대학교에서 중어중문학으로 B.A. 학위를 받았다. 당시는 한중 수교 이전이었지만 그는 한국과 중국의 관계, 특히 문화에 관해 큰 관심을 갖고 연세대 국제대학원으로 진학해 동아시아학으로 M.A. 학위를 받았다. 대학 시절, 처음 신앙 생활을 시작하며 한국의 대표적 침례교 목회자인 이동원 목사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김 목사는 대전침례신학교로 진학해 M.Div. 학위와 선교학으로 Th.M.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곧장 시카고로 유학와 트리니티신학교에서 선교학으로 Ph.D. 과정을 밟고 있다. 한국에서 한국기독교침례회 세계선교훈련원에서 총무를 맡은 경험이 있으며 시카고에서는 샴버그침례교회에서 청년부 담당목사로 섬긴 바 있다. 4년 전, 한중미문화교류연구소를 설립했으며 이곳의 소장으로 있다.
-선교학에 대한 간략한 소개나 정의부터 부탁드립니다.
사실 선교학은 아직 정식 신학의 한 분야로 인정받지 못하는 감이 있습니다. 여러 학문과의 대화를 통해 기독교적 적용을 중시하다 보니 짬뽕 학문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 어떤 교회나 복음도 사회나 문화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고 역으로 복음은 사회와 문화의 변화를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저는 선교학을 “복음과 교회가 우리가 살고 있는 문화에 어떤 의미를 갖고 전달되며 어떻게 사회를 섬기고 봉사할지 고민하고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선교학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해외선교라는 경계를 넘어 있습니다. 과거의 선교학은 전통적으로 선교 역사에 대한 연구였습니다. 그런데 1945년,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본격적으로 세계선교에 동참하면서부터 선교학의 경계가 넓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선교사들이 세계 곳곳에서 2백년 가까이 복음을 전했는데 그 복음이 우리가 원하는대로 선교지에 정착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반성적 시각에서 보니, 복음을 전한 선교사들과 복음을 받은 현지인들의 문화가 달랐음을 알게 됐습니다.
예를 들면, 선교학계의 논쟁 중에 유명한 사례가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합니다. 양이란 것은 양이 가진 독특한 특징 외에도 신학적으로 깊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문화에서 양이 갖는 의미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는 희생 제물이며,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순결한 제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파푸아뉴기니에는 양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했을 때, 양이 무엇인지도 모를 뿐 아니라 유대인의 양이 가진 고유한 의미를 포착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들이 유대인의 양과 같은 의미를 현지인에게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동물을 찾았는데 그것이 바로 돼지였습니다. 현지인들이 애완동물처럼 집에서 키우며 사랑하고 축제 때에는 잡아 먹게 되는 동물인 돼지가 양에 가장 근접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돼지’라고 번역해야 현지인들에게 가장 제대로 어린 양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돼지는 혐오스러운 동물로 묘사됩니다. 이 논쟁이 선교학계에서는 한동안 굉장히 뜨거웠습니다. 결론적으로 “성경에 나타난 고유한 계시와 상징을 존중해야 한다”고 매듭지어졌습니다.
지금 우리가 볼 때, 이 논쟁은 우스운 감이 있지만 이 논쟁이 가져온 파장은 컸습니다. 선교에 있어서, 복음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문화라는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 문화라는 개념이 194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선교학의 중요한 이슈였습니다.
-선교학이 선교 역사에서 시작해 문화에 대한 이해로 넘어 왔군요. 요즘은 복음의 상황화가 선교지는 물론 목회 현장에서도 광범위하게 반영되고 있지 않습니까?
이 이슈는 성경 번역 문제에서 시작됐지만 교회 시스템과 행정, 신학적인 모든 면에서 반영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건물의 형태까지도 서구식의 첨탑 교회가 아닌 현지의 문화에 맞게 지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자유주의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일본에 교회가 부흥하지 못한 이유를 상황화되지 못한 기독교에서 찾습니다. 기독교가 일본의 문화와 상황에 따라 변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급진적인 사람들은 일본 교회의 건물이 왜 서구식이어야 하는가, 신도처럼 건물을 지으면 왜 안되는가, 심지어 신도에서 예배를 드리면 왜 안되는가라고까지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상황화는 혼합주의를 자초할 위험도 있습니다.
-이 논쟁이 1960년대까지의 이슈이면 그 다음 시대의 이슈는 무엇이었습니까?
선교지에서의 이슈 뿐 아니라 지금 교회가 있는 사회 속에서 교회가 어떻게 그 사회를 섬겨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 교회성장학이라고 알려진 것도 선교학적인 생각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 분야의 선두 주자라 할 수 있는 맥가브란은 3대째 인도 선교사였습니다. 그는 왜 인도가 복음의 불모지가 됐는가를 고민한 사람입니다. 그는 인도가 가진 독특한 카스트 제도가 복음을 가로막는 한 요인 중 하나지만 이것을 이용해 오히려 동등한 카스트에 속한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를 만들면 부흥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관점은 교회가 계층화를 조장한다는 극한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물론 교회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계급과 계층이 무너져야 합니다. 그러나 북미나 한국이나 대부분의 교회에서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어떤 교회에 가면 지식인층이 많고 어떤 교회에 가면 경상도 혹은 전라도 출신들이 많습니다. 초기 한국교회도 그러했고 이민목회에도 그런 경향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맥가브란을 통해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사람들의 삶의 형태가 어떤지를 배운 제자들은 한 발짝 더 나아가 사회적 관점을 교회 성장에 적용했습니다. 교통이 좋은 곳에 교회를 개척해야 부흥이 잘 되고 셔틀 버스를 어떻게 운행해야 하고 하는 그런 주제들이 모두 여기서 나왔습니다.
-선교학이 선교지 뿐 아니라 기독교세가 강한 국가에서도 응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복음과 문화에 대한 인식이 그만큼 확산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 할 수 있겠네요. 그럼 요즘 선교학에서는 최고의 화두로 무엇을 꼽습니까?
요즘 복음주의권 선교학계에서 보는 최대의 이슈는 세계화입니다. 세계화는 굉장히 광범위한 주제이고 인류의 삶의 모든 분야를 다루고 있기에 말하기 조심스런 주제지만 선교학적 관점에서 세계화를 보면 몇가지 재미난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더 이상 영미를 중심으로 한 서구가 선교의 중심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아시아의 한국, 남미의 브라질, 아프리카의 남아공, 나이지리아 등 대륙마다 선교에 열심을 내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한국이 미국에 이은 선교대국이란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싱가폴은 교회의 수가 한국보다 훨씬 적지만 그 교회들이 파송한 교회당 선교사 파송 비율은 오히려 한국보다 높습니다. 인도의 경우도 한 나라이지만 서로 완전히 다른 문화권으로 기독교 선교사를 보내는 내국인 선교사가 아주 많습니다. 이런 현상 속에서 선교의 주체 문제, 파트너십의 문제가 선교학계의 주요한 이슈로 등장했습니다. 한국교회는 세계적으로 성장한 교회 중 하나이지만 다른 나라의 선교단체나 기관들과 협력하는 면에서는 크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화를 주요한 주제로 삼을 때, 이민목회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결코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세계화는 좋은 현상이지만 윤리적인 면에 있어서 비판적으로 접근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세계화, 세계화 하지만 사실 어떤 면에서 이것을 맥도날드 체인점이 서듯이 획일화 되는 “mcdonaldization”이라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선교학에서는 세계화를 “hybridization”이란 개념, 즉, 잡종화로 접근해 보는 것이 더 적절하겠습니다. 저는 이것을 혼성화라고 번역하고 싶습니다. 혼성화는 세계적 문화와 로컬의 문화가 섞이면서 새로운 문화적 다이내믹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이 혼성화 현상은 이민목회자들이 알아야 할 중요한 주제입니다.
코리안 어메리칸은 혼성화된 문화 속에 있습니다. 미국에 살면서 한국적 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2세들의 경우는 영어와 미국 문화에 익숙하지만 한국 문화도 알고 있으며 쉽게 적응을 합니다. 이민 목회자들이 이런 점을 잘 사용하면 미주 한인들이 세계선교와 특히 한국에까지 거대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게 됩니다.
-미국에 있는 한인들이야 당연히 혼성적 문화 속에 살고 있지만 요즘은 한국도 세계화의 경향 속에 있지요?
물론입니다. 한국 사회도 혼성화된 문화가 역동적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세계화 시대의 당연한 산물입니다. 특히 한국에 동남아시아 출신 노동자들이 대거 유입되고 있으며 탈북자, 재일동포, 조선족, 고려인 등 다른 문화권에서 온 한인 동포들도 유입되고 있습니다. 유승준 군이나 박재범 군 같은 이들의 경우는 미주 한인 동포였습니다.
한국 사회 역시 혼성화 현상을 겪고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먼저 겪은 미주 한인들이 경험을 바탕으로 이 현상을 잘 분석해 패러다임화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교학의 주제가 혼성화라고 하면 이것으로 미주 한인 사회의 1세와 2세 문제를 진단해 볼 수 있겠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조선족에 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중국 국적을 가졌지만 그 안에서 한국 문화를 영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을 보면 한국 문화인 것 같으면서도 상당히 다른 문화를 갖고 있고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국적 문제에 있어서 중국이라고 합니다. 한국도 아니고 중국도 아닌, 그렇다고 둘다 아닌 것도 아닌 그런 성향입니다.
제가 조선족을 연구하면서, 미주 한인을 볼 때 미주 한인들의 혼성화도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미주 한인은 아주 독특한 정체성이 있습니다. 일명 트윙키나 바나나라고 합니다. 트윙키나 바나나는 겉은 노란데 안은 하얗습니다. 그것처럼 얼굴이나 생김새는 황인종 동양인인데 사고방식은 완전히 백인처럼 서구화 된 존재입니다. 우리가 조선족을 대할 때, 이들의 친중국적 태도를 보면 “이들이 과연 동포가 맞나”라고까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2세들을 볼 때 이들이 생김새가 우리와 같다고 해서 이들을 한국 사람처럼 대하면 안됩니다. 1세들도 이민 와서 고생을 많이 하지만 사실 2세들이 겪는 것에 비할 수 없습니다. 1세들은 자녀 교육을 위해 미국에 왔다고 하지만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그들을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당장의 생존을 위해 돈을 버는 일에 집중합니다. 우리 2세들은 백인 중심의 사회 속에 살고 있습니다. 자연히 직장에서 돈을 벌고 있는 부모들이 느끼지 못하는 문제를 겪게 됩니다. 백인 사회 속의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 학교를 가고 파티를 가도 주목 받지 못하고 누구도 말을 걸어 주지 않는 “없는 사람”처럼 여겨집니다. 거기에 가족으로부터의 상실감, 사회로부터의 소외감을 겪으면서 이들은 큰 상처를 받습니다. 그리고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한국 정체성을 심어주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그들을 한국인처럼 대합니다. 1세와 2세의 갈등 문제를 요약한다면 첫째, 1세들이 2세들의 혼성화된 정체성을 이해 못하고 있으며, 둘째, 그들이 겪는 아픔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셋째, 한국 정체성을 심어주려고 노력도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현실적인 문제를 잘 지적해 주셨습니다. 문제를 찾을 수 있다면, 당연히 그 답도 선교학적으로 찾아 낼 수 있겠지요?
요즘의 추세는 트랜스내셔널리즘(transnationalism)입니다. 한 사람이 국가나 나라의 범위를 넘어 두 나라 혹은 더 이상의 나라나 문화와 연계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여러 문화를 갖고 향유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미국에 이민을 오면 미국에 동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명 ‘멜팅 팟(Melting Pot)’ 이론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미국 이민자들이 자신의 고유한 문화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서 ‘샐러드 볼(Salad Bowl)’ 이론이 나왔습니다 각자 고유한 맛을 가지면서 그것이 조화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보면, 각각의 이민자 그룹이 세계화 시대에 들어 오면서 본국과 더욱 긴밀하게 연결되는 현상을 보게 됩니다. 우리만 해도,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 대중 가요를 부르며 한국 TV를 봅니다. 한국 신문도 볼 수 있습니다. 방학만 되면 자녀들이 한국에 나갑니다. 뉴욕이나 LA는 한국 기업으로부터 2세들이 많이 채용돼 한국으로 갑니다. 한국을 대상으로 마케팅하는 미국 기업이 우리 2세들을 채용하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 2세들에게 한국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정립되느냐에 따라 2세들의 삶도 달라집니다. 이제 한국은 과거의 못사는 빈국이 아닙니다. 한국이 세계적 강국으로서 영향력을 가지며, 한류를 기반으로 문화적 강국을 유지해 가는 이 시점에 우리 2세들에게 한국을 어떻게 심어 주느냐가 중요한 과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교회는 어떨까요? 이제 미주 한인교회가 한국교회와의 관계를 정립해야 합니다. 지금의 미주 한인과 한국은 문화와 경제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복음과 크리스천 가치관으로 연결시킬 수 있을까요? 미주의 한인 2세들이 주류 사회 진출도 좋지만 어떻게 하면 한국을 새롭게 인식하고 한국에서 크게 쓰임받으며 세계 선교의 자원으로 사용될 수 있게 할까요?
물론, 이들은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인들이니 더욱 미국화되거나 혹은 2세들에게 맞는 무엇인가를 개발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세계화라는 상황과 현재의 추세에서 본다면 한국 문화를 더욱 잘 가르치고 한국과 미국의 트랜스내셔널리티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미국에 살지만 내가 살 사회적 공간을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가 삶의 지혜이며 돌파구입니다. 무조건 생존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의 공간을 미국 속에서 만들어 가는 지혜와 창의성이 필요합니다. 한가지 기쁜 소식은 우리 2세들이 한민족으로서의 부정적 생각을 버리고 있으며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 북한을 향한 선교적 열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한국에 귀농 현상과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도시 생활을 오래 하던 사람이 고향이 그리워 농촌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우리 2세들인 한국을 알고 싶고, 자신의 뿌리를 찾고 싶어서 한국을 방문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리턴 마이그레이션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이민학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목사님이 지적하신 것처럼 우리 한인 1세들이 2세들에게 미국만 생각하게 했지 세계화적 흐름을 읽고 그들을 세계화 시대의 리더로 양성하는 데에는 미진한 점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브라질은 일본 이민자 사회가 굉장히 크고 역사도 오래 됐습니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일본이 경제가 성장하면서 동남아시아 사람들을 많이 데려다 고용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같은 동포를 고용하면 말도 잘 통하고 좋을 것 같았습니다. 당연하지요? 그래서 눈을 돌린 것이 브라질의 일본인 2세, 3세들입니다. 브라질의 일본인 후손들도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모국에 대한 동경이 있었기 때문에 일본으로 일하기 위해 떠났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공존할 수 있었을까요? 이들은 생김새만 같았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문화도 다르고 사고 방식도 다르고 일하는 스타일도 달랐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밤만 되면 라디오를 틀고 춤추고 노래 부르는 브라질 일본인 동포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일하는 시간도 잘 지키지 못했습니다. 작은 목소리로 소근소근 말하는 일본인들에 비해 브라질 출신 일본인들을 목소리도 컸습니다. 결국 일본인들은 브라질 일본인 동포들을 무식하고 천박한 존재로 인식하게 됐습니다. 그러자 이에 대한 반감을 가진 브라질 일본인들은 오히려 브라질 문화를 더욱 지키는 것으로 대응하게 됩니다. 브라질에 있을 때는 천박하다 여겨 참석조차 안 했던 삼바 축제를 그들이 주도해 일본에서 열 정도였습니다.
우리 2세들도 이제 한국을 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에 가 보면 그들이 상상했던 기대들이 부서집니다. 이런 현상을 방지해 줄 수 있는 노력을 우리 목회자들이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 2세들의 한국 러시 현상을 어떻게 선교적으로 보고 선교적으로 정립할 것인가 고민해야 합니다. 지금 한국을 찾는 2세들에겐 한국에 정착할 수 있는 어떤 제도적 뒷받침이 없습니다. 집을 구하는 것, 문화에 적응하는 것 등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한민족 공동체론을 주장하는데 선교적 구호로만 그치지 현실적으로 많은 문제에 노출돼 있습니다. 영어도 잘하고 국제적 감각도 있는 좋은 자원들이 한국에서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 문제입니다.
-시카고 이민교회 내에 특별히 혼성화적 경향에 관해서도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을까요?
북미 상황에서는 시카고가 참 재미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LA나 뉴욕은 한인도 많고 한인교회도 큽니다. 2세들은 한국말도 더 잘하고 한국을 좀더 가깝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지금 시카고의 2세를 볼 때는, 2세 교회들의 독립 현상이 중요한 사건 같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 일이 마치 요한계시록에 나타나는 것처럼 모든 인종적 장벽이 무너지는 교회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2세 교회가 흑인, 백인까지 오는 다인종, 다민족교회로 가거나 혹은 범아시안 교회로 성장해 가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현상입니다.
다만 모든 한인교회가 이렇게 가야 한다는 주장은 경계하고 싶습니다. 왜냐면 이 다민족 교회 현상을 보면 이 곳에 오는 모든 이들은 피부 색만 다르지 사실 동일하게 미국 문화를 기반으로 혼성화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다민족교회를 찾는 이들 가운데 동양인과 결혼한 백인이라든지, 미주의 아시안 2세들이라든지가 좋은 예입니다. 이들은 혼성화된 문화적 경험에 더하여 모두 영어를 사용하고, 미국 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즉, 다민족화 되어 있긴 하지만 이들 안에 존재하는 문화는 사실 단일한 문화인 셈입니다
다민족교회는 바로 혼성화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만드는 새로운 삶의 공간입니다. 그런 점에서 박수치고 기뻐할 일이지만 모든 2세 교회가 다민족화 되어야 하고 결국 1세 교회는 없어질 것이라는 주장은 옳지 않습니다. 저는 오히려 한국인들만 모이는 한인교회는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문화적 경계이며 이것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 있다고 믿습니다.
-선교학 분야이니만큼 해외선교에 관한 질문도 빼 놓을 수 없겠습니다. 해외선교가 미주 한인들에게 줄 수 있는 긍정적 영향을 선교학적 면에서 꼽는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트리니티신학교는 그런 면에서도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단기선교를 다녀온 사람들이 타민족을 대하는 배타적 태도가 얼마나 극복될 수 있는가입니다. 선교의 경험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는 면은 물론이고 제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한인 공동체가 세계화 시대에 걸맞는 세계적 일꾼으로 자라기 위해 필요한 다양성과 관용의 정신을 고양시켜 줄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세계 선교 현장에서의 협력, 곧 파트너십이 강조될 것이고 많은 선교의 주체들이 모일 때 서로의 문화의 차이와 리더십 등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이런 부분에서도 미주 한인들이 세계 선교에 동참할 때 장점이 있습니다. 이미 삶으로 축적된 경험과 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네. 목사님. 오늘 인터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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