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산골 소년에서 해병대 2인자인 부사령관에 이르기 까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간증하는 김기홍 장로 간증집회가 타코마중앙선교교회(담임 김삼중 목사)에서 지난 21일 부터 23일까지 열렸다. 간증집회에서 김 장로는 “가난한 시골에서 예수님을 영접한 이야기, 교회에 몽둥이를 들고 찾아오시던 아버지의 핍박, 가장 가난한 학생으로 선발되어 고등학교 입학금 면제, 해군사관학교에 기적적 입학, 짜빈동 전투, 교회 건축을 하며 역사하신 하나님 등을 전했다.
매일 가난과 씨름하면서도 학교를 빠지지 않기 위해 왕복 60리 길을 어린 소년의 몸으로 감당했던 시절, 학교에 다녀오면 한 밤중에도 농사일과 소 키우는 일로 무척이나 고됐던 삶, 김 장로에게는 그런 절망과 같은 어두운 시절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넥타이를 매고 북을 치며 마을로 들어오는 무리를 따라 ‘무슨 구경거리’로 여기고 따라갔다가 설교를 듣고 예수님을 영접했다. “예수님을 믿으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이야기는 형편없는 시골 더벅머리 소년에게는 희망과 소망을 주는 섬광 같은 말씀이었다. 김 장로는 “설교하는 목사님 맨 앞줄에 앉아 손을 번쩍 들어 예수 믿겠다고 한 그 때가 은혜와 축복으로 내 삶을 바꿔준 계기였다”고 간증했다.
유교적 가정에서 교회에 다니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버지가 몽둥이를 들고 예배를 드리는 교회로 찾아와 예배를 드리다 도망 다니기를 밥 먹듯 하였지만 주님을 놓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아버지를 피해온 날에는 온 몸이 터질 것 같은 겨울 밤 추위를 견뎌가며 집안 불이 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새벽에야 집으로 들어가 울며 기도하곤 했다. 이후 그의 삶에는 기적이 이어졌다. 마을에서 가장 가난하던 김 장로가 고등학교를 등록금 면제를 받고 들어갔고, 해군사관학교에 기적적으로 합격했다.
김 장로가 중령시절 근무한 백령도에는 장병이 3천명이나 있었지만, 부대 교회는 단지 30명만이 들어갈 수 있는 협소한 공간이었다. 교회 건축을 놓고 기도하던 중 마침 부임한 목사는 힘없는 젊은 군목 이승우 목사(현 워싱턴 감리교회)였다. 이제 교회건축은 물 건너갔다고 생각하던 그에게 이 목사는 "추운 겨울 장병들이 천막에서 예배드리는 것을 볼 수 없다"며 당장 교회를 건축하자 힘을 실었고 교회 건축 비용이 한 푼도 지원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는 "평생 나와 목사님이 갚는 한인 있어도 교회는 건축하자"고 뜻을 세웠다.
하지만 교회 건축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타종교에 심취해 있던 상급관의 핍박과 건축자금 부족, 부인 김 권사의 병세 악화와 사모님의 조산까지 어려움은 첩첩산중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당신을 향해 무릎 꿇은 종의 모습을 놓치지 않으셨다. 당시 해군 군종감은 백령도의 젊은 목사와 집사가 교회 건축을 위해 사방을 다니며 몸부림 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서울과 인천의 교회를 통해 밀린 건축자금을 해결해주었고 부인의 병이 해소됨과 함께 사모 역시 무사히 딸을 출산할 수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일은 인간의 생각과 지혜로 되는 일이 아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고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시고 역사 하신다"며 "인간적으로 캄캄한 환경가운데 있을 때가 있다면 기도하라. 인간적으로 불가능해 보이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지식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사람이라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를 통해 이루신다"고 강조했다.
또한 김 장로는 "신앙생활을 하며 어려움을 당할 때 어려움을 바라보지 않고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을 붙들고 기도함이 중요하다"며 "우리가 어려울 때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붙들고 간구하면 이루시는 하나님임을 믿길 바란다"고 역설했다.
시련과 고난, 역경은 하나님의 변형된 '축복'이라고 말하는 김 장로는 "하나님께서 고난을 주시는 것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과정의 일부"라며 "나는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믿음을 버리고 하나님 안에서 내게 불가능한 것이 없다는 긍정적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올 때, 나의 결점을 그대로 하나님 앞에 가져올 때 우리를 통해 무한한 능력을 나타내신다"고 전했다.
현재까지 3200여회 간증집회를 인도했던 김 장로는 “너무 가난하여 시골 읍내에도 한번 못나가 보던 시골소년이 예수님을 알고 난 후 전국 방방곡곡과 전 세계를 다니며 하나님 은혜를 증거 하게 됐다”며 자기 삶에 역사하신 하나님께서 성도 한 명 한 명에게도 역사하심을 강조했다. 그는 "이 세상의 부귀와 권세가 좋아 보이지만 손에 와 닿으면 뜬구름과 같은 것"이라며 "진정한 만족은 주의 말씀이 내 안에 있고 주님의 삶이 내 삶 속에 드러날 때 찾아온다"고 간증했다.
김 장로는 현재 해군중앙교회 장로이자 대전 목원대학교 교수이며, 前 해병대 부사령관, 예비역 해병소장을 역임하고 국내외 3천2백여 성회를 인도했다.
매일 가난과 씨름하면서도 학교를 빠지지 않기 위해 왕복 60리 길을 어린 소년의 몸으로 감당했던 시절, 학교에 다녀오면 한 밤중에도 농사일과 소 키우는 일로 무척이나 고됐던 삶, 김 장로에게는 그런 절망과 같은 어두운 시절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넥타이를 매고 북을 치며 마을로 들어오는 무리를 따라 ‘무슨 구경거리’로 여기고 따라갔다가 설교를 듣고 예수님을 영접했다. “예수님을 믿으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이야기는 형편없는 시골 더벅머리 소년에게는 희망과 소망을 주는 섬광 같은 말씀이었다. 김 장로는 “설교하는 목사님 맨 앞줄에 앉아 손을 번쩍 들어 예수 믿겠다고 한 그 때가 은혜와 축복으로 내 삶을 바꿔준 계기였다”고 간증했다.
유교적 가정에서 교회에 다니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버지가 몽둥이를 들고 예배를 드리는 교회로 찾아와 예배를 드리다 도망 다니기를 밥 먹듯 하였지만 주님을 놓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아버지를 피해온 날에는 온 몸이 터질 것 같은 겨울 밤 추위를 견뎌가며 집안 불이 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새벽에야 집으로 들어가 울며 기도하곤 했다. 이후 그의 삶에는 기적이 이어졌다. 마을에서 가장 가난하던 김 장로가 고등학교를 등록금 면제를 받고 들어갔고, 해군사관학교에 기적적으로 합격했다.
김 장로가 중령시절 근무한 백령도에는 장병이 3천명이나 있었지만, 부대 교회는 단지 30명만이 들어갈 수 있는 협소한 공간이었다. 교회 건축을 놓고 기도하던 중 마침 부임한 목사는 힘없는 젊은 군목 이승우 목사(현 워싱턴 감리교회)였다. 이제 교회건축은 물 건너갔다고 생각하던 그에게 이 목사는 "추운 겨울 장병들이 천막에서 예배드리는 것을 볼 수 없다"며 당장 교회를 건축하자 힘을 실었고 교회 건축 비용이 한 푼도 지원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는 "평생 나와 목사님이 갚는 한인 있어도 교회는 건축하자"고 뜻을 세웠다.
하지만 교회 건축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타종교에 심취해 있던 상급관의 핍박과 건축자금 부족, 부인 김 권사의 병세 악화와 사모님의 조산까지 어려움은 첩첩산중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당신을 향해 무릎 꿇은 종의 모습을 놓치지 않으셨다. 당시 해군 군종감은 백령도의 젊은 목사와 집사가 교회 건축을 위해 사방을 다니며 몸부림 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서울과 인천의 교회를 통해 밀린 건축자금을 해결해주었고 부인의 병이 해소됨과 함께 사모 역시 무사히 딸을 출산할 수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일은 인간의 생각과 지혜로 되는 일이 아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고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시고 역사 하신다"며 "인간적으로 캄캄한 환경가운데 있을 때가 있다면 기도하라. 인간적으로 불가능해 보이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지식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사람이라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를 통해 이루신다"고 강조했다.
또한 김 장로는 "신앙생활을 하며 어려움을 당할 때 어려움을 바라보지 않고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을 붙들고 기도함이 중요하다"며 "우리가 어려울 때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붙들고 간구하면 이루시는 하나님임을 믿길 바란다"고 역설했다.
시련과 고난, 역경은 하나님의 변형된 '축복'이라고 말하는 김 장로는 "하나님께서 고난을 주시는 것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과정의 일부"라며 "나는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믿음을 버리고 하나님 안에서 내게 불가능한 것이 없다는 긍정적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올 때, 나의 결점을 그대로 하나님 앞에 가져올 때 우리를 통해 무한한 능력을 나타내신다"고 전했다.
현재까지 3200여회 간증집회를 인도했던 김 장로는 “너무 가난하여 시골 읍내에도 한번 못나가 보던 시골소년이 예수님을 알고 난 후 전국 방방곡곡과 전 세계를 다니며 하나님 은혜를 증거 하게 됐다”며 자기 삶에 역사하신 하나님께서 성도 한 명 한 명에게도 역사하심을 강조했다. 그는 "이 세상의 부귀와 권세가 좋아 보이지만 손에 와 닿으면 뜬구름과 같은 것"이라며 "진정한 만족은 주의 말씀이 내 안에 있고 주님의 삶이 내 삶 속에 드러날 때 찾아온다"고 간증했다.
김 장로는 현재 해군중앙교회 장로이자 대전 목원대학교 교수이며, 前 해병대 부사령관, 예비역 해병소장을 역임하고 국내외 3천2백여 성회를 인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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